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령(지리교육과·18)
김미령(지리교육과·18)

“소년등과일불행(少年登科一不幸).”

‘소년이 높은 성적으로 과거에 합격하는 것은 인생의 큰 불행 중 하나’라는 뜻으로, 송나라의 학자 이천(伊川) 정이(程頣)가 남긴 문장이다.

그러나 이는 이른 시기의 성공을 좇아왔던 우리 사회의 통념과 사뭇 다르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 사회에서는 일찍 출세하는 것을 바람직하게 여겨 왔다. 예전부터 시험에서는 언제나 최연소 합격자에게 관심이 쏟아졌고, 각종 대회가 열리면 최연소 우승자에 대한 보도가 쇄도했다. 그리고 지금은 이른 성공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을 대변하는 표현으로 ‘영 앤 리치’(young and rich)라는 말이 있는 것으로부터 그런 세태를 파악할 수 있다. 이런 시대에서 이른 성공을 가장 열망하는 계층은 바로 우리 대학생일 것이다. ‘N수’로 인한 늦은 입학과 취업 및 고시 준비 등으로 인한 ‘늦졸’이 보편적 경향이 되며 이른 성공이 더욱 귀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토록 갈망하는 이른 성공을, 이천은 왜 불행이라고 말한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갖고자 하는 것을 일찍 가지면 좋은 것 아닐까? 그러나 어린 나이의 성공이 독이 되는 것은 성공만을 경험한 나머지 기고만장해지기 쉬운 까닭이다. 어려서부터 탄탄대로만을 걸은 사람은 다른 사람이 걷는 가시밭길이 얼마나 험난한지 알 수 없다. 게다가 그 험난함을 알 필요가 없으니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다른 이의 실패를 이해하고 공감하지 못하는 거만한 자가 돼 버리기 쉽다.

그러니 우리는 이른 성공을 경계해야 한다. 한 번 이른 성공을 거두었다 해서 남들보다 모든 면에서 우수한 것도, 언제나 이르게 성취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를 모른 채 처음의 성공에 취해 남들을 아래로 보고, 또 그들의 마음을 살피지 않는 사람이 된다면 장차 자신에게 실패가 찾아왔을 때 일어서는 법을 끝내 알지 못할 것이다.

이르게 성공하지 못해도 이를 완전한 실패로 여길 필요는 없다. 그것이 앞으로도 성공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은 전혀 아니니 말이다. 장미가 벚꽃보다 늦게 폈다고 해서 장미가 벚꽃에 패배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3월에 피는 꽃이 있으면 4월에 피는 꽃도 있듯이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만의 때가 있다. 모든 꽃이 피고 지는 때가 한날한시로 같다면, 꽃이 지고 난 뒤의 세상은 얼마나 삭막할 것인가. 우리는 각자 다른 때를 맡아 세상을 밝히는 꽃 같은 존재다. 각자의 보폭으로 걸어가다 보면 각자의 때를 만날 것임을 믿어야 한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감하는 능력이다. 내가 아파 보지 않고서는 남의 아픔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실패로 인해 좌절하는 사람에게 진정으로 따뜻한 위로를 건넬 수 있는 사람은 한 번도 실패해 본 적 없는 사람이 아니라 수많은 실패를 겪고 일어난 사람이다. 더 많이 아파해 봤을수록 더 많은 아픔에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른 나이에 성공한 사람은 그것에 도취하지 않도록 더욱 경계할 것이며, 성공을 기다리는 사람은 실패가 계속된다 해서 그것을 한스럽게 여기지 않아야 할 것이다. 실패의 시간은 우리를 더 넓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만드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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