최 윤(역사교육과 박사과정 수료)
최 윤(역사교육과 박사과정 수료)

코로나19가 학교를 잠식하고 모든 학교 활동이 방역 체계 속에 성립돼야 했을 무렵, 중학교 학생들에게 거의 집에만 있어야 하는 삶이 답답하지는 않은지 그리고 백신을 맞는 일이 두렵지 않은지를 물었다. 나는 학생들이 당연히 “답답하고 두렵다”라고 대답하겠거니 여기고 그 후속 질문과 함께 수업과 연결되는 내용을 이어서 말하려 했다. 그런데 학생들은 천연하게 오히려 좋은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자유롭게 학교 공간을 출입하고 운동장에서 또래 학생들과 줄기차게 농구를 했던 나는, 소위 코로나 시대를 부자유한 것으로 규정지었다. 삶의 행동반경을 제한하는 온갖 방역 조치는 모든 익숙한 루틴을 낯설게 만드는 불편함을 끊임없이 재생산했다. 백신 접종 이후의 질병과 사망이 백신 부작용과 어떤 인과가 있는지를 갑론을박하는 일은 사회의 주류 담론 중 하나가 됐고 흉흉한 소문이 떠돌았다. 이 불편들은 나에게 자유롭지 못한 시대의 상징처럼 다가왔다.

다른 모든 이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 믿었다. 그런데 갑자기, 집에서 학교 수업을 들을 수 있어서 정말 좋다고, 백신을 맞아야 여기저기 많이 갈 수 있다고 하는, 마스크를 써서 웃는 입은 보이지 않지만 웃는 눈을 내보이는 수백의 학생들이 눈앞에 있었다. 백신을 어떤 요일에 맞아야 ‘백신 연휴’를 최대로 즐길 수 있는지를 신나게 설명하는 학생들에게 코로나 시대는, 그리 오래지 않은 일상이 새로운 일상으로 바뀐, 조금 두렵기는 하지만 적응할 만한 세상이었다. 

기대와 전혀 다른 반응에 당혹스러워, 나는 우선 바이러스의 기원과 세계 감염 현황, 백신 개발과 부작용에 대해 ‘알려주고자’ 했다. 학생들은 너나없이 불이 붙어 떠들었다. 부모님, 유튜브, 네이버, SNS로 알게 된 소식이나 출처도 알 수 없는 온갖 정보들이 타올랐다. 멍한 기분으로 다른 교실에 들어가 같은 질문을 던졌고, 비슷한 대답을 들었다. 꼬박 아홉 반을 돌면서 알 수 있었던 것은, 학생들이 이미 나보다 훨씬 다양한 루트로 소식을 접하고 훨씬 민감하게 앞가림을 해나간다는 사실이었다. 

정보의 홍수는 신문으로, 텔레비전으로, 컴퓨터로, 휴대폰으로. 그 바깥으로 흘러넘쳐 거리를 잠식한다. 어쩌면 학생들은 익사할 듯 차고 넘치는 정보의 바다에서 어떻게 헤엄쳐야 하는지를 구세대인 나보다 훨씬 빠르게 터득했는지 모른다. 그간 나에게 배움이란 선별된 정보를 익히고(외우고), 거기에 약간의 비판적 이해를 가미하는 형태가 주를 이루는 것이었다. 학교는 주된 지식 수용의 창구였고, 선생님은 지식권위자이자 삶의 본이었다. 그런데 점차 그 지식이 학교 바깥에서도 밀려들어 오면서, 학생들은 학교 공간 안에서의 지식을 어떻게 해야 효율적으로 흡수할 수 있을지에 매달릴 필요가 없어졌다. 학교 지식과 외래 지식의 충돌로 인한 혼란이 발생하는 경우는 잦아졌고 그들은 지식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노출됐다. 정보의 홍수는 지식의 선택과 그 지식에 대한 믿음을 요청하는 것일까. 학생들은 각자의 삶에 밀접한 정보들을 주시하며, 그 정보를 학교라는 틀 바깥에서 자유로이 취사선택하며, 코로나 상황이 점차 나아질 것을 믿고 생존보다는 활용의 시선으로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그런 면에서 보면 학생들은 정보 선별과 의미 도출이라는 (역사)연구의 기본을 자연스럽게 학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코로나 시대의 혼란한 삶 속에서 그들은 지식 노마드로서 나름의 학습세계를 구축해나가고 있었던 것 같다. 수업을 했던 중학교와 연구실 창가 약 0.5평 자리에 쌓여 있는 책과 논문, 두 축의 실물세계에 갇힌 내 세계에 비해 학생들의 세계는 훨씬 광활하고 자유롭다. 코로나 시대는 그런 새로운 세계로의 전이를 추동했는지도 모른다. 그곳에서 나는 지식권위자가 아닌 수많은 지식전달자 중 하나일 뿐, 그러니 이제 교육은 권위를 앞세워 정제된 지식을 주입하는 일보다 지식수용자의 처지를 섬세히 살펴 그들을 설득해내는 일이 비할 바 없이 크게 유효함을 갖는 장이리라. 이미 잘 알고 있지 않은가, 풍부한 표정과 다정한 언어를 구사하는 많은 학자(學者)가 어떻게 세상을 흔들었는지를, 그리고 흔들고 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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