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승부조작의 현실을 들여다보다

흔히 ‘각본 없는 드라마’라 불리는 스포츠가 주는 짜릿함과 감동은 사람들이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기도 하다. 그러나 그 밑에서 악의를 내포한 각본을 짜려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이 승부조작을 벌이는 이유는 무엇이고,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최근 대한축구협회가 사면 조치를 시도한 축구인 100명에 승부조작에 가담한 선수들이 포함돼 논란이 발생한 이 시점에, 『대학신문』이 우리나라 승부조작 사건과 관련 논란을 돌아보고 그 내밀한 현실을 담아봤다.

 

승부조작, 왜 문제인가

승부조작은 선수, 코치 등이 미리 짜둔 대로 경기 과정이나 결과를 조작하는 행위로, 주로 금전적 이득을 목적으로 하며 종목의 특성에 따라 그 방식이 달라진다. 1대1 종목은 단체전보다 고의적인 패배가 훨씬 용이한 만큼, 경기에 참여하는 두 선수가 경기의 전반적인 과정을 미리 모의하는 소위 ‘짜고 치는 행위’가 가능하다. 실제로 2010년 벌어진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에서도 전략을 공유하는 방식의 승부조작이 대대적으로 일어났다. 당시 각종 리그에서 우승을 하며 유명세를 떨치던 선수 마재윤 씨가 브로커로 활동하며 많은 동료 선수들을 승부조작에 끌어들였다. 해당 사건의 수사를 맡았던 대전지방검찰청 이준식 검사는 “1대1 종목에서는 사전에 전략을 공유하는 것이 거의 유일한 승부조작 방법이다”라며 “선수들이 이미 서로의 전략을 알고 있는 것처럼 경기를 하거나, 어처구니없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을 관객들이 포착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라고 설명했다.

반면에 승패를 조작하기 어려운 단체 종목에서는 주로 경기 과정 중 승부에 영향을 줄 만한 실수를 하는 방식으로 승부조작 시도가 이뤄진다. 축구 해설자 활동도 하고 있는 손수호 변호사는 “단체 경기의 결과를 완벽히 조작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라며 “간단한 경기 내 과정으로 승부조작을 행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설명했다. 2011년 K리그 승부조작 사건 역시 선수들이 일부러 수비를 느슨하게 하거나, 실책을 해 패배를 조장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한편, 팀 차원에서 우승이나 전력 보강 등 추후의 실적을 노리며 조직적 승부조작을 벌이는 경우도 존재한다. 가장 유명한 사례로는 1984년 한국프로야구 승부조작 사건을 들 수 있다. 당시 삼성 라이온즈는 한국시리즈 진출을 확정한 후, 더 만만한 상대라 여긴 롯데 자이언츠와 한국시리즈에서 맞붙기 위해 승부조작을 벌였다. 한국시리즈 전에 열리는 후기 리그에서 롯데 자이언츠를 우승 팀으로 만들기 위해 경기에서 노골적인 져주기 게임을 하는 등 팬들과 상대 팀을 기만하는 경기를 진행한 것이다. 금전적 거래가 오가지 않았더라도 구단의 이익을 위해 고의적으로 공정성을 저해하는 행위를 한 경우 승부조작이 성립될 수 있다. 

승부조작은 금전적 대가의 유무에 상관없이 비윤리적인 행위일 뿐 아니라 국민체육진흥법에 위반되는 범죄 행위다. 손수호 변호사는 “승부조작의 사전적 의미는 승패조작에 가깝지만, 실제로는 금전적 이익이나 단순 승패와 관련된 것을 넘어 더 큰 범위를 포함한다”라고 말했다. 서울회생법원 손호영 판사 또한 “승부조작을 판단하는 핵심은 기본적으로 경기의 공정성이 훼손됐는지의 여부”라며 “금전적 대가의 규모 등은 양형의 고려 대상이 될 뿐, 금전적 대가가 없었다고 승부조작이 아니라고 볼 수는 없다”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국민체육진흥법에서는 승부조작을 운동 경기의 공정한 운영을 저해하는 ‘스포츠비리’ 행위 중 하나로 보고 있다.

그 자체로 범죄행위인 승부조작은 또 다른 불법행위로 쉽게 연결될 수 있다. 손수호 변호사는 “승부조작은 경기의 결과를 알고 베팅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로 큰 돈이 오가는 불법 스포츠도박과 연결된다”라고 설명했다. 이준식 검사는 “승부조작을 주도하는 불법 스포츠도박 관련 세력이 선수에게 접근해 브로커 역할을 종용함으로써 승부조작의 규모를 키워나가기도 한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이 검사는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의 경우 허술한 성인 인증 등으로 미성년자들이 쉽게 불법 도박을 접할 수 있게 한다”라고 지적했다.

요컨대 승부조작은 경기 과정과 결과를 고의로 조작한다는 점에서 스포츠 정신의 근간인 공정성과 객관성을 침해하고, 선수들의 스포츠정신에 대한 전반적인 불신을 가져오는 행위다. 손수호 변호사는 “결과를 알 수 없는 것이 스포츠의 가장 큰 존재 의의이자 우리가 스포츠를 즐기는 이유인데, 승부조작은 스포츠를 즐기는 모두로부터 이를 박탈하는 것”이라며 “한두 게임만 조작돼도 팬들이 종목 자체에 대한 불신을 갖게 만든다”라고 설명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홍보팀 우청식 프로는 2011년 K리그 승부조작 사건을 보며 “즐거움과 감동을 선물해줬던 경기들이 조작된 경기였다는 것에 충격과 실망감이 가장 컸다”라며 “한동안 경기의 공정성을 의심하며 경기를 지켜봤다”라고 말했다. 이성은 전 프로게이머는 2010년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에 대해 “동료의 승부조작으로 인해 큰 충격을 받았고, 팬들이 떠나가고 결국 리그가 사라지는 아픈 경험을 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승부조작은 함께 일하는 동료와 팬 모두에게 되돌릴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승부조작의 유혹에 넘어간 사람들

프로 선수가 자신이 쌓아온 경력이 망가질 위험을 무릅쓰고 승부조작을 저지르게 되는 유인도 불법 스포츠도박과 밀접하게 연계돼 있다. 이준식 검사와 손호영 판사의 말에 따르면 적게는 몇십만 원부터 많게는 몇억에 이르는 금전적 유인이 이들을 승부조작으로 이끈다. 수원FC 서포터즈 곽재일 회장은 2011년 K리그 승부조작 사건에 관해 “당시 승부조작에 가담한 선수들은 재정이 열악한 시민 구단에 소속돼 적절한 연봉을 보장받지 못했던 경우가 대다수였다”라며 “우리가 보기에 적은 돈이더라도 선수들은 승부조작에 현혹되기 충분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준식 검사 또한 “2010년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에 가담한 프로게이머 중에는 주전과 후보를 오가는 소위 1.5군급 선수의 비중이 높았다”라며 “공식전보다 비공식 이벤트전에서 승부조작 제의가 많았고 선수들은 비공식전인 만큼 경각심을 잃고 그 유혹에 더 쉽게 응했을 수 있다”라고 부연했다.

억대 연봉을 받는 선수들이 승부조작에 참여하게 된 계기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준식 검사는 “프로게이머 중에는 10대에서 20대 초반의 어린 선수가 많아, 대개 부모님이 선수들을 대신해 재산 관리를 도맡아 한다”라며 승부조작 동기가 선수의 재산 관리 방식과 연관돼 있음을 지적했다. 그는 이어 “어린 선수들은 일상이 통제된 채 연습만 하는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고, 가끔 있는 외출 시간에도 사용할 수 있는 돈이 얼마 안 됐을 가능성이 높다”라며 “연봉과 무관하게 선수들의 가용 재산이 적었던 것이 금전적 유혹에 휘둘리게 된 큰 계기”라고 설명했다. 한편 동료 선수와 같은 지인의 부탁과 회유가 승부조작에 발을 들이게 하기도 했다. 이준식 검사는 “전·현직 프로게이머가 승부조작을 주도하는 자와 연결돼 브로커로서 활동하며 경기를 뛰는 친한 선수에게 ‘한 번만 져달라’라고 승부조작을 권유한 경우가 많았다”라고 덧붙였다.

 

승부조작 없는 스포츠를 위해

그렇다면 승부조작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이뤄져야 할까? 앞서 언급한 2010년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과 2011년 K리그 승부조작 사건을 포함해 대부분의 승부조작 사건에서 가담자들은 영구제명 처분을 받았다. 특히 e스포츠 선수들이 이후 전문 분야를 활용해 인터넷 방송을 운영하는 행태를 법적으로 제재해야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될 만큼 승부조작의 사회적 여파는 결코 작지 않다. 그러나 처벌 강화만이 능사인지는 의문이다. 손호영 판사는 “법조인으로서 비례의 원칙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책임의 정도를 초과해서 벌을 부과하는 것은 개인이 감당하기에 너무 무거울 수 있다”라며 인터넷 방송 제재가 과도한 처분일 수 있다는 의견을 냈다. 곽재일 회장은 “영구 제명이라는 처분은 적절하지만, 더 강력한 처벌이 승부조작을 예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결국 승부조작의 움직임을 사전에 발견하고 선수들이 이에 가담하지 않도록 예방하려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에서는 그 노력의 일환으로 국내 4대 스포츠 리그인 △프로축구 △프로야구 △프로농구 △프로배구 전 경기에 ‘암행 요원’을 배치하고 있다. 문체부는 또한 ‘국민체육진흥법시행규칙’에 따라 경기에서 발생한 수익금의 일부를 승부조작 등 운동경기의 부정행위 방지를 위한 교육사업에 사용하고, 스포츠비리 전반을 관리하는 스포츠윤리센터도 운영하고 있다. 스포츠윤리센터 관계자는 “문체부에서는 애초에 승부조작이 발생하지 않도록 승부조작을 제의 받는 상황을 목격하거나 직접 제의 받았을 때 신고·고발을 장려하는 등 예방 차원의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라며 “협회나 연맹 등 각 종목의 단체도 자체적으로 승부조작 예방 교육을 실시한다”라고 설명했다.

현재 이뤄지는 이런 정책에 더불어, 승부조작에 참여했을 때 따라오는 금전적 유인을 무의미하게 만들어야 승부조작의 사전 차단이 더욱 철저히 이뤄질 수 있다. 2018년 충남아산FC(전 아산무궁화FC)에서 뛰던 이한샘 선수가 승부조작 제의를 거절한 것에 관해 우청식 프로는 “한국프로축구연맹 상벌 기준에 따르면 부정행위 및 불법행위에 대한 신고자에게 1천만 원 이상 1억 원 이하의 포상금을 지급할 수 있어, 이한샘 선수가 제안받은 5천만 원보다 큰 액수인 7천만 원의 포상금을 지급했다”라고 밝혔다. 추가로 손호영 판사는 “처벌 수위를 결정할 때 승부조작 가담자가 얻은 금전적 이익의 규모 등 여러 조건을 고려하고 있다”라며 덧붙였다. 부정한 이익에는 상응하는 처분이 돌아온다는 경각심을 일깨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선수들이 승부조작의 금전적 대가에 쉽게 휘둘리지 않도록 보상과 처벌이 확실히 이뤄진다는 것을 선수들에게 인식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근본적으로 승부조작 발생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불법 스포츠도박을 강력히 규제하려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이준식 검사는 “불법 스포츠도박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먼저 서버 운영자를 알아내야 한다”라고 밝혔다. 다만 이 검사는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를 운영하는 자가 폭력 조직에 소속돼 있거나 서버가 해외에 위치하는 등 수사가 진행돼도 검거가 쉽지 않았다”라며 철저한 단속 등으로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 운영의 성행을 방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성은 씨는 승부조작에 대해 “본인과 동료들의 명예를 오로지 돈을 위해 송두리째 던져버리는 행위이며, 절대 용서받을 수 없다”라고 단언했다. 그의 말처럼 승부조작은 팬들을 향한 기만이며, 스포츠 정신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행위다. 승패와 무관하게 선수들이 각자의 기량을 최대한 발휘하며 경기에 임할 때 스포츠의 가치는 더없이 빛난다. 승부조작으로 스포츠정신의 근본이 위반되는 일이 더는 없기를 기대한다.

 

삽화: 신윤서 기자

oo00ol@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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