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를 만나다 |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저자 심채경 박사 인터뷰

지난해 6월 누리호 발사가 성공한 데 이어, 12월 국내 최초의 달 탐사선 ‘다누리’가 달 궤도에 진입하며 그 어느 때보다도 우주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졌다. 하지만 이런 소란한 기대의 중심에서도 심채경 박사는 고요한 우주처럼 담담하게 자신을 소개한다. 자신은 대단한 과학자도, 원대한 포부를 품고 고난을 극복한 영웅도 아니라고 겸손히 말하는 그. 우주 탐사, 우주 전쟁과 같은 거창함은 뒤로 한 채 자신 앞에 놓인 우주적 과제를 묵묵히 해결해온 그는 2021년 에세이집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를 출간했다.

 

천문학자에게 천문학을 묻다

흔히 천문학이라고 하면 쉬이 범접할 수 없는 신비로운 우주의 이미지를 떠올리고는 한다. 하지만 심채경 박사는 우주 역시 자연의 일종이라는 점에서 천문학이 해양 생물이나 숲속 생태를 조사하는 다른 자연과학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지구 밖에 있는 천체, 나아가 그것들이 존재하는 환경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는 학문이 천문학”이라고 설명했다. 천문학의 진정한 목적은 연구 대상인 우주를 궁극적으로 이해하는 데 있다는 의미다. 심채경 박사는 “천문학은 오늘 우리가 조사하고 탐구하는 것이 언제 그리고 어떤 식으로 보상이 돼 돌아올지 가늠할 수 없는 분야다”라며 “천문학자들은 그럼에도 계속해서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는 것만은 분명하다는 확신을 갖고 일한다”라고 전했다.

심채경 박사는 천문학의 여러 분야 중에서도 행성과 태양계를 연구하는 행성 과학자다. 행성 과학자는 수성이나 목성 등 행성만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태양계 내 소행성과 혜성 같은 여러 천체와 이 천체들이 서로 주고받는 영향까지 연구한다. 그는 “우주 탐사는 천문학 전체에서 아주 일부지만, 행성 과학은 천문학 분야 중에서도 탐사선을 보내는 것이 중요하기에 우주 탐사와도 관련이 깊은 편”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심채경 박사는 스스로를 관측자로 정의한다. “이상하죠? 망원경 하나 없는 건물인데.” 천문학자가 매일 별이 수놓인 밤하늘을 들여다보는 낭만적인 직업일 것이라는 상상과는 달리, 그는 직접 천문대에 가서 밤하늘을 관측하기보다 컴퓨터를 통해 데이터를 분석하는 방식으로 연구하는 날이 더 많다. 심 박사는 무인 우주 탐사선이 보내준 자료를 내려 받거나 국내의 경북 보현산 천문대, 소백산 천문대, 그리고 몇 곳의 전파 천문대에서 관측한 자료를 통해 천체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나 데이터를 얻는다. 심채경 박사는 “뿐만 아니라 한국천문연구원이 해외에서 운영하는 원격 천문대 자료를 받기도 하고, 전 세계의 천문학자들이 함께 여러 천문대를 공유하기도 한다”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관측자뿐만 아니라, 이론, 시뮬레이션, 데이터 처리, 관측 기기 제작 등 여러 방법으로 연구를 진행하는 천문학자들이 한 팀을 이뤄 훌륭한 발견을 달성해낸다.

 

그는 어떻게 천문학자가 됐나

“그런 사람들이 좋았다. 남들이 보기엔 저게 대체 뭘까 싶은 것에 즐겁게 몰두하는 사람들.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정치적 싸움을 만들어내지도 않을, 대단한 명예나 부가 따라오는 것도 아니요, 텔레비전이나 휴대전화처럼 보편적인 삶의 방식을 바꿔놓을 영향력을 지닌 것도 아닌 그런 일에 열정을 바치는 사람들. 신호가 도달하는 데만 수백 년 걸릴 곳에 하염없이 전파를 흘려보내며 온 우주에 과연 ‘우리뿐인가’를 깊이 생각하는 무해한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동경한다. 그리고 그들이 동경하는 하늘을, 자연을, 우주를 함께 동경한다.” 

-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중

심채경 박사는 어린 시절부터 특별히 천문학자를 꿈꿨던 학생은 아니었다고 털어놨다. 다만 어떤 학문을 전공하더라도 오래 공부하고 싶다는 열망을 품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천문학이 처음 다가왔던 때는, 고등학교 지구과학 수업 시간 연주시차를 배우면서였다. 지구가 공전하며 별의 위치가 다르게 보이는 연주시차의 원리를 설명해주시던 선생님의 반짝이는 눈이 그의 호기심을 끌었다. 이후에도 천문학을 전공하며 누구보다 귀여운 별을 그리는 장대한 덩치의 교수님과 여러 의미로 “꽃 같은” 대학원 연구실에서 일주일의 연구 여정을 즐겁게 발표하는 지도 교수님 등 좋은 스승과 동료들을 만나며 심채경 박사는 천문학의 길에 깊숙이 접어들었다.

대학원 시절, 심채경 박사의 주된 관측 대상은 수년간 보현산 천문대에 올라 밤낮없이 바라봤던 타이탄이었다. 토성의 위성인 타이탄은 다양한 물질들이 섞여 아주 두텁고 탁한 대기층에 둘러싸여 있어 외부에서의 관측을 통해 살피기 어렵다. 따라서 그는 타이탄의 두터운 대기층을 뚫고 관측하기 위해, 기존과 다른 파장을 활용해 타이탄 대기의 성분과 성질에 대해 알아내고자 했다. “대학원생 수준에서 알아본 것뿐”이라고 말하는 그의 겸손함 뒤에는, 종일 타이탄 대기의 스펙트럼을 관측하고 분석했던 노력이 있었다.

그러나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그는 갑작스레 달 연구에 뛰어들게 됐다. 심채경 박사는 “대기가 없다는 점에서 타이탄과 달랐던 달 연구는 대학원 신입생 수준으로 돌아가 공부해야 할 만큼 나에게 큰 도전이었다”라고 회상했다. 심 박사는 “달에 대한 기본 지식이 많지 않았기에 달을 전체적으로 이해하고자 내게 가장 익숙한 방법을 이용했다”라며 “달 여기저기에 있는 수천 개의 크레이터 관측 자료를 모아놓고 통계적 경향을 살피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지질학을 중심으로 달 크레이터 몇 개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기존의 달 연구와 달리,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전체를 파악하는 천문학의 연구 방식을 적용한 것이다. 그는 “나에게는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던 일이 기존의 달 과학에서 해오던 것과 다른 것이었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깨달았다”라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크레이터 수천 개를 통해 달 표면의 전반적 성질을 연구한 우주 풍화 연구는 학계의 주목을 받으며 2019년 『네이처』는 심채경 박사를 미래의 달 과학을 이끌어 갈 젊은 과학자로 소개했다.

“막상 달을 연구하려고 하니 파일만 열어볼 줄 알았지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이미 반세기 전에 달에 탐사선을 보냈던 미국의 과학자들에게 달은 밤하늘에 떠 있는 천체가 아닌 ‘지질학적 대상’인 지 오래다. …(중략)… 나는 그런 연구 내용을 단번에 흡수할 수 있는 배경 지식이 없었다. 숲을 보지 못한 채 밀림 속에 뚝 떨어져 눈앞의 넝쿨만 보고 있는 셈이었다. 그래서 우선 달 표면의 전반적 성질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중

 

달로 향하는 여정에 함께하다

한국형 달 탐사 프로젝트가 급격한 전환기를 맞은 2016년, 다양한 천문학 분과의 연구자들이 참여하며 태양계 연구자인 심채경 박사도 이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됐다. 지난해 8월 5일 발사한 한국 최초의 달 탐사선 ‘다누리’는 현재 한 달간의 시험 운영을 마치고 지난달 정상 임무 수행 체제로 변경해 본격적인 탐사에 나선 상황이다.

그는 다누리호의 6대 탑재체 중, 일명 ‘폴캠’(PolCam)이라 불리는 ‘편광 관측 카메라’의 개발 및 관측에 참여했다. 심 박사는 “놀이터에 있는 흙과 사막에 있는 흙이 서로 색이나 입자 크기가 다른 것처럼, 달의 표면이 매끈한지 거칠거칠한지에 따라 빛이 반사되는 형태가 다르다”라며 “편광 관측은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는 천체인 달 표면에 반사된 태양 빛을 관측함으로써 달 표면의 상태가 어떤지 역추적할 수 있는 기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편광 관측을 통해 달에 대해 한 차원 더 풍부한 데이터를 축적하고자 한 것이다. 심 박사는 “다누리를 발사하며 한국도 우주 탐사를 하는 나라의 반열에 올랐다”라며 “궤도 진입에 성공했으니 다음 단계에서는 달 착륙을 준비하고, 스페이스X 발사체를 사용한 다누리와 달리 국내 발사체를 이용한 착륙선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인류가 그토록 오랫동안 달에 가기 위해 노력해온 이유는 무엇일까? 심채경 박사는 “달은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실험실’이다”라고 명쾌하게 답했다. 우주에서 움직이거나 착륙하는 방법을 지구 환경에서는 실험할 수 없지만, 달에서는 인류가 우주에서 행하는 여러 활동과 그에 따른 영향을 실험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우주 탐사에 쓰이는 기술은 당장 큰 이득으로 돌아오지는 않지만, 그 기술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높은 수준의 과학 기술을 이룩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특히 심 박사는 “물자를 수송하거나 달 자원을 채취 및 활용하는 기술 등을 비롯해 기술 개발 분야는 무궁무진하며, 달이라는 극한 환경에서 잘 기능하는 기술이라면 지구에서도 아주 고도의 기술이 될 것이므로 산업의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라고 기대하기도 했다. 

달의 역사를 추적하는 것은 지질학 차원에서 이뤄지는 지구 연구의 길을 밝혀준다. 심 박사는 “학계에서는 달이 지구와 비슷한 시기에 생성됐다고 추측하고 있기에 달에 있는 물질이 지구의 과거 물질일 가능성이 존재한다”라며 “사람이 다니고 식물이 자람에 따라 지형이 많이 변화한 지구와 달리, 달에는 대기도 없고 초목이 자라지도 않았기에 40억 년간의 역사가 보존돼 있다”라고 덧붙였다. 달을 연구하는 일은 그 자체로 우주라는 자연을 이해하는 일임과 동시에, 지구의 역사를 추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의미다. 

 

심채경 박사는 천문학자가 아니더라도 우주를 사랑할 수 있고, 우주 탐사에 힘을 보탤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어쩌면 이미 우주를 사랑하고 있을지 모른다.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커다란 무언가를 가리킬 때 우리는 흔히 ‘천문학적’이라는 표현을 쓰고는 한다. 그 표현의 이면에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드넓은 우주와 독특한 천체에 대한 근원적인 호기심이 깔려 있는 것이 아닐까. 너무나 광범위하기에 어쩌면 막막할, 그럼에도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우주를 탐구하는 천문학자들에게 경의를 보낸다. “우주를 사랑하는 데는 수만 가지 방법이 있으니까!”

 

사진: 정연솔 기자

jysno@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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