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진우 수습기자(뉴미디어부)
노진우 수습기자(뉴미디어부)

최근 JMS와 관련된 이슈가 대한민국을 휩쓸고 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가 재조명한 JMS의 엽기적인 행각은 많은 이들의 공분을 샀다. 필자는 OTT 서비스를 구독하지 않는 관계로 해당 다큐멘터리를 보지는 못했지만 여러 언론 매체를 통해 JMS의 실체를 전해 들었고, 그것은 가히 동시대에 일어났다고 믿기 어려울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정말 JMS만의 문제일까.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는 뉴스에서 종교 단체 혹은 종교인이 물의를 일으킨 사건을 심심찮게 보곤 한다. 경찰청에 따르면 실제로 지난 5년간 전문직의 사기, 횡령, 성폭력 등 지능·폭력 범죄 적발 현황에서 종교인의 적발 건수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종교의 영향력이 점점 줄어드는 것은 이런 세태와 무관하지 않다. 2021년 한국갤럽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만 19세 이상 남녀 가운데 비종교인의 비율이 과반수를 넘어섰고, 이런 추세는 계속되고 있다. 이는 개인이 삶의 주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생긴 현상으로 볼 수도 있지만, 비종교인의 61%나 되는 비율이 “호감 가는 종교가 없다”라고 답한 사실은 비단 주체 인식의 변화만이 그 원인이 아님을 보여준다. 물론 세상에는 바람직한 종교인도 많다. 종교를 향한 사회적 시선이 과한 손가락질이라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현시점의 종교가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종교 내부의 적극적인 노력이 절실하다.

그렇다면 종교인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단순한 내용이지만, 종교인은 자신의 종교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고 성찰해야 한다. 얼핏 들으면 쉬운 일 같지만 종교의 특성을 고려해 볼 때 간단치만은 않은 일이다. 종교는 믿음의 영역이다. 종교인의 자격은 믿음의 척도로 판단된다. 그렇기에 믿음을 의심하는 사람은 집단 내에서 배척되고는 한다. 하지만 진실은 다르다. 종교인들이 명심해야 하는 사실은 의심하지 않는 믿음은 공허하다는 것이다.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이 무엇을 지향하는지, 그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에 대한 성찰이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건강한 종교 집단은 개개인의 이런 의문에 침묵이나 폭력으로 대응하지 않는다. 오히려 의문을 이해하고 활발한 담론을 통해 개인에게 선택권을 쥐어준다. 그리고 이런 선택을 바탕으로 할 때 믿음은 비로소 의미를 지닌다. 여태껏 논란이 된 종교 집단에서는 맹목적인 순종만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겼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종교계는 세속 사회와의 접점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현재의 질타는 분명 종교가 사회에서 요구하는 부분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기에 가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기대라는 것은 무엇일까. 「국민일보」에서 지난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80%가 넘는 사람들이 종교의 바람직한 역할로 ‘이웃에 대한 사랑’을 꼽았다. 성찰해 볼 만한 대목이다. 한국 사회에서 영향력 있다고 손꼽히는 종교가 모두 사랑과 자비를 내세운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종교가 얼마나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그동안 사랑을 제공한다는 명목으로 믿음을 강제하고, 독단에 빠져 제대로 된 소통의 과정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사랑과 자비를 통해 힘의 논리에 지친 사회인이 스스로 믿음의 문을 두드리게 하는 것, 이것이 바람직한 종교의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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