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곳곳 가판대에서 『대학신문』을 만나면 학내 소식의 헤드라인만 읽고 쓱 넘기곤 했다. 그러나 2066호에서 『대학신문』이 대학 내외의 사안들을 어떻게 다뤘는지를 읽고 학보의 기능이 교내 소식 전달에 그치지 않음을 느꼈다. 『대학신문』만의 관점으로 쓰인 기사를 통해 새로운 논의를 이끌고자 하는 취재진의 노력도 특히 와닿았다.

2066호 5면의 학술 기사는 프로이트와 데리다의 애도 이론을 통해 이태원 참사 이후 우리 사회가 충분히 슬퍼하고 애도했는지, 애도할 수는 있었는지 의문을 던졌다. 우리 사회는 국가 애도 기간의 종료와 함께 상실감을 표상할 시간도 빼앗겼다. 참사의 기억은 우리 몸에 ‘멜랑콜리’의 상태로 남아 치유되지 못한 채 성난 상처가 된다. 실패해 버린 애도에 대해 논하고 국가의 형식적 애도는 과연 누구를 위한 애도였는가 묻는 기사에서 공동체의 기억과 경험을 환기하는 힘이 느껴졌다.

RC의 모범 사례를 취재한 기획 기사도 인상 깊다. 입학 전 여러 공식 창구로 LnL 사업의 설명을 들었으나 시범 사업에 제기될 수 있는 우려는 『대학신문』이 아니라면 알기 어려웠을 것이다. LnL이 무엇인지를 넘어 무엇이 돼야 하는지 기자의 경험을 토대로 논의하는 구성도 좋았다. 그러나 해외 사례를 중점에 둔 기사인 만큼 서울대 RC를 토의하기에는 부족한 점도 보였다. 가령 서울대 RC 시설과 프로그램의 한계를 지적할 때 학교 측의 개선 계획이 있는지, 있다면 무엇인지도 함께 다뤄졌다면 더욱 풍부한 기사가 됐을 것 같다. 또한 LnL을 경험하고 있는 신입생의 목소리가 비교적 작았던 점도 아쉽다. LnL 신입생 당사자가 RC를 잘 이해하고 있는지, 학교 측에서 앞으로의 기획에 학생과 적극적으로 소통할 의지가 있는지 물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된다.

또한 『대학신문』을 읽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입생으로서 의견란의 ‘마로니에’, ‘맥박’, ‘자하연’ 등의 코너 제목만 읽고 해당 코너가 어떤 의견을 다루는지는 알기 어려웠다. 그러나 필자와 같은 새내기의 미숙한 감상도 신문에 실어보겠다 할 만큼 지면에 학우들의 다채로운 시각을 담은 점은 흥미로웠다.

『대학신문』을 읽으며 기성 언론과 다른 시각으로 지금의 우리가 해야 할 이야기를 쓰고 있다고 느꼈다. 서울대 구성원을 넘어 사회의 일원이기도 한 우리의 경험을 녹인 기사를 앞으로의 『대학신문』에서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문도희

소비자아동학부·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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