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영(화학생물공학부 석박사통합과정)
이원영(화학생물공학부 석박사통합과정)

“너도 집중 잘되는 약 먹어봤어?” 고교 시절 학원가를 중심으로 공부 잘되는 약의 효능에 대한 온갖 소문이 떠돌았더랬다. 시험 기간에 그 약을 먹고 전교 1등을 했다더라, SAT 전날 그 약을 먹더니 결국 하버드대에 갔다더라로 시작해 인터넷을 통한 불법 구매 가능성을 암시하는 식의 이야기였다. 신비의 명약이 등장했다는 소식은 수험생들의 마음을 술렁이게 했다. 집중력 차이는 곧 공부의 양과 질을 결정 지을 것이고, 첨예한 경쟁 상황에서 그 차이는 빛을 발하리라.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며 집중력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은 더욱 많아졌다. 역에서 302동으로 향하는 셔틀을 기다린다. 줄에 선 이들이 저마다 손안의 작은 화면을 바라보고 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스마트폰은 반복적 자극을 통해 뇌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을 가져온다. 중독이 심화되면 도파민 분비 이상 등으로 인해 만족감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게 되고 집중력도 저하된다.

집중을 잘하게 만들어주는 약은 실존할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수능이 다가올수록 수험생 연령대의 메틸페니데이트(Methylphenidate) 처방이 증가하며, 이후 다시 감소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향정신성의약품의 일종인 메틸페니데이트는 주로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치료에 사용된다. 중추신경계를 자극해 각성상태를 유지하게 함으로써 해당 약물을 복용한 이의 집중력을 향상시킨다. 

연구자들은 3R 원칙에 따라 동물 실험을 진행한다. 몸집이 작다고 한들 생명의 무게까지 가벼울 리 없다. 케이지에서 동물을 꺼내 차디찬 실험대에 올려놓는 순간부터 죄책감이 밀려온다. 혹시나 불필요한 고통이 가해지지 않게끔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 그러나 현실은 실험대보다도 차가운 듯싶다. 집중이 안 된다고요? 집중이 잘 되는 약을 드세요! 사람들이 스스로 혹은 친구에게 혹은 본인의 자녀에게까지도 거침없이 약을 권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 사회의 기형적 단면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아 마음이 쓰리다.

‘스포츠 정신’이란 말이 있다. 공정 경쟁, 협동심 등 스포츠를 통해 체득한 바람직한 마음가짐과 행동 양식을 뜻하는 말이다. 대표적으로 스포츠 정신에 반하는 행위 중 하나가 바로 경기력 향상을 위한 약물 사용, 일명 도핑(doping)이다. 치료를 위해 적절한 처방 및 복용 과정을 거친 이들을 나무라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스포츠 정신이 비단 스포츠 영역에만 적용되는 것일까? 지금도 누군가는 약을 먹어야만 성과를 낼 수 있다는 딜레마에 빠져있다. 안타깝게도 무분별한 복용은 높은 확률로 마약류와 유사한 부작용을 동반한다.

고대 로마의 풍자시인 유베날리스는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Anima Sana In Corpore Sano)라고 말했다. 그의 말은 그저 일상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일지 모르나 현대 과학은 이 말을 실제로 검증해냈다. 운동을 하게 되면 신경전달물질인 감마-아미노부티르산(GABA)이 분비되는데, 뇌를 활성화하고 집중력을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분당 120회 이상 심박수로 30분가량 달리면 행복감이 느껴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소위 말하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다.

운동 만능주의를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근본적 해결을 위한 노력은 미뤄둔 채, 앞뒤 없이 ‘약’을 먹고 ‘집중을 해내고야 마는’ 상황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당장의 과업을 수행해낼 수 있다 해도 결국 약에 의존하게 돼 반쪽짜리 성취감만 쥐게 되진 않을까.

집중이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흥미가 부족한 것은 아닌가? 동기부여가 필요한 경우라면? 다른 스트레스 상황이 집중을 방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혹시 집중력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봐도 좋다. 떳떳한 성취를 이루고 싶은 당신이라면, 우선 스마트폰을 내려놓자. 그리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산책을 나서보자. 조금 빠르게 걷다가 이내 살짝 뛰어도 좋다. 아무쪼록 모두의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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