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한국의 인종차별 양상과 그 담론

한국인의 유럽 여행담에 어김없이 따라붙는 이야기가 있다. 흔하게는 캣콜링부터 시작해 심할 경우 혐오 범죄에 가까운 사건까지, 서구 국가에 다녀온 한국인이라면 인종차별을 당한 경험을 하나쯤 갖고 있기 마련이다. 실제로 국제 사회 안에서 한국인은 보통 인종차별의 피해자로 주로 논의된다. 그러나 공간을 한국으로 좁혀보면 어떨까. 한국 사회의 인종적 다양성이 점점 증가하는 시점, 『대학신문』은 한국 사회에서의 인종차별 양상과 인종차별 담론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알아봤다.

◇피부색으로 인종에 위계를 매기는 시선=한국 사회에서는 인종차별의 피해자로서의 경험이 많이 이야기되는 것에 비해, 우리가 다른 아시아인에게 인종차별의 가해자라는 사실은 잘 거론되지 않는다. 특히 한국인이 백인과 아시아인에 대한 위계적 시선을 내면화하고 있음은 연구 사례들이 입증해주고 있다. 노경란 박사와 방희정 교수(이화여대 심리학과)는 연구 「한국대학생과 국내체류 외국대학생 간에 인종에 대한 명시적 및 암묵적 태도의 차이」에서 한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백인 △한국인 △흑인 △동남아시아인으로 구성된 각각의 타 인종 그룹에 대한 선호도를 조사했다. 조사 결과 한국인은 백인에 대한 선호도가 가장 높았고 동남아시아인과 흑인에 대한 선호도는 낮게 나타났다. 특히 동남아시아인에 대한 선호도는 국내에 체류하는 다른 외국 학생들과 비교했을 때 두드러지게 낮았다. 

이처럼 한국 사회에는 백인을 상대적으로 높게, 아시아인은 낮게 취급하는 편향이 존재한다. 손인서 교수(사회학과)는 “한국인이 같은 아시아인보다 백인에 우호적인 인종적 관념을 갖고 있다는 것은 여러 연구를 통해서도 확인되는 사실”이라며 “외국인이 출연하는 대중매체 프로그램에서 백인은 근대적인 인물로, 동남아인은 전근대적인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편향적인 관념이 드러난다”라고 지적했다. 일례로 한국의 드라마 속 백인은 전문직에 종사하는 동경집단으로 동남아시아인은 사회 하류층과 같은 동정집단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대학생 A씨(24)는 인종에 대한 차별적 시선이 차별 행동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전했다. 그는 “어릴 적 지하철에서 인도인처럼 보이는 외국인이 신기해서 계속 쳐다본 적이 있다”라며 “그것도 인종차별적인 행동이었음을 후에 깨달았다”라고 고백했다. 직장인 B씨(26) 또한 호주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을 회상하며 “백인과 흑인에게 모두 차별 받은 경험이 있지만 백인과는 달리 흑인만 선입견을 가지고 바라봤다”라고 말했다. 개인에 의한 차별 경험이 특정 인종집단에 대한 편견으로 확대된 것이다.

◇한국의 인종주의는 어떻게 탄생했는가=이처럼 한국만의 특수한 인종차별 양상이 자리 잡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사단법인 인도연구원 이옥순 이사는 ‘서구식 인종주의’ 개념을 활용해 한국의 인종주의를 설명했다. 그는 “한국이 근대화를 이룩하는 과정에서 서구의 문학, 교과서, 학술서, 미디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며 서구가 가진 인종차별적 인식을 함께 받아들였다”라며 “한국이 서구식 인종주의를 은연중에 내재해 중국인이나 동남아시아인을 같은 아시아인으로 바라보지 않게 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구식 인종주의의 내재화가 한국으로 하여금 자국은 서구와 동일시하며, 다른 아시아인은 또 다른 동양으로 차별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의미다. 

한편, 국제 사회에서 한국이 점한 중간자적 위치를 고려해 한국의 인종차별 양상을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정회옥 교수(명지대 정치외교학과)는 “한국의 인종주의는 차별 대상의 경제적 수준에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다른 인종차별과 구별된다”라며 ‘중간 국가’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한국이 경제적으로 세계 10위권 안에 들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인식 수준 등을 다각적으로 고려했을 때 선진국으로도 개발도상국으로 보기도 어려운 중간 국가라는 것이다. 그는 “한국인이 흑인을 차별하는 과정에서 이런 현상이 잘 드러난다”라며 “같은 흑인이라도 이들의 국적이 선진국인 미국인지, 혹은 낙후됐다고 인식되는 아프리카 국가인지에 따라 한국인이 이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라고 부연했다. 정 교수는 “경제적인 수준에 따라 촘촘하게 인종주의가 형성되는 과정은 한국의 인종주의에서 눈에 띄는 특징”이라고 정리했다.

◇변화의 시작은 정확한 인식에서부터=이처럼 양가적인 한국의 인종주의와 인종차별 현상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한국은 1978년 ‘유엔’의 ‘모든 형태의 인종차별 철폐에 관한 국제협약’(Convention of the Elimination of All Forms of Racial Discriminiation)에 가입했다. 하지만 2018년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한국의 협약 이행에 대한 심의 결과 발표에서, 2008년, 2012년 권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인종차별을 정의하고 금지하는 포괄적인 법을 마련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며 한국 사회가 인종차별 철폐를 위한 보다 실질적인 움직임에 나서야 함을 거듭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현재 그 이행도 미흡한 실정이다. 정회옥 교수는 “인종차별은 개개인의 잘못이 아닌 역사적인 구성물”이라고 지적한다. 인종차별을 가해자 혹은 피해자 개개인의 문제로 다룰 것이 아니라, 인종차별이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존재해왔다는 사실부터 바로 인식해야 한다는 의미다. 손인서 교수 또한 “결국 현상의 원인을 정확히 진단해야 그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다”라고 강조한다. 그는 “인종주의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 돼야 사회구조적 수준에서 논의를 지속하고, 나아가 올바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이며 한국 사회에서 인종차별과 관련된 논의가 활발히 이뤄져야 함을 피력했다. 이옥순 이사는 “다양한 문화적 스펙트럼을 가진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라며 “이들과 공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인종차별과 관련된 담론이 수면 위로 떠오를 때다”라고 말했다. 

일례로 대표적인 다민족 국가인 독일에서는 인종차별에 대한 시민단체의 다양한 쟁점화 노력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코리아협의회 한정화 대표는 “인구의 40% 이상이 이주 배경을 가지고 있는 베를린의 경우, 한 지역구 내에서도 약 30여개의 다인종 단체가 반 인종차별이라는 공통된 가치로 연대하며 활동한다”라며, “한국도 빠르게 다문화 사회로 나아가고 있는 만큼 조직적 대응을 이끌어내려는 움직임이 확장되기를 바란다”라고 제언했다.

한국이 점점 다양한 인종이 함께 사는 다민족 국가로 변화하고 있는 만큼 우리는 인종차별을 예민하게 인식해야 한다. 나도 모르게 차별적 시선을 가지고 상대방을 바라본 적이 있었는가? 만약 그렇다면 부끄러움보다는 결단이 필요한 순간이다. 한국 땅에 발 딛고 살아가는 모두가 안전하고 행복할 수 있도록, 우리는 그동안 인종차별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었음을 반성하고 이에 관한 적극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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