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와하라 사쿠라 뉴미디어부장
카와하라 사쿠라 뉴미디어부장

“너는 한일전 볼 때 어느 팀을 응원해?” 작년 하계 올림픽 여자 배구 한일전 때, 나의 인스타그램 DM을 도배한 메시지다. 지금까지 이런 부류의 질문을 수십 번 받으면서 내가 터득한 최선의 답변은 ‘이긴 팀이 우리 팀이지 뭐~.’ 덤덤하게 자판을 두들기던 나는 올해로 유학생활 10년차가 됐다.

중학교 때 한국사를 배웠고, 고등학교 때는 수능을 치렀다. 독도의 날에는 포스터를 제작해 조별로 발표도 했다. 처음 들어보는 자국의 만행들, 그리고 일본에서는 한 번도 못 봤던 ‘독도’ 교과서. 당시에는 모든 것이 충격이었고 그 충격은 곧 의심과 두려움으로 변했다. 이런 교육을 받고 자라니까 이 사람들이 일본을 싫어할 수밖에 없겠구나. 최대한 눈에 안 띄게 노력해야겠다.

고등학교에 올라가고 나서는 한국 사회에, 한국인 무리에 스며들려고 온갖 노력을 했다. 또래 친구들이 어린 시절 봤다는 프로그램도 찾아보고, ‘ㄹ’ 발음을 굴리는 연습을 끝도 없이 했다. 한국사에 너무 과몰입했던 나머지 반일 감정이 들었던 시기도 있었다. 

이제는 사쿠라라는 이름만이 내가 외국인임을 보여주는 유일한 단서가 됐다. 이사 간 동네의 주민 센터 직원도 체류지 변경 신고서가 아닌 전입 신고서를 건네주고, 학과 사무실에 전화해도 내가 유학생이라는 사실을 안 믿어준다. 내가 외국인이라는 것을 까먹는 친구도 종종 있다. 예전에는 초면에 일본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었는데 이제는 뭔가 복잡한 가정사가 있는 것처럼 오해를 받는 건지 내 출생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도 거의 없어졌다. 

한국 사회에 스며들기. 오랫동안 품어 온 목표를 달성하니 깨달은 것이 있다. 아무리 외국인이 아닌 척을 해도, 아무리 한국인과 같은 지식을 쌓아도 내가 일본인이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 한국 사회에 스며드는 것은 한국인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일본인이다. 나에게 국적은 마치 저어도 저어도 녹지 않는 핫초코 가루처럼, 한국 사회에 녹아들지 못한 찌꺼기가 된 것이다.

고학년이 되니 취업을 고민하는 시기가 됐다. 원래는 한국에서 취업을 하기 위해 준비해 왔었다. 그런데 국적이라는 이 족쇄가 계속 내 목덜미를 잡았다. 굳이 외국인을 뽑아주는 곳이 있을까? 나보다 우수한 한국인 학생들이 수두룩한데. 고민에 자빠진 나에게 어느 한 교수님이 조언을 해 주셨다. “한국에서 한국인처럼 잘하려고 하지 마.” 

“네가 한국인보다 못하는 것이 있더라도 한국인이 느껴보지 못한 것을 많이 느껴봤을 것이고, 너만이 얘기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충격적이었다. 내가 외국인으로서 ‘못 하는 것’은 수없이 고민해 봤지만,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고민해 본 적은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고민해 온 경험들, 중간자의 입장에서 양국을 바라봐 온 경험들을 남들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일본인으로서 내가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려고 노력중이다. 고등학교 시절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한국인이 되려고 하지 말라고. 그냥 나라서 잘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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