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중앙도서관 관정관에서 열린 전시를 구경하다가 잊고 있었던 한 얼굴과 다시 만났다. 1975년 6월 30일 자 『대학신문』 기고란에 실린 30대 이청준의 사진이었다. 석사 논문을 쓰던 시절 지겹도록 마주한 ‘대가’ 이청준의 모습이 아니라, 조금은 평범하고 앳돼 보이는 청년 이청준의 얼굴을 만날 수 있어서 더욱 반가웠다.

<후배들에게>라는 코너에 실은 해당 기고에서, 이청준은 기성의 질서에 편입되고자 노력하는 대학생들의 보수적 편향을 지적하며 젊은 대학인들에게는 주어진 질서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말한다. 눈앞에 닥친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도 힘든데, 그걸 뛰어넘어야 한다니 세상 물정 모르는 고지식한 선배의 조언처럼 들릴 법하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 글이 단지 선배의 따끔한 충고로만 이뤄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같은 글에서 이청준은 대학생이 비현실적인 사고나 방만한 언동을 하더라도 쉽게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대학이 무슨 두부공장인가”라고 반문하며 대학 교육과 대학 문화의 획일화를 조장하는 시대와, 그런 삭막한 시대를 만든 선배 세대의 책임을 묻고 있다.

이청준이 이 글을 쓴 1975년은 그가 대학을 졸업한 지 10년이 된 해이자, 후일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소설 『당신들의 천국』(『신동아』, 1974.4-1975.12)을 한창 월간지에 연재하고 있었던 때다. 전시를 둘러본 뒤 2~30대의 이청준은 어떤 생각을 하며 살고 있었을지 문득 궁금해져서 오랜만에 작가의 수필집 『작가의 작은 손』(1978) 일부를 다시 읽었다. 이 수필집에는 작가가 청년기에 겪은 오랜 방황의 시간들이 곳곳에 기록돼 있다. 예를 들어 수차례 투고와 낙방을 되풀이하며 낙심했던 대학 졸업반의 기억, 소설가로 데뷔한 후에도 생계 문제로 직장과 주거지를 여러 번 옮겨야만 했던 사정 등은 모두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라 불리는 이청준의 잘 알려지지 않은 이면이라고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언제까지나 이루어짐이 없는 나 자신의 삶” 때문에 여전히 문학에 매달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이청준의 고백은 문학가로서 그의 방황이 1970년대 중후반 당시에도 진행 중이었고 그 후로도 계속될 것임을 암시한다. 이청준이 후배들에게 남긴 글과 이 수필집을 나란히 읽으니, ‘대학(원)생들은 방황하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어차피 졸업 이후에도 방황은 계속될 것이니까’라는 작가의 속삭임이 들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이런 해석이 요즘 공부를 게을리하고 있는 나의 자기합리화 논리일 수도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럼에도 빠른 성취라는 기준에 맞춰 굳이 우리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속박할 필요는 없다는 교훈 정도는 충분히 이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새 학기를 맞아 그동안 연구를 너무 소홀히 했다는 생각에 다 펼쳐 보지도 못하고 반납해야 될지도 모를 책들을 잔뜩 빌려온 나를 돌이켜본다. 그리고 서두르지 말자고, 나에게 이번 새 학기는 스타트를 끊는 단거리 육상 선수처럼 앞을 향해 내달려야 하는 시점이 아니라, 다음 걸음을 정확하게 내딛기 위한 충분한 방황 혹은 탐색의 시간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마음을 다잡아 본다.

 

허민석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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