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XX과목 XXX 교수님 족보 구합니다! 쪽지주세요!”

학내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타)에서 흔히 보이는 게시글이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의 족보를 구하기 위해서다. 에타에서는 족보를 판매하는 문화가 활성화돼 있다. 족보 시세는 다 다르지만 하나당 보통 5,000원 정도에 거래되는 편이다.

대학에서 족보가 성행하는 이유는 대학의 시험 특징과 관련이 있다. 주로 객관식 유형에서 지난 학기 시험 문제와 거의 동일하게 다음 학기 시험을 출제하는 강의들이 많다 보니 족보가 사실상 답지의 기능을 담당하는 것이다. 이는 두 가지 문제를 유발한다. 우선 족보를 본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 간에 형평성 문제가 발생한다. 만약 교수님이 지난 학기 문제를 그대로 냈다면, 재주 좋게 족보를 구한 학생이 정직하게 공부한 학생보다 더 나은 성적을 받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이에 족보의 존재 때문에 학생들의 학습 동기가 낮아지는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시험을 준비하는 것은 고되지만 그 과정에서 학생들은 지식을 습득하고 역량을 키워간다. 하지만 족보가 존재한다면 굳이 스트레스를 받아 가며 공부할 필요가 없어진다. 실제로 필자는 한 교양과목에서 시험 전날 한 시간 동안 족보만 확인해 만점을 받은 학생을 본 적이 있다. 족보 없이 시험 한 달 전부터 꾸준히 공부한 필자보다 그 친구가 압도적으로 높은 성적을 받는 상황에, 학업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기도 했다.

이런 족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 가지 제안을 하려고 한다. 매 학기 시험 문제를 학과 차원에서 검토해 이전 학기와 완전히 같은 문제가 출제되는 것을 저지해야 한다. 교수자가 사전에 시험 문제를 제출하면 학과 내 담당자가 기출 문제 데이터베이스와 이를 대조해 동일한 문제가 출제되는 것을 막았으면 한다. 물론 족보는 오랫동안 존재해왔으니 단번에 없애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교수님께서 조금 ‘불편’하게 출제하신다면 서울대는 학생들에게 더 깊은 지식을 전달하는 학문의 전당으로서 역할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학부생들 사이에서도 다 함께 조금 우둔할지라도 우직하게 공부하는 문화가 조성되기를 바란다. 서울대 학생들의 ‘족보’가 더 이상 나태와 불평등의 혈통으로 기록되지 않도록 이제는 악습의 족보를 끊어야 한다.

 

손경배

심리학과·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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