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학술 출판과 서울대출판문화원의 내부를 조명하다

유망한 연구자들이 모인 연구중심대학 서울대. 그렇다면 이들이 내놓는 연구 성과물은 무엇일까? 보통은 연구 논문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학술서 역시 분명 그 성과물 중 하나다. 학술 출판은 전통적으로 정제된 학문적 성과와 지식을 사회에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해 왔고, 대학 출판은 학술서를 발간함으로써 학술 생태계를 지원해 왔다. 다만 뛰어난 연구 성과들이 주목받는 동안, 이를 보급하는 대학 출판부는 상대적으로 등한시됐던 것은 아닐까. 『대학신문』이 우리나라 학술 출판의 동향, 그리고 대학 출판부와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출판문화원)의 현실을 살펴봤다.

 

우리나라 학술 출판의 현주소

학술서란 무엇인가? 넓은 의미에서 학술은 기초학문 분야의 연구 및 저술 활동과 관계된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 본부장을 역임했던 이강재 교수(중어중문학과)는 “이공계열이 R&D라고 불리는 연구개발의 방식으로 빠르게 연구 성과를 공개한다면 인문사회계열의 연구 결과는 학술 출판으로 후에 집대성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약 20년간 학술 출판업에 몸담은 도서출판 길의 이승우 기획실장도 “학술서라는 개념이 다소 모호하기는 하나, 보통 자신의 학문을 연구한 저자가 몇 년 이상을 거쳐 도출한 장기적인 사유를 녹여낸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라며 “학술서는 학문 단위나 인류 정신문화에 강한 자극을 준다”라고 말했다. 즉 학술 출판은 우리 사회의 지식 문화를 지탱하는 주요 단위 중 하나다. 

무엇보다 학술서는 시민과 학술 연구 간의 접점을 형성해 사회 전반의 지식 선순환에 기여한다는 강점이 있다. 이강재 교수는 “학술서는 사회간접자본”이라며 “책을 접한 이가 소수더라도 그들이 강한 영감을 받아 제3자에게 전달하는 등의 간접적인 방식으로 학술서의 영향력은 확산된다”라고 학술서의 의의를 강조했다. 또한 학술서는 연구자에게 새로운 지적 자극을 제공하는 창구가 되기도 한다. 출판문화원 제15대 원장을 역임한 이준웅 교수(언론정보학과)는 “해외 사례에서는 연구자가 학계의 주류 의견이 아닌 참신한 시각을 학술서를 통해 전달하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이와 같은 학술서의 존재 의의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 전반에서 학술서와 학술 출판은 환영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우선 학계에서는 연구 논문이 가장 주요한 연구 결과물로 인정된다. 이준웅 교수는 “이제 학계의 학술적 업적을 생산하는 핵심 단위가 연구 논문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라며 “학술서의 지위가 연구 논문이 가지는 역할 및 지위에 의해 조정되는 경향이 생겼다”라고 말했다. 더불어 저술에 드는 시간과 노력이 논문에 비해 상대적으로 큼에도 불구하고 대학의 교원 평가에서 두 연구실적물이 비슷하게 채점되고 있다. 게다가 현행 ‘서울대학교 교원 인사 규정’ 제15조 4항에 따르면 연구실적물의 인정점수는 연구에 참여한 인원이 많을수록 감소된다. 이강재 교수는 “연구 인원에 따라 실적을 평가하는 현 기준은 교원이 저서에 참여할 요인을 낮추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학술서에 대한 수요가 많지 않다는 것 또한 학술 출판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다. 2021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진행한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종이책 기준 성인의 선호도가 높은 독서 분야는 소설(26.5%)과 수필(11.5%) 다음으로 재테크·부동산 관련 도서(7.8%)로, 어디에서도 학술서를 찾아보기 어렵다. 더불어 학술서에 관한 젊은 세대의 관심도가 높지 않다는 우려도 나왔다. 이승우 기획실장은 “우리 출판사의 학술서 주요 구매층이 50~60대다”라며 “학술서에 대한 젊은 세대의 관심도가 높지 않은 듯하다”라고 밝혔다.

학술 출판에 대한 국가적인 지원이 부족한 점도 문제다. 이강재 교수는 “과학기술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국가 정책의 방향성에 따라 인문사회계 학술 출판이 등한시되는 경향이 있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저술 작업은 출판되기까지 몇 년 이상이 소요되는 장기적인 과업이기에 투입 대비 가시적인 성과를 단기에 산출하기도 어렵다”라고 덧붙였다.

 

재정적 어려움 안은 대학 출판

학술서는 상업 출판업계에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도서로, 학술 출판의 사명은 결국 대학 출판부가 떠안게 됐다. 한국대학출판협회 김정규 사무국장은 “출판 의의가 있으나 수익성이 낮은 학술서는 시장 논리에 따라 팔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라며 “대학 출판부가 학내 우수한 연구 실적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출범 취지에 따라 학술 출판을 거의 전담하게 됐다”라고 운을 뗐다.

그러나 수익성이 떨어지는 학술서 위주의 출판을 전담하다 보니 대학 출판부의 규모는 대체로 영세한 편이다. 김정규 사무국장은 “한국대학출판협회에 소속된 약 48개의 회원 출판사 중 내실을 갖춘 조직은 약 20개 정도”라며 “대부분의 대학 출판부가 별도 법인으로 독립돼 지원을 받기 어려울 뿐더러, 직원 한 명만이 출판 일을 전담하거나 몇 명이 출판 업무를 겸무처럼 담당하는 일도 흔하다”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출판문화원의 상황은 어떨까? 인턴을 포함해 23명의 직원을 가진 사단법인 출판문화원은 한 해 약 40종 이상의 신간을 발행하며 대학 출판부 중 상당히 큰 규모로 운영된다. 출판문화원은 학술 출판이라는 기관의 본령을 지키고자 매년 여러 학술서를 출간한다. 출판문화원은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교재 64종 △학술서 151종 △교양서 37종을 발간했으며 지난 5년간 발행한 신간 중 학술서의 비중은 전체의 60% 정도를 차지했다.

그러나 내부를 뜯어보면 출판문화원에서도 학술 출판부 전반이 공유하는 일반적인 어려움이 나타난다. 지난해 기준 출판문화원의 출간 도서 중 매출 상위 20위 항목에서 학술서는 오직 한 권뿐이다. 곽진희 출판실장은 “꾸준한 수요는 있지만 학술서의 독자층이 좁아, 제작비를 충당하고 도서의 분야를 다각화하기 위해 고급교양서 출간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라고 밝혔다. 출판문화원의 학술서 관련 주요 구매층은 △50~59세(28.9%) △40~49세(17.8%) △70세 이상(14.4%)순이다.

▲출판문화원의 교재·학술·교양 도서 종합 매출 상위 20위 (2022년 기준)
▲출판문화원의 교재·학술·교양 도서 종합 매출 상위 20위 (2022년 기준)

이에 수입 역시 교재 등 학술서 이외의 도서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곽진희 출판실장은 “일반 교재 및 한국어 교재, 보건소나 일반 병·의원에서 이용하는 치매 진단평가 키트인 ‘세라드케이’(CERAD-K)가 매출의 주를 차지한다”라며 “이로부터 얻은 수입을 학술서 출판에 투자 중”이라고 밝혔다. 다만 그는 “도서 제작부터 인세 지급까지 운영 전반에 필요한 비용을 감안하면 예산 자체가 넉넉하다고 보기 어렵다”라며 출판의 어려움을 말했다.

 

결국 경쟁력 확보가 관건

앞선 재정상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출판문화원은 학술서의 질로 승부해야 한다. 내용이 우수하다는 점을 들어 독자를 만족시킴으로써 학술서에서도 일정 정도의 상업성을 추구해 학술 출판의 명맥을 이어가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출판문화원은 발간 도서 선정을 위해 연간 분기별로 총 4번의 출판 원고 심의 위원회를 열고 있다. 학술서는 출판위원회, 교재 및 교양서는 기획위원회가 담당하는 구조다. 각 위원회에 원고를 상정하기 전에 원고를 분야별 학내외 전문가 각 1인에게 먼저 심사를 맡기는 절차까지 두고 있다. 원고의 위원회 통과 비율은 지난해 기준 출판위원회에서 전체의 약 60%, 기획위원회가 약 27%로 낮은 축에 속했다. 위원회 심사의 통과 비율이 낮은 이유에 대해 곽진희 출판실장은 “채산성이 지나치게 낮거나 출판할 만큼 원고가 양질의 것이라고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었다”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이에 우수한 원고를 확보하기 위해 도서의 주제에 적합한 저자에게 직접 원고를 요청하는 기획 도서 출판을 강화하는 것도 하나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엄격한 출판 심사를 위주로 운영되는 출판문화원의 특성상 별도의 기획 도서까지 병행하기에는 녹록지 않은 실정이다. 이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출판문화원 내부 운영의 자율성 확보가 필요한 이유다. 제14대 출판문화원장을 맡은 정병설 교수(국어국문학과)는 “위원회 심사 제도의 필요성은 분명하나 때로는 이 제도가 출판문화원 주도의 도서 기획에 제약을 가할 수 있다”라며 “출판문화원의 자체적인 기획을 더욱 장려할 방법을 모색했으면 한다”라고 제안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출판문화원은 다방면에서 저자를 찾으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김정규 사무국장은 “저자와 편집자가 같은 학내 공간에 머무르기에 협업이 용이하다는 대학 출판부만의 강점을 살릴 필요가 있다”라고 조언했다. 일례로 출판문화원은 연구처와의 MOU로 ‘2022년 미래기초학문분야 기반조성사업’을 통해 전임·기금·HK교원의 저술 활동을 지원하기도 했다. 지난해 출판문화원이 출연한 발전기금 일부가 지원금으로 투입된 대신, 연구 결과를 단행본으로 출간할 시 출판문화원에서 출판을 담당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다만 연구지원과 오은정 주무관은 “올해는 아직 사업의 기본계획을 수립하는 단계”라고 덧붙였다. 이에 더해 학내 잠재력을 가진 저자를 찾아내려는 적극성도 필요하다. 이준웅 교수는 “최근 유망한 박사의 학위 논문 프로젝트의 연장선상에서 집필된 학술서가 그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라며 “출판 의지가 있는 박사후과정생 등의 학술 출판도 지원할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물론 이때 저자를 제대로 지원할 수 있는 전문적인 편집 인력을 갖추는 것이 출판사 경쟁력 제고의 핵심이다. 그러나 빠듯한 예산으로 운영되는 대학 출판부에서 뛰어난 인력을 고용하는 데는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곽진희 출판실장은 “대학 출판부 전반에서 인력 채용의 어려움을 공유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특히 희망하는 정도의 경력을 가진 직원을 채용하기가 쉽지는 않다”라며 “급여에 대한 기준이 서로 맞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라고 전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외부 지원이 고려돼야 한다. 이강재 교수 역시 “기획 및 편집에 능한 전문 편집인력 고용을 위해서는 그만큼의 비용을 투자해야 한다”라며 “큰 금액은 아니더라도 본부 내에서 꾸준한 지원이 검토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미국의 하버드 출판부, 영국의 옥스퍼드 출판부, 독일의 주어캄프, 일본의 이와나미 문고 등 선진국들은 국가와 함께 연상되는 지성 출판사를 가지고 있다. 그들의 브랜드 가치가 그들이 선보이는 도서와 작가가 최고임을 보증하는 문화적인 전제로 작용함은 분명하다. 우리나라에도 대학 출판의 내부적인 쇄신과 지원, 사회적인 관심까지 세 박자가 고루 맞물려 학술 출판이 부흥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까. 서울대출판문화원이 우리 사회의 지식 문화를 선도하는 하나의 브랜드로 굳건히 설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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