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법무부의 러시아인 난민인정심사 거부 결정 살펴보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한 해를 넘긴 가운데 지난달 28일 법무부는 강제 징집을 피해 한국에 들어온 러시아인 5명의 난민인정심사 회부를 사실상 거부했다. 지난달 14일 해당 난민 중 2명은 난민인정심사 불회부 결정 취소를 요구하는 소송에서 승소했지만, 법무부가 이에 항소하며 다시 발이 묶인 것이다. 『대학신문』은 법무부의 결정을 바탕으로 난민을 대하는 한국 사회의 태도를 돌아봤다.

 

난민인정심사 거부 사유, 합당한가

러시아에서는 지난해 9월 말 동원령이 발표된 이후 징집을 거부한 동원 대상자들은 탈영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거나 러시아를 떠나야 했다. 지난해 10월, 한국에도 5명의 러시아인이 강제 징집을 피해 들어왔으나 인천공항출입국·외국인청장이 난민인정심사 불회부 결정을 내려 난민으로 심사받을 기회를 잃었다. 이에 넉 달간 인천공항 출국 대기실과 환승 구역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했던 이들은 해당 결정에 대한 취소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달 14일 5명 중 3명에 대한 인천지방법원의 판결이 먼저 나왔다. 2명은 승소했지만, 곧이어 법무부가 판결에 항소함에 따라 난민신청자 지위를 얻지 못한 채 영종도에 있는 출입국·외국인 지원센터에서의 주거만을 허락받았다. 한편, 패소했거나 아직 판결을 받지 못한 이들은 여전히 공항에 머무르고 있다. 법무부는 난민인정심사 불회부 결정에 대해 △단순 징집 거부는 난민 인정 사유가 될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례 및 국제 규범 △유사한 난민 신청 사례가 속출할 가능성 △출입국항의 난민인정심사가 형식적인 것으로 위축돼 국경 관리 기능에 장애가 생길 가능성 등을 근거로 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들의 입국을 단순 징집 거부로 치부하는 것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섣부른 판단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번에 난민신청자들의 법률 조력을 맡은 공익법센터 ‘어필’(APiL) 이종찬 변호사는 “전쟁이라는 배경 아래 징집을 거부한 것은 곧 전쟁을 반대한다는 정치적 의견을 가진 것이라고 합리적으로 추정할 수 있다”라며 “최소한 이들이 난민 여부를 심사받을 기회는 부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오승진 교수(단국대 법학과) 역시 “국제법상 허용되지 않는 전쟁에 대해 징집을 거부한 자는 자국에서 처벌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라며 “러시아인들의 진술을 들어본 후에 난민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맞다”라고 밝혔다. 한편, 한국 거주 러시아인의 반전운동 단체 ‘보이시스 인 코리아’ 알렉산드라 안 활동가는 “러시아에서 동원령을 피해 도망치지 않는 사람들은 이론적으로 전쟁 범죄에 가담하는 것과 다름없다”라고 역설했다. 러시아 군대가 전쟁 범죄에 연루돼 있다는 진술이 나오는 시점에서 외국으로의 도피가 단순 징집 거부으로만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한편 난민 신청 사례가 속출할 것이라는 이유로 난민인정심사를 거부하는 법무부의 근거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이종찬 변호사는 “설사 난민 신청 사례가 속출할 지라도, 난민법을 채택한 국가에서 행정적 이유만으로 난민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법치에 어긋난다”라고 전했다.

 

심사조차 거부당한 이들

난민 신청에 명백한 이유가 없지 않은 한 난민인정심사를 받을 최소한의 기회는 주어져야 한다. 이종찬 변호사는 “난민인정심사 회부제도는 난민인정신청서를 제출한 사람에 대해 7일 안에 난민인정심사 회부 여부를 결정하고, 결정이 안 나면 신청자의 입국을 우선 허가하도록 명시한 제도”라며 “난민 여부가 확정나지 않았더라도 일단 입국시킨 후 난민인정심사를 받도록 하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즉 법무부의 불회부 결정이 정당하려면, 강제 징집을 피해 한국에 입국한 러시아인들은 심사조차 받지 못할 명백한 이유가 있었어야 한다. 하지만 정도희 교수(경상국립대 법학과)는 지난달 14일 법원이 내린 승소 판결을 언급하며 “해당 판결은 특수한 전시 상황에 동원령을 피하려 난민인정을 신청한 것을 정치적 의견의 표명으로 볼 수 있는지를 정식 심사 절차에 회부해 판단하려는 취지다”라고 난민인정심사에 회부될 자격을 법원이 인정했음을 전했다. 

반면 법원에서조차 난민인정심사를 받을 권리를 인정받지 못한 사례도 있다. 실제로 지난달 14일에 취소소송 승소 판결을 받은 2명과 달리 다른 한 명은 키르기스스탄의 이중국적자로서 다른 안전한 국가로 갈 수 있었다는 이유로 패소했다. 이에 관해 이종찬 변호사는 “판결 과정에서 키르기스스탄이 러시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을 고려했어야 한다”라며 “애당초 이번 소송 기간 중 원고의 이중 국적 여부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무고한 이의 고통을 막기 위해

전쟁을 피해 한국에 머무는 러시아인의 수는 점점 늘고 있다. 법무부가 발표한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월보’에 따르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시작한 지난해 3월부터 11월까지 러시아인 난민신청자는 1,318명에 이른다. 같은 기간 동안 12,315명의 난민신청자가 있었지만 오직 4,723건의 난민인정심사가 이뤄졌고 163명만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러시아인 크세니아 몰차노바씨는 난민법상 난민 신청 후 6개월이 지나면 취업 활동을 위해 발급되는 G-1비자를 받아 한국에 거주하고 있다. 그는 “러시아에서 반전 집회에 참여하거나 SNS에 전쟁을 반대하는 글을 썼고, 심지어 반전을 주제로 두 편의 시를 창작하기도 했다”라며 “그러나 한 달 후 나는 더 이상 친구들이 사는 도시와 내가 태어난 곳인 우크라이나를 폭격하는 나라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라고 밝혔다. 그는 난민 신청을 한 지 9개월이 지났음에도 아직 심사를 위한 면접 요청조차 받지 못했다.

한국 사회는 러시아 난민들의 어려움을 더욱 적극적으로 이해할 필요성이 크다. 이종찬 변호사는 “법무부가 난민이 아닌 난민신청자를 심사했을 때 우리나라가 받게 될 피해와 난민인 난민신청자를 심사하지 않았을 때 신청자가 받게 될 박해는 해악의 차이가 상당하다”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무부는 일관되게 한 명의 의심스러운 사람도 들여보낼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러시아 난민과 연대해야 한다고 말한 ‘다른세상을향한연대’ 전지윤 실행위원 역시 “고향을 떠나 희망을 찾아온 사람들을 공항에 억류하고 난민인정심사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죽음과 절망으로 내모는 일은 사라져야 한다”라고 밝혔다.

법무부가 난민을 대하는 방식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오승진 교수는 “한국은 아직 난민 수용에 매우 소극적이다”라며 “국제 기준은 최소한의 기준이니, 국가가 자국만의 난민법 해석과 정책에 따라 난민 보호를 확대하는 것은 가능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다”라고 강조했다. 정도희 교수 역시 “국익과 인도주의의 균형을 모색하는 법무부의 시도는 인정해야 하지만, 난민신청자의 이익을 충분히 고려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라고 아쉬움을 표하며 “난민신청자가 부담하는 입증책임과 정도를 완화하는 것은 그들의 이익을 고려하는 하나의 방법이다”라고 말했다. 

정도희 교수는 “난민법의 제정 당시 원안에는 유엔난민기구(UNHCR)가 선언하는 ‘의심스러울 때는 난민신청자의 이익으로’(the benefit of the doubt)의 원칙을 명문화하려는 시도가 있었다”라고 전했다. 그의 말대로 행정적 편의에 매몰되는 것을 넘어 난민신청자의 이익 또한 충분히 고려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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