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선거제 개편 시도의 향방

우리나라의 현행 선거제는 지역구 의원을 선출하기 위한 소선거구 단순 다수제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결합된 혼합형 선거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비례대표 의석수가 너무 적어, 비례대표제가 가져오는 비례성은 약화되고 소선거구 단순 다수제에 의해 강화되는 양당제의 폐해는 극대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22대 총선부터 도입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선거제 개편안은 국회에서 험난한 논의과정을 거치고 있다. 선거제에 대한 문제의식도, 선거법 개정을 위한 시도도 이미 수차례 제기된 적이 있다. 이번에는 선거법의 고질적인 문제를 타파하고 바람직한 선거제 개편을 이룰 수 있을까.

 

선거제도 개편 논의, 무엇이 문제길래?

지난달 22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에서 의결한 결의안에 포함된 개편안을 바탕으로, 이듬해 4월 총선부터 도입될 선거제 개편 관련 논의가 전원위원회(전원위)에서 오는 7일(금)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개편안에는 국회 의석수를 300석으로 유지하는 동시에 △1안 중대선거구제(도농복합선거구제)+권역별·병립형 비례대표제 △2안 개방명부식 대선거구제+전국·병립형 비례대표제 △3안 소선거구제+권역별·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내용이 포함됐다. 전원위에서는 이 세 안을 압축해 단일안을 도출하는 것이 목표다.

세 안에서는 공통적으로 비례대표제에 관한 논의가 중점적으로 이뤄지는데, 이는 현행 소선거구제하의 비례성 약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다. 하상응 교수(서강대 정치외교학과)는 “정당 득표율이 40%라면 그 정당의 국회의원이 전체 의석의 40%를 차지해야 한다는 것이 비례성”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현 소선거구제하에서는 사표가 많이 발생하고, 이에 정당 득표율과 실제 의석 간 큰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에 비례성이 약화된다”라고 설명했다.

이번 개편안에는 현행 선거제가 지방과 수도권의 인구 차이를 반영하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도 포함됐다. 이런 지적이 이어지는 이유는 현행 선거제에서 인구수가 적은 농어촌 등은 3개 내지 5개의 군이 묶여 한 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반면, 수도권의 경우 사실상 아파트 두세 단지마다 한 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한국선거학회 김형철 회장은 “현재는 지방의 지역구 의원이 충분한 대표성을 갖는다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도시는 선거구를 통폐합해 중대선거구제를 시행하고, 농어촌의 경우 현행을 유지하는 도농복합형 중대선거구제와, 전국을 권역으로 나누어 권역마다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하는 권역별 비례대표제 등이 제시됐다.

 

개편안에 우려를 제기하는 학계

그러나 이번 개편 시도가 현행 선거제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을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비례성을 확대하려면 전체 의석 중 비례대표 의석의 비율이 높아져야 한다. 하지만 300명 내에서 지역구 의석수를 줄이고 비례대표 의석수를 늘리는 것은 지역구 의원의 반대로 쉽지 않다. 여기에 인구에 비해 국회의원 수가 적은 한국의 상황까지 고려할 때, 결국 전체 의석수를 늘려 비례대표 의석수를 더 확보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다. 그러나 당초 정개특위에서 논의된 세 결의안에 포함됐던 비례대표 의석수를 50석 확대하는 방안은 국민의 반대 여론을 의식한 국민의힘의 반대로 나흘 만에 무산됐다. 박원호 교수(정치외교학부)는 “우리나라의 비례대표 의석은 세계적으로도 상당히 적은 수준”이라며 비례대표 의석 확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박 교수는 또한 “의원 정수 확대를 반대하는 국민 여론이 강하다면 국회의원 스스로 그 원인을 성찰하고, 국민을 설득할 의지를 보여야 한다”라고 비판했다.

이번 논의 과정 전반이 양당 의원의 이권에 휘둘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특히 1안의 도농복합형 중대선거구제를 지지하는 여야에 비판적 의견을 내비쳤다. 하상응 교수는 “여당과 김진표 국회의장은 1안을 지지하는 상황이다”라며 “이미 기득권을 가진 여당과 야당은 도농 복합형 중대선거구제로 변경되더라도 수도권에서 안정적으로 의석을 확보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김형철 회장은 “중대선거구제는 한 선거구에서 여러 후보를 선출하기 때문에 선거 자금이 많이 필요하고, 당에서 복수 공천된 후보들 간 계파가 형성돼 정당의 응집력이 약화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미 대만과 일본 등에서도 부작용으로 폐지된 바 있는 사례”라며 1안이 선거제 개편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결국 개편안 논의가 현행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대안을 도출하는 데 그칠 확률이 높다고 예측한다. 제시된 개편안 중 선거제 개편의 주요한 목적인 비례성 강화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2안이지만, 이것이 채택될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강원택 교수와 박원호 교수 모두 “대선거구제가 가장 고려할 만한 방안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박원호 교수는 “대선거구제는 현행 선거제와 너무 상이해 채택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형철 회장 또한 “결국 양당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대로 현행 선거제에서 소폭의 개정만이 이뤄질 것이라는 회의적 예측도 가능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박원호 교수는 “현행과 가장 가까운 3안의 방향으로 논의가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선거제 개편 논의는 시작부터 어떤 목적도 달성하지 못한 채 표류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근본적인 문제, 그리고 나아갈 길은

선거제 개편 시도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선거제 개편을 선거에 출마하는 국회의원들이 직접 주도하는 구조에 있다. 이런 구조하에서 벌어지는 선거제 개편 시도는 매번 정치권의 밥그릇 싸움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 21대 총선 당시에도 정치권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해 비례성을 확대하고자 했었다. 하지만 거대 양당이 비례대표 의석용 위성정당을 설립하며 오히려 비례성이 축소되는 결과를 낳았다. 하상응 교수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국회의원을 뽑는 제도를 국회의원이 만들게 돼 있는 세태”라고 짚었다. 김형철 회장 또한 “국회의원 자신의 이권, 즉 재선을 위하는 방향으로 선거제 개정이 이뤄지기 때문에 문제 해결이 어려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선거에 출마하지 않으며 정치적 중립성을 띠는 별개의 단체에서 선거법을 논의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하상응 교수는 “당파성이 없고 전문성은 높은 조직에서 장기적 논의를 거쳐 개편안을 도출할 필요가 있다”라고 조언했다. 박원호 교수 또한 “중립적 기구를 신설해 선거법 재개정을 논의해야 근본적 문제를 개선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정치권과 별개의 전문가로 이뤄진 선거구획정위원회와 같은 선례를 참고해 선거법 개정을 위한 중립적 기구 마련에 대해 논의를 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22대 총선이 1년 앞으로 다가온 이 시점, 선거제를 개편해 비례성과 대표성을 확대하고 공고화되는 양당제의 폐해를 타파해야 한다는 개편안의 목적성이 흐려지고 있다. 여야 정치권은 현 시점에 필요한 개편을 끌어내도록 양보하고 타협하며, 나아가 선거법 개편이 이권 다툼으로 직결되는 고질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논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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