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문해력의 현재와 미래

‘사흘 연휴’부터 ‘심심(甚深)한 사과’까지, 최근 몇 년간 청년 세대의 문해력 저하에 대한 우리 사회의 우려는 주로 어휘력 부족 문제에 집중돼 왔다. 문해력에 관한 논의 또한 자연스럽게 현장에서의 어휘 교육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정말 어휘력만이 문해력을 판단할 수 있는 지표일까. 현대 조건 속에서 확장돼 가는 문해력의 의미와 문해력 담론이 추구해야 할 건설적인 방향을 살펴봤다.

 

변화하는 문해력의 의미

문해력 저하를 향한 우려가 어휘력 논란으로 축소되면서 문해력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는 부실하게 이뤄졌다. 안서현 연구부교수(기초교육원)는 “문해력에는 여러 요소가 있음에도, 상대적으로 측정이 간단하다는 이유로 어휘력 기반의 측정과 평가가 주로 이뤄졌다”라고 꼬집었다. 백재파 교수(동아대 기초교양대학) 또한 “어휘력에만 초점을 맞춰 문해력을 소재로 세대 갈등을 유발하는 자극적 기사가 쏟아지는 최근의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 시대에 진정으로 필요한 문해력은 무엇이며,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지에 대한 본질적 고민은 찾아보기 힘들다”라며 우려를 표했다.

더불어 문해력을 어휘력으로 한정하기에는 문해력의 의미가 계속 변화하고 있다. 문해력은 ‘리터러시’(literacy)의 번역어로, 고정적 개념이 아닌 유동적 개념이다. 응용언어학자 김성우 작가는 저서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에서 “고대에는 ‘문학과 학식’이, 중세에는 ‘라틴어’가, 근대 이후에는 ‘모국어’가 리터러시 개념의 중핵으로 제시되고 있다”라며, 문해력이란 “불변하는 개념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맥락에 따라 적절한 의미로 구성돼 온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신지영 교수(고려대 국어국문학과) 역시 “문해력의 의미를 계속해서 확대하고 상황에 맞게 재해석 해내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새로운 시대의 소통을 위한 다중매체 문해력

오늘날의 언어환경은 문자문화에서 영상문화로 이행하고 있으며 온라인 기반의 소통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텍스트를 읽고 요약해 글을 쓰는 생성형 인공지능 ChatGPT의 등장이 보여주듯, 인간은 더 이상 문해력의 독점적 소유자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이런 시대적 맥락에서, 취재원들은 새로이 등장하는 매체와 전통적인 매체 모두를 적절히 이용해 정보를 직접 생산하고 활발히 소통할 수 있는 다중매체 문해력의 필요성이 대두된다고 입을 모았다. 조원형 교수(기초교육원)는 “오늘날에는 다양한 디지털 매체와 기기들을 자유롭고 올바르게 활용해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인 ‘디지털 문해력’이 필요하다”라고 전했다. 아울러 신종호 교수(교육학과)는 “디지털 문해력은 정보를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보가 공유되는 과정에서 정보를 올바르게 판단하고 가치 유용성을 파악하는 경험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백재파 교수 또한 “ChatGPT와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의 경우 부정확한 데이터를 학습해 사실과 거짓이 뒤섞인 대답을 종종 내놓는데, 사용자의 문해력이 낮으면 거짓 정보를 사실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아진다”라며 정보 판단 문해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편으로는 전통적인 ‘읽고 쓰는’ 문해력의 방향성도 변화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었다. 안서현 연구부교수는 “미디어 환경 변화와 인공지능의 발달로 기초 문해력보다는 ‘깊이 읽기’가 중요하다”라며 “예컨대 △몰입해 읽기 △맥락 이해하며 읽기 △연결하며 읽기 △비판적 읽기 같은 능력과 자기 생각을 비판적이고 창조적으로 쓰는 능력이 중요해졌다”라고 밝혔다. 

다중매체 문해력은 정보의 유용성과 진실성을 가려내는 판별 능력뿐만 아니라, 다중매체로 드러나는 여러 관점을 복합적으로 이해하는 능력도 요구한다.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컨텐츠를 추천하는 소셜미디어의 부상이 민주적인 소통 능력에 위기를 초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류웅재 교수(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는 “SNS 등을 통한 소통은 제한된 공간 안에서 끼리끼리의 소통을 강화하는 측면이 강하다”라며 “이는 공동체의 분화가 확산되게끔 한다”라고 설명했다. 백 교수 또한 “가짜뉴스의 범람, 유튜브를 통한 선택적 정보 소비로 정보 제공자가 선별된 정보만을 제공하는 ‘필터 버블’과 자신이 선호하는 관점만 소비하는 ‘에코 체임버’에 빠지기 쉬운 환경이 만들어졌다”라고 지적했다. 비슷한 의견만 재생산되는 환경에서, 자신과 다른 의견 또한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문해력이 함양되지 못한다면 민주적 소통에서 멀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문해력 저하가 소통의 부재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타자와의 관계를 고려해 다중매체 문해력의 의미를 재고해야 한다. 조원형 교수는 문해력이 “어휘나 구문에 대한 이해를 넘어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이해를 갖는 동시에 자신의 생각을 합리적인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문해력은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성우 작가 또한 문해력 함양의 중요한 역량 중 하나로 “문해력의 중심을 ‘나’에서 ‘타자와의 관계’로 옮기는 것”을 꼽는다. 그는 “문해 역량을 통해 자신과 타자를, 다양한 영역과 실천을 연결하는 작업에 천착해야 한다”라며 “문해력을 모든 사람의 권리이자 향유의 도구, 평등과 민주주의의 인프라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전했다.

 

해석을 넘어 성찰의 문해력으로

결정적으로 문해력은 기존의 텍스트 중심 담론에서 벗어나 삶의 다양한 국면을 성찰하는 담론으로 발전해야 한다. 김성우 작가는 “‘텍스트 중심 문해력’이라는 일종의 도그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문해는 글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지점에서 시작돼 공동체와 자아에 대한 숙고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지식이 늘어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렇게 늘어난 지식이 더 나은 삶과 사회, 그리고 더 나은 자아를 위해 어떻게 쓰여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에 교수자는 대학이 다양한 구성원들의 의견이 공유되는 공론장으로서 기능하며 학생들이 문해력의 핵심인 소통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격려하는 공간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신지영 교수는 대학에서의 문해력 교육과 관련해 “학생들이 그동안 하지 않은 불편한 방향의 도전을 통해 새로운 관점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밝혔다. 더불어 백재파 교수는 “이 사회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문해력의 핵심은 비판적 사고 능력에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자신과 대척점에 서 있는 사람의 말을 경청하고 논리적으로 토론함으로써 향상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이런 맥락에서 대학은 인문학과 교양 수업을 강화함으로써 우리 학생들의 문해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전했다. 

그 어느 때보다 문해의 대상이 다양해지고 있는 시대다. 문해력 의미 확장에 대한 이해로부터 문해력 담론의 변화가 시작돼야 하지 않을까.

삽화: 박재아 기자

0204jae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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