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최영미 산문집 『난 그 여자 불편해』

“괴물을 키운 뒤에 어떻게 괴물을 잡아야 하나”, ‘미투’(#MeToo) 운동이 문화·예술계로 번지며 주목받았던 최영미 시인의 시 「괴물」의 한 구절이다. 「괴물」을 통해 오랫동안 문단의 거물이자 국민 시인으로도 불리던 고은 시인이 상습적 성추행을 저질러왔음이 세상에 알려졌다. 해당 사건 이후 고은 시인은 일견 문단에서 퇴출당한 것처럼 보였으나 지난해 12월 실천문학사를 통해 『무의 노래』를 발표하며 복귀했다. 한편 최영미 시인은 지난달 21일 산문집 『난 그 여자 불편해』를 출간했다. 최영미 시인은 그 후 어떤 시간을 보냈을까. 『난 그 여자 불편해』는 그가 시끄러운 세간의 관심 속에서 단단히 중심을 잡은 채 쉬지 않고 가만한 문장을 쌓아왔음을 증명한다. 

 

◇두렵지 않은 싸움의 기록=『난 그 여자 불편해』의 표지를 들여다 보면, ‘이미출판사’라는 낯선 이름의 출판사가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문학계에서 출판사의 기반과 명성은 작품을 보증한다. 최영미 시인 또한 저명한 문학 계간지 《창작과 비평》 1992년 겨울호에 「속초에서」를 비롯한 여덟 편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해 그 후로도 줄곧 창비, 문학동네, 실천문학사 등 한국 문단 내에서 상당히 권위 있는 출판사를 통해 꾸준히 시집을 발표해왔다. 그랬던 그가 왜 돌연 2019년 1인 출판사인 이미출판사를 설립하고, 그곳에서 산문집을 펴내게 된 걸까. 답은 『난 그 여자 불편해』에서 직접 찾을 수 있다. 

“2018년의 ‘미투’ 이후 내 이름은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새 시집을 내고 싶은데 선뜻 나서는 출판사가 없었다. … (중략) … 문단 권력을 비판한 나를 그들은 좋아하지 않으며, 나와 싸우는 원로시인의 책을 펴낸 출판사들은 내 시집을 내기가 부담스러운 게다.

그럼 내가 내야겠네. 그래서 출판사 등록을 하게 되었다.” 

- 「출판사 등록」 중

책에서 최영미 시인은 2018년 미투 운동 당시 고은 시인의 상습적 성추행을 고발한 이후 출판사가 자신의 시집 출판 제의에 응답하지 않았다고 털어놓는다. 그래서 출판사를 설립하게 됐다는 그의 담담한 문장에서, 끊임없이 시를 쓰고 이를 세상에 내보이고 싶었던 열망이 무겁게 드러난다. 

최영미 시인의 글이 세상에 다시 나오는 과정이 이토록 지난했다면, 고은 시인은 지난해 12월 실천문학사를 통해 시집 『무의 노래』와 대담집 『고은과의 대화』을 출판하며 너무나도 쉽게 문단으로 돌아왔다. 

“재판 과정 중에 변호사 뒤에 숨더니 이제는 출판사 뒤에 숨어 현란한 말의 잔치를 벌이는 그가 나는 두렵지 않다.”

- 「위선을 실천하는 문학」 중

최영미 시인이 고은 시인의 성추행을 폭로한 후, 고은 시인은 2018년 명예훼손으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최영미 시인이 2019년까지 1심과 2심에서 성추행 피해를 입증하기 위해 애쓰는 동안 고은 시인은 재판에 단 한 차례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에 최영미 시인은 지난 1월, 「위선을 실천하는 문학」이라는 칼럼을 게재해 고은의 복귀와 무책임한 태도를 꼬집었다. 곧이어 실천문학사는 입장문을 발표하며 『무의 노래』 공급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해당 입장문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게 일었다. 실천문학사는 입장문에서 “공급 중단은 여론의 압력에 출판의 자유를 포기해야 하는지에 대한 결정이 날 때까지 계속할 것”이라고 비아냥에 가까운 어조로 출판의 자유와 여론의 비판을 강조했다. 성추행 이력이 있는 고은 시인의 시집을 출간한 행위에 대한 윤리적 성찰과 사과는 일절 배제한 채, 출판의 자유를 침해하는 부정적 여론을 비난할 뿐이었다. 이는 “권력은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라는 최영미 시인의 문장이 완벽하게 들어맞는 지점이다.

 

◇살아가는 힘으로, 쓰기=최영미 시인의 『난 그 여자 불편해』는 그렇기에 더욱 굳건해 보인다. 그는 지지부진 계속된 고은 시인과의 소송과 소리 소문 없이 시작된 문단의 외면에도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쓰기를 선택했다. 특히 고은 시인과의 사건을 다룬 1부를 지나, 최영미 시인이 좋아하는 스포츠와 자신을 둘러싼 일상을 다룬 2부 「인간은 스포츠 없이 살 수 없다」와 3부 「어렵다고 생각한 일이 가장 쉽더라」에서 물씬 드러나는 열정과 기쁨의 기록은 그의 꿋꿋함에 힘을 더한다.

“수영을 한 뒤에 내가 좋아하는 주스를 마시는 시간. 신선한 자연의 음료를 마시며 날 짓누르는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 천천히 수박을 들이키며 행복감에 젖는다. 수영을 할 수 있는 한, 물에 뛰어들었다 성한 몸으로 나올 수 있는 한, 나는 생을 포기하지 않겠노라.”

- 「죽더라도 수영장에서」 중

“오늘도 컴퓨터 앞에 앉아 참고서와 종이더미에 파묻혀 갈수록 창백해지는 나의 어린 왕자. 언제쯤 너랑 나랑 엄마랑 밖에 나가 이것저것 구경하며 알콩달콩 떠들까. 그때쯤이면 내 머리가 희끗희끗해지겠지. 그날까지 건강을 유지하는 게 지금 내가 품을 수 있는 가장 대담한 희망이리라.”

- 「이모가 있어서 참 좋았다」 중

개운한 수영 뒤 느끼는 행복과 조카에 대한 애정에서 나오는 생에 대한 의지를 묘사한 대목이다. 최영미 시인은 자신의 일상과 자신의 이야기를 꿋꿋하게 써내려 간다. “문장이 모여 삶이 되었다”라고 말하는 그에게 쓰는 행위가 얼마나 견고한 의의를 갖는지 매 순간 드러난다. 그간 벌어진 일들과 무관하게 계속해서 세상을 관찰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해 나간 최영미 시인의 그냥 사는 이야기가 오랜 싸움의 기록보다 오히려 돋보이는 이유다. 앞으로도 그는 쓰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최영미 시인의 산문집 『난 그 여자 불편해』에서는 미투 이후 이어진 어려움들과, 이와 무관한 자신의 일상사가 똑같이 자연스럽고 일상적으로 쓰여 있다. 나쁜 일도, 좋은 일도 모두 삶 그 자체다. 최영미 시인에게 어울리는 명칭은 오직 ‘시인 그 자체’여야 한다. 앞으로 그의 꾸준한 작품 활동과 빛나는 활약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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