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재 교수(지리학과)
박정재 교수(지리학과)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그리 익숙치 않았던 기후 위기라는 단어가 이제는 일상어가 된 느낌이다. 개인적으로 인간의 선하고 굳은 의지가 결국에는 기후 위기를 극복해 낼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지구온난화를 막는다고 인류가 겪고 있는 모든 환경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 점을 유념해야 한다. 기후 문제 외에도 동식물의 멸종, 종 다양성 감소, 환경오염 등 우리가 저지른 근시안적인 행동이 부메랑같이 돌아와 우리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인류세’(人類世)는 이를 모두 포괄하는 용어다. 이는 인위적인 지구 교란의 위험성을 알리고 우리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온난화가 나쁜 것인가”라고 물으며 기후 위기에 의구심을 보이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 기온이 오르면 오히려 득을 보는 지역과 사람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온 상승에 집착하는 기후 위기보다 인간에 의한 지구 생태계의 붕괴를 암시하는 인류세가 인류의 자성을 촉구하는 데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 인류세의 인간 중심적 사고는 지금껏 지구를 이용의 대상으로만 여겨왔다. 이는 6번째 대멸종이라 일컬어지는 생태계 파괴로 이어졌다. 자연은 보호와 보전의 대상이라는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대기화학자 폴 크루첸이 지구온난화를 경고하며 처음 인류세를 들고 나왔을 때만 해도 사회적 반향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많은 사람이 지구의 지속 가능성 문제를 인식하고 우려한다. 학계에서는 인류세라는 개념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미래의 위기 상황을 타개해보자는 공감대가 강하게 형성돼 있다.

‘인류세’ 용어의 사회적 의미를 다지기 위해 과학자들이 나섰다. 이들은 인류세의 시작에 대한 합의를 함으로써 이 용어를 정식 학술 명칭으로 쓰고자 한다. 그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전 세계의 퇴적물이나 퇴적암에서 공통으로 보이는 층서학적 근거를 찾는 것이 시급했다. 2019년에 국제층서학위원회(ICS)는 잠정적으로 핵실험 낙진층이 확인되는 1950년경을 인류세의 시작으로 삼자는 합의에 이르렀다. 예상대로 인류세 시점에 관해 다른 견해를 보이는 과학자들의 반발이 잇달았으나 위원회는 이에 개의치 않고 일을 추진하고 있다. 작년부터 진행한 투표 결과를 토대로 1950년경의 환경 변화가 가장 명확히 드러나는 곳을 찾는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이르면 올해 인류세가 새로운 지질시대의 정식 학술 명칭으로 공인받을 수도 있다. 해당 용어를 둘러싸고 다양한 의견이 존재함에도 논의의 속도를 올리고 있는 이유는 최근 들어 잦은 기상 이변으로 기후 위기의 심각성이 가시화된 것과 무관치 않다.

한편 인류세를 둘러싼 학계의 논의가 지지부진하다고 느꼈는지 층서학적인 증거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자주 들린다. 대문자 ‘A’의 ‘Anthropocene’은 지질시대 명으로 활용하고, 소문자 ‘a’의 ‘anthropocene’은 인류세의 위기를 표현할 때 쓰자는 절충안도 나왔다. 지구 환경에 민감한 사람들은 인류세의 학술적 의미를 두고 길게 늘어지는 논쟁이 마뜩잖다.

안타깝게도 난민 문제나 전쟁 등으로 세계화는 빠르게 후퇴 중이다. 대신 극우 성향의 포퓰리스트가 내세우는 자국우선주의가 지지를 받는다. 에너지 안보와 식량 안보가 중시되면서 지구온난화 문제의 해결은 요원해져만 간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또한 2018년 온실가스 배출량 대비 2030년까지 40%를 감축할 것이라는 계획을 공표한 후 이의 실현 가능성을 놓고 갑론을박만 치열하게 벌이고 있다.

기후 위기와 인류세 문제에 확실한 정답은 없다. 그렇다고 그냥 방치해서는 절대 안 될 일이다. 무엇이 최선에 가까운지 알려주는 것은 정직한 전문가의 몫이다. 현 상황은 비관적으로 보이지만, 정상적인 지구를 다음 세대에 물려주려는 우리의 소망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긍정적인 신념을 갖고 상황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계속해서 기울이자. 인류와 지구가 자연스럽게 공생할 수 있는 그 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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