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간호법 제정안의 제정 배경과 쟁점

지난 2월 9일 간호법 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됐다. 이는 코로나19로 간호사 인력 부족 문제가 표면화되며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간호계의 목소리가 반영된 결과다. 그러나 간호법 제정안의 구체적 조항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지며 간호법 제정안 통과는 계속해서 지연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대학신문』은 간호법 제정안을 둘러싼 주요 쟁점을 짚어봤다.

 

◇열악한 처우 실태, 바라만 보는 간호법 제정안=코로나19 이후 대두된 간호사의 열악한 노동 실태를 개선하기 위한 것이 간호법 제정안의 중요한 목적이었다. 서은영 교수(간호학과)는 “한 상급종합병원의 5개년 치 내·외과 성인 병동 분석 자료를 보면 환자 한 명당 요구되는 간호 업무량이 증가했다”라고 지적했다. 노인간호사회 하주영 회장 역시 “의료인 정원 기준을 준수하지 않는 의료기관이 많다”라며 “결국 많은 간호사가 혼자 감당하기 힘든 수의 환자를 담당하며 고통받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런 노동 실태를 해결할 수 있는 조항은 간호법 제정안에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고 보기 어렵다. 이번 제정안에는 △국가 및 지자체가 간호사의 근무 환경과 처우를 개선할 책무가 있다고 명시한 제21조 △근무 환경과 처우 개선을 요구할 간호사의 권리 등을 담은 제22조 △간호사 인권 침해 금지를 언급한 제24조 등이 포함됐으나, 간호사 1인당 환자 수의 규제, 노동 시간 명시와 같이 과로를 직접적으로 억제하는 내용은 명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전공의협의회 강민구 회장은 “현재 간호사의 처우 개선 내용은 잘 반영되지 않는 반면에 업무 범위 설정 관련 논쟁만 거세지고 있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간호법 제정안에 언급조차 되지 못한 현장의 문제도 있다. 서은영 교수는 “현 체계상 질병에 대한 수술이나 주사를 놓는 등의 표준적 치료만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의료수가 산정에 반영된다”라며 “이는 치료 중 발생하는 돌발 상황에서 간호사가 수행한 역할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이뤄지기 어렵게 한다”라고 짚었다. 이처럼 간호법 제정안은 간호사의 노동 환경에 대한 숙고가 충분하지 않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불명확한 업무 범위, 갈팡질팡하는 간호법 제정안=간호사의 처우 문제는 간호사가 병원에서 수행하는 업무의 영역이 불명확한 점과 관련이 깊다. 법률사무소 선의 오지은 변호사는 “의료 현장이 세분화·전문화됨에 따라 간호사의 업무 범위에 대한 의문점이 늘어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오 변호사는 “의료법에 ‘진료의 보조’라고 간호사 업무가 규정돼 진료 주체인 의사가 간호사에게 요구하는 일이라면 모두 수행해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종종 발생한다”라고 전했다. 때문에 그는 “업무 범위의 명확한 기준이 존재해야 한다”라고 짚었다.

이런 요구에 발맞춰 2021년 3월에 발의된 간호법 제정안에서는 의료법에 ‘진료의 보조’라고 쓰여 있던 문구를 ‘진료에 필요한 업무’로 수정함으로써 간호사의 업무 영역을 재정의했다. 문제가 되던 업무 영역을 좀 더 유동적으로 바꿔 간호사의 부담을 덜고자 한 취지였지만, ‘진료에 필요한 업무’라는 여전히 모호한 문구는 오히려 비슷한 직군 종사자들의 큰 반발을 일으켰다. 유동적인 간호사의 업무와 타 보건 직군 업무가 겹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한응급구조사협회 박시은 부회장은 “진료에 필요한 업무라는 정의가 불분명해 너무 포괄적이었다”라며 “이번 법안에서는 문구가 의료법과 같이 ‘진료의 보조’로 다시 수정되면서 해당 논란은 일단 일단락됐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해당 조항이 다시 의료법대로 회귀하며, 간호법 제정안에 간호사의 업무 범위에 대한 개선은 결국 제자리 걸음이다.

◇지역사회에서 간호사의 활동 범위 모호해=병원 내 간호사의 업무뿐만 아니라, 간호사의 역할이 지역사회의 범위로 확장돼야 한다는 논의도 이번 간호법 제정안에 담겼다. 간호협회는 “초고령화 사회로의 진입에 따라 간호사의 역할이 확대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런 의견을 반영해 간호법 제정안 제1조에는 기존 의료법과 달리 모든 국민이 의료기관과 지역사회에서 간호 혜택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명시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지역사회라는 단어의 모호함에 대한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 정재현 부회장은 “지역사회라는 말은 간호사들의 업무 범위에 대한 제한을 너무 약하게 두는 것”이라며 “이미 돌봄 전문 직종인 요양보호사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제정안 내용은 설득력이 없다”라고 지적했다. 박시은 부회장 역시 “각 영역에 전문성을 지니는 타 보건 의료 직군들의 활동 영역 침해로 의료 공급의 질이 저하될 수 있다”라고 우려를 표했다. 한편 오지은 변호사는 “간호사의 활발한 활동으로 해당 지역 내 구성원 각각의 건강이 보장되면 전체 사회의 건강까지 지켜질 수 있다는 취지로 이해된다”라며 법안에 있는 지역사회의 과도한 해석은 경계하되 해당 문구가 명시될 필요성은 있다고 밝혔다. 사회 변화에 따라 간호 서비스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지금, 그 범위는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숙고와 논의를 통해 간호법 제정안을 보완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간호법 제정안의 논의는 간호사의 처우 개선을 위해 시작됐지만 실제 법안의 내용은 원래 취지와 거리가 멀어졌다. 초기 간호법 제정안이 필요했던 이유를 되돌아볼 때다. 간호사의 처우는 국민의 건강, 나아가 생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간호법 제정안에 대한 격렬한 논쟁이 범국민적 관심을 받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는 점이 기억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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