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우(화학생명공학부 객원교수)
이상우(화학생명공학부 객원교수)

“졸업하고서 무엇을 하고 싶은가요? 직업을 넘어서 내가 인생에서 원하는 것,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학생들이 내 사무실에 방문하면 나는 보통 위의 물음으로 대화를 시작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뚜렷한 이도 그렇지 않은 이도 있다. 학생이 어떤 답을 하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계속된 물음으로 학생들이 스스로 답을 찾게 돕는 것뿐이다. 

직업으로 선택했기에 학생들을 가르치고 지도하지만, 어떻게 해야 한다고 배운 적은 없다. 내 사무실에 여러 가지 이유로 학부생부터 대학원생까지 찾아와 도움말을 구한다. 도움을 주고 같이 답을 찾고 싶어도 찾아오는 이들의 지난 체험, 그리고 한 개인으로서의 바람에 대해 내가 알아낼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그들의 살아온 삶을 모르고 나와는 다르기에 나를 바탕으로 조언할 수는 없다. 내 직업적 그리고 개인으로의 경험은 한정적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나를 찾아온 이들이 스스로 원하는 답을 찾는 데 도움이 될 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섞은 질문을 하는 것뿐이다.

대학원생 지도도 그렇다. 학생의 연구를 두고 어떻게 그 결과를 얻게 됐으며, 왜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 묻는다. 처음 지도받는 학생들은 대개 당황하지만, 일이 년 정도 하다 보면 자신의 언어로 말하기 시작한다. 학생은 내게 연구 결과를 논리적으로 정당화하고 연구의 중요성을 설득한다. 이쯤 되면 더 이상 내 지도 학생이 아니라 훌륭한 동료다. 가끔 이 과정이 맞지 않는 학생들도 있어 다른 길을 찾아 떠난다. 잘 지내는지 연락해보면 다들 새로 선택한 길에 만족한다고 한다. 다행이다. 떠난 학생들은 스스로 결정했기에 그렇다고 생각한다. 내가 지금 시도하고 있는 이 길이 나에게 맞는지 안 맞는지는 해 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동료와 학생들을 관찰하며 점점 더 확신하게 된다. 우리는 흥미, 재능, 취향 등 모든 것이 다르다. 나의 최선은 학생들이 자신이 추구하고 싶은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사소한 계기를 ‘물음’이라는 형식으로 돕는 것뿐이다. 타자(他者)에 의해서 주어진 가치가 아닌 자신이 삶을 통해 추구하고, 노력하고, 성취해 나의 가치를 실현하는 기쁨을 얻는 것이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믿는다. 한정된 몇 가지의 목표와 가치만을 중요하다고 믿을 필요도 없고, 그럴 리도 없다. 내가 만난 사람들은 모두 달랐고, 자신이 바라는 가치를 위해 노력해 온 사람들은 모두 다른 모습의 성공을 이루고 있었다. 그것을 타인이 어떻게 평가하든 간에.

30여 년 전쯤에 없어진 국민교육헌장에서는 내가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타고 태어났다며 나의 가치를 선언했지만, 이제 머리가 굵기에 나는 그런 타자의 사명과는 관계없다는 것을 안다. 내가 발견하고 추구하는 가치와 목표를 위해서 살고, 하나의 시민으로서 내 주관적인 삶이면 나와 모두에게 충분하다.

모국을 떠나 20여 년간을 떠나 지내다 기회가 있어 관악에 한 달여 머물며 학생들과 조금이나마 소통할 기회가 있었다. 학생들은 모두 바쁘게 열심히 살고 있었고 새로운 것을 이해하고 싶어 했다. 학부 졸업 후 사회인으로 모국에서 지낸 적이 없기에, 지금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생존을 위한 지식과 기술을 넘어 자신이 원하는 가치의 발견을 위한 문답의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는지 알지 못한다. 그래도 내가 얻고 싶은 가치를 발견하고 한 명의 주체적인 시민으로서 그리고 자기 분야의 전문가로서의 성취를 바란다. 하나의 기쁜 개인으로 그리고 그 기쁨이 모여 만드는 우리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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