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빈(농경제사회학부·20)
이수빈(농경제사회학부·20)

작년부터 현대차, 삼성 등 RE100*에 동참하는 대기업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 파타고니아와 같이 유명 대기업으로 성장한 환경주의 의류 브랜드도 눈에 띈다. 바야흐로 기후 변화보다 기후 위기라는 단어를 쓸 것을 촉구받는 시대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는 친환경적 행보를 걸어가겠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그러지 않는 그린 워싱*의 시대에도 살고 있다. 인조 가죽을 비건 가죽이라고 하며 기존의 값싼 소재를 비싸게 팔아치우거나, 환경을 보호하기 위함이라면서 자원 낭비를 부추기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에는 물론 기업의 책임도 존재하겠지만, 소비자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기업이 끊임없이 팔아치우고 싶어 하듯이, 소비자는 끊임없이 소비하고 싶어 한다. 기초적인 경제학만 봐도 인간의 욕구는 무한하지만 예산은 제약돼 있다고 하지 않나. 문제는 자원은 제한돼 있고, 우리는 이것을 완벽히 재활용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웰빙 친환경 농산물과 아나바다 운동이 한때 유행했던 적이 있다. 우렁이 농법을 도입하고, 비닐봉지 대신 장바구니를 쓰자며 피켓을 든 환경단체가 뉴스에 오르내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환경 오염의 원인 자체는 줄어들지 않은 채, 환경 보호 유행은 끝나고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성장의 유행이 찾아왔다. 그러면서 우리는 무분별한 소비라는 지적에 대응할 만한 적절한 이론적 근거를 갖춘 것처럼 착각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경제 성장을 달성하기 위해 다소의 소비, 다소의 생산은 허용된다고 어깨를 으쓱이면서. 2000년 이후 세계 의류 생산량은 2배가 늘고, 사람들은 이전보다 1.5배 이상 옷을 소비하고 있는데도, 지구 파멸을 경고하는 ‘운명의 날 시계’가 자정까지 1분 30초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이것은 우리 세대의 어떤 부정적인 경향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할 수 있는데, 우리는 단순한 행동(예를 들어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하는 것)을 일상적으로 행위하는 것을 넘어, 단순한 일상생활에서도 도덕적 결벽 내지 당위를 추구하는 것처럼 보여야만 안심하고는 한다. SNS를 필두로 한 자기 전시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타인이 만들어주는 평판은 무척이나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논의를 이어가자면, 필자에게 21세기 세계 사회는 종종 소설 『삼총사』의 배경으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까지 한다. 

돌이켜보자. 우리는 값비싼 패션 브랜드에서 내놓은 에코백을 사들이면서, 잘 썩는 천연 섬유로 만든 옷을 입고, 유튜버들이 비건 가죽으로 만든 가방을 수십 개 소개하는 영상을 보기도 한다. 도덕적인 고민은 별로 하지 않은 채, 도덕적인 ‘기분’을 얻기 위해 그린 워싱 제품을 사 모으며, 회사는 고객의 이런 니즈에 충실히 맞춰줄 준비가 돼 있다. 인테리어가 아름다운 비건 카페에서 인스타용 셀카를 찍는 20대는,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가장 좋은 비단옷을 입고 근엄한 자세를 취했던 17세기 귀족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지속가능성이 나쁜가? 지속가능성은 폐기돼야 하는 개념인가? 그런 주장은 전혀 아니다. 지속가능한 성장이 사회적으로나 학문적으로나 의의가 큰 개념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속가능한 성장의 궤도로 진입하려면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소비를 ‘줄여야만 한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지 말자. 가장 좋은 환경 보호는 환경 오염을 하지 않는 그 자체니까. 

*RE100: 재생에너지 전기(Renewable Electricity) 100%의 약자로, 기업이 필요로 하는 전력을 2050년까지 전부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조달하겠다는 캠페인.

*그린 워싱(Green Washing): 위장환경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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