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광화문 월대 및 주변부 발굴 현장 답사

문화재청은 일제에 의해 훼손된 경복궁의 역사성을 되찾기 위해 ‘경복궁 복원정비기본계획’을 수립해 1990년부터 경복궁을 복원해왔다. 그 일환으로 2018년 ‘경복궁 광화문 월대 등 문화재 복원 및 주변정비사업’이 시작되며 지난해 9월 광화문 앞에서 발굴이 착수됐다. 『대학신문』은 지난 16일(목) 광화문 월대 및 주변부 발굴 현장을 찾아 백여 년 전 월대가 자리했던 그 땅을 직접 두 발로 밟았다.

 

월대(月臺)란 무엇인가?

월대는 ‘달을 바라보는 대(臺)’에서 유래한 말로, 정전 같은 궁궐의 중요 건물 앞에 설치된 넓고 평평한 단을 가리킨다.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전나나 학예연구사는 “궁문의 중요한 표식인 월대는 궁궐의 위계를 나타낸다”라고 설명하며 “창덕궁의 돈화문, 경희궁의 흥화문, 경복궁의 근정문 등 여러 궁궐 앞에서 발견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광화문 월대는 경복궁으로 들어가는 길목일 뿐만 아니라 임금과 백성이 마주하는 공간이었다. 문화재청이 2018년 발표한 「경복궁 광화문 월대 및 동·서십자각 권역 복원 등 고증조사 연구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월대는 중국 사신을 맞이하는 각종 연회가 열리고, 광화문 육조거리에서 과거 시험이 치러질 때 왕이 현장을 지켜보고 합격자의 흥패를 나눠주는 장소였다. 당시 백성들이 이와 같은 행사를 구경할 수 있던 장소로는 월대가 유일했으며 곡식 하사 또한 이곳에서 이뤄졌다. 이번 발굴 조사에 참여한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 정여선 학예연구사는 “광화문 월대는 각종 행사가 열리는 장이자 궁궐 안과 밖을 이어주는 매개체였다”라고 설명했다.

왕의 공간인 궁궐과 관청이 가까이 있었다는 흔적 또한 남아있다. 발굴 현장에서 발견된 돌무더기 ‘적심석’이 그 사실을 뒷받침한다. 현장 안내를 담당한 신희권 교수(서울시립대 국사학과)는 “발견된 적심석은 의정부와 삼군부 행랑의 외곽을 지탱하던 주춧돌”이라며 “적심석이 경복궁 담장 바로 앞에서 발견된 것은 궁궐 안 임금과 궁궐 밖 관청이 밀접하게 소통했음을 보여준다”라고 덧붙였다.

▲적심석: 건물 하중을 지탱하기 위해 땅을 파 그 안쪽에 박아 쌓는 돌.
▲적심석: 건물 하중을 지탱하기 위해 땅을 파 그 안쪽에 박아 쌓는 돌.

 

훼철된 월대, 어떻게 복원되나

그러나 광화문 월대는 일제에 의해 훼철되며 현대에 들어와서는 그 기능이 단절됐다. 문화재청의 보고서에 따르면 월대는 1923년 일제가 조선부업품공진회를 준비하며 많은 관람객을 유치하기 위해 전차 선로를 개설하며 훼철됐다. 이번 발굴에서는 당시 매장됐던 전차 선로가 그 모습을 다시 드러냈다. 정여선 학예연구사 역시 “월대를 포함해 경복궁 일대는 당시 조선 사람에게 매우 중요한 공간이었다”라며 “일제가 그 가치를 알았기에 훼손했던 것”이라고 전했다.

신희권 교수는 일제에 의해 훼손된 발굴 현장을 바라보며 “발굴과 복원을 통해 일제의 잔재를 버리고 우리의 방식으로 경복궁 일대를 재구성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월대의 원래 규모는 너비 29.7m, 길이 48.7m지만, 2010년 도로교통 체계상 7~8m가량만 복원됐었다. 이후 경복궁 복원의 일환으로 ‘경복궁 2차 복원 정비 사업’(2011년~2045년)의 5단계 복원 중 1단계에 포함된 월대는 오는 10월 복원 완료돼 모든 시민에게 개방될 예정이다.

한편 발굴 현장에서 월대의 유구*인 기단과 어도의 경계 등이 발견되며 복원이 박차를 가할 것으로 기대된다. 신희권 교수는 어도의 흔적을 가리키며 “왕이 지나가는 길인 어도를 설치해 왕과 백성이 다니는 길의 위계를 달리했다”라고 설명했다. 전나나 학예연구사는 “궁 안 월대의 어도는 폭이 좁지만, 광화문 월대의 어도는 넓어지는 모습을 보인다”라며 광화문 월대에 있던 어도의 특징을 부연했다. 더불어 이번 복원을 통해 광화문 월대 좌우에 설치됐던 석조조형물인 난간석이 제자리를 찾을 전망이다. 신 교수는 “월대 복원 시 동구릉에서 보존된 난간석을 가져와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돌로 경계 지어진 어도.
▲돌로 경계 지어진 어도.
▲2단 2열의 월대 기단으로 1,400×400×300mm 크기의 장대석.
▲2단 2열의 월대 기단으로 1,400×400×300mm 크기의 장대석.

 

월대로 연결되는 역사 도심

월대 복원은 궁극적으로 서울 도심에 위치한 경복궁 일대의 역사적 의미를 되찾는 길이다. 정여선 학예연구사는 “일제에 의해 훼철된 문화유산을 복원하는 것은 조선 법궁의 가치와 역사성 회복에 매우 중요하다”라며 “경복궁의 역사성 회복을 위해 월대를 복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왕무 교수(경기대 사학과)는 경복궁 복원에서 월대가 갖는 의의에 대해 “월대는 궁궐을 나서는 국왕의 출발 지점이자 궁궐의 완전성을 상징하는 건축물”이라고 부연했다.

이렇게 복원된 월대는 약 700년의 역사가 서려 있는 경복궁과 현대화된 도심을 연결하리라 기대된다. 광화문시민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김기호 명예교수(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는 “월대는 경복궁과 광화문에서 잘 보이는 위치에 있었기에 광화문광장 일대 시가지를 경복궁과 자연스럽게 연결한다”라며 “현재 사직로로 끊긴 두 공간의 연결성이 월대 복원으로 강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월대 복원이 “자연스럽게 광장의 시민을 역사 공간으로 인도하고 나아가 환영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월대 복원은 과거를 마주하고 역사와 공존하도록 하는 문화재 복원의 중요한 일환이다. 이왕무 교수는 “문화재 복원의 핵심은 기억에 있다”라며 “우리가 기억될 미래를 위해 과거를 보존하며 현재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월대의 복원과 함께 경복궁이 온전한 모습을 되찾기를 기대한다.

*유구: 옛날 토목건축의 구조와 양식을 알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 자취.

 

사진: 정승혜 수습기자

luckyjsh1@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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