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원 취재부장
김여원 취재부장

어느 날 친구들과 우스갯소리로 가상의 아이돌 그룹을 만들어보자는 이야기를 했다. 아이돌 그룹은 몇 명으로 구성할지, 각 멤버는 어떤 역할을 맡을 것인지, 성격은 어떠할지 사뭇 진지하게 이야기하던 중 이런 말이 나왔다. “요즘 아이돌은 금수저여야 인기가 많아.” “원래 힘든 환경이었는데 노력해서 아이돌이 됐다는 것은 요즘에는 매력 포인트가 아니야.” 당시에는 자연스럽게 웃고 넘어갔던 이야기인데, 요즘 이 말이 자꾸만 생각난다. 최근 너무나도 당연해진,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현상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느 아이돌이 금수저라느니, 그래서 더 좋다느니 하는 이야기는 각종 커뮤니티에 만연하다. 

비단 아이돌뿐만이 아니다. 요즘 가장 인기가 많다는 연애 프로그램이 방영할 때마다 ‘어떤 출연자는 부모님이 어떤 일을 한다더라’, ‘누구는 어디에 산다더라’라며 출연자가 금수저인지 아닌지 하는 이야기가 오간다. 그리고 그 사람이 금수저여서, 소위 ‘손에 물 한 방울 묻혀본 적 없다는 점’이 더 매력적이라고 한다. 심지어는 그들이 ‘진짜 금수저’인지 검증하며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원래는 아무 생각 없이 이런 글들을 넘기고는 했다. 그러나 의식하고 나니 이 현상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런 현상이 자연스러운 것인지 계속 되뇌어 봤다. 어찌 보면 더 많은 부를 선호하는 것은 자연스러울 수도 있다. 선호하는 것 자체는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지금처럼 물려받은 부가 사람들 사이에서 ‘칭송’받는 사회는 이해하기 어렵다. 그것이 칭송의 이유가 될 근거가 없으니 말이다. 롤스는 운에 의해 주어진 것들은 사회에서 보상을 요구할 근거가 되지 못한다고 이야기했다. 마찬가지로 운에 의해 주어진 물려받은 부는 칭송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물려받은 무언가가 칭송받는 현상은 부에서 끝나지 않는다. 물려받은 재능, 물려받은 외모 등 노력하지 않고 물려받은 것이 노력으로 이룩한 것보다 더욱 칭송받는다. 노력하지 않아도 원래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이 가장 매력적인 것이 된다.

중학생 시절, 사회 과목을 처음 배울 때 귀속지위와 성취지위에 대해 배웠던 기억이 떠오른다. 과거 신분 사회에서는 귀속지위가 중요했으나 근대 사회에서는 성취지위가 더 중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과거, 자유로운 사회를 갈망하던 사람들은 귀속지위로 인해 차별받지 않을 것을 요구하며 이를 위해 처절하게 노력했고 우리는 그들이 만든 사회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현대의 우리는 반대로 과거로 회귀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이런 모습이 지금은 현상 정도지만 계속 확산되지는 않을까, 현세대를 거쳐 다음 세대에서는 더욱 심해지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다시 생각해봐도 나는 이런 상황이 불편하다. 물려받은 것이 칭송받을수록 그렇지 못한 삶은, 그렇지 못한 모습은 부끄럽고 숨겨야 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려받은 것들 그 자체는 결코 사회에서 칭송받을 대상이 아니며 그 반대도 결코 부끄러운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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