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월) 우석경제관(223동)에서 트루스포럼이 주최한 ‘4·3의 진실’ 강연이 개최됐다. 강연은 제주 4·3 항쟁이 남조선로동당의 지령에 의해 미군정 및 대한민국 정부를 부정하기 위해 일어난 봉기이기에 진압이 정당했다고 주장했다. 그 과정에서 진압을 명분으로 일어난 민간인 학살까지 정당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4·3 항쟁은 그렇게 단순화된 구도로 접근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니다. 해방 후 각 지역에서 대중의 참여로 자치를 구현한 인민위원회는 제주 지역에서 장기간 미군정과 권력을 분점했다. 그러나 군정의 미곡 공출을 비롯한 실정과 식량난이 이어졌고 경찰의 강압적인 폭력으로 불만이 고조됐다. 1947년 3·1절 기념시위에서 경찰의 총격으로 참가자들이 살해당했고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민관 직장의 95%가 참가한 3·10 총파업이 분출한 것이다. 그러나 경찰은 민중을 대량 검거했고 고문치사 사건도 여러 차례 발생했다. 48년 4월 3일의 봉기는 오랜 탄압 끝에 발생했던 것이다.

미약한 무장 상태의 봉기에 대해 군정은 제주를 ‘레드 아일랜드’로 규정하고 진압의 방침으로 초토화 작전을 골랐다. 서북청년회 등 준군사조직은 군경과 함께 민간인을 대상으로 무차별 폭력을 일삼았고 학살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이어졌다. 트루스포럼의 강연회는 자유민주주의를 명분으로 안보를 유지하기 위한 국가기구의 절멸 행위를 정당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 정치적 반대파에 대해 국가가 압도적 물리력으로 자행하는 폭력이, 과연 다양한 견해의 공존을 인정한다는 자유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가?

아울러 우리는 해방전후 민간인 학살과 대면할 때 수동적인 피해자를 상정해온 관습 또한 극복해야 한다. 4·3 항쟁에서 학살된 민간인 중 다수는 분명 다양한 사회운동에 참여하며 스스로 권리를 위해 투쟁한 민중이었다. 민주적 투쟁이 강압적으로 봉쇄당한 조건에서 봉기에 연루돼 학살당한 이들에 대해, 트루스포럼은 이들을 ‘순수한 양민’이 아닌 ‘좌익’이라 말한다. 그러나 그 속에서 자신의 생존권과 존엄을 위해 목소리를 낸 민중의 주체적이고 민주적인 권리는 온데간데없다.

트루스포럼과 같이 남로당 중앙당의 지령을 운운하는 것은 근거가 없을 뿐 아니라 항쟁에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했다가 희생된 민중의 주체성을 부정하는 것도 온당하지 않다. 오히려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활동에 참여할 민중의 주체적 권리를 옹호하는 것이, 희생자를 좌익과 양민으로 갈라치는 논리를 극복하며 평화와 민주주의의 과제를 우리의 것으로 이어 나가는 기억의 자세일 것이다.

 

이승주 

과학학과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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