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정 부편집장
윤이정 부편집장

지난여름, 미국에서 낙태를 헌법상 기본권으로 보장하던 로 대 웨이드 판결(Roe v. Wade)을 폐기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외신에서는 낙태권이 더 이상 모든 미국 여성에게 보장되는 권리가 아니라고 했다. 개별 주의 권한으로 넘어간 낙태권을 두고 미국에서는 절규와 환호가 공존했다. 

한편으로 비슷한 일이 우리에게도 있었다는 게 떠올랐다.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낙태권을 헌법에서 보장한다고 대문짝만하게 써붙이지는 않아도 낙태를 죄라 부르며 형사처벌하던 조항이 효력을 잃는다는 데서 희망을 봤다. 바뀌고 있다는 느낌이 좋았다. 

그런데 여지껏 크게 달라지지 않은 현실은 실망감만 안겨줬다. 오랜 입법 공백 탓에 변화는 더뎠고 혼란은 가중됐다. 낙태 수술을 제공해도 더 이상 의사에게 주어지는 처벌은 없지만 그렇다고 관련 규정이 마련돼 있지도 않다. 얼마 되지도 않는 병원들 사이에서 청소년은 여전히 부모의 동의 없이는 낙태가 어렵다. 낙태 수술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논의는 제대로 된 시작조차 없었고 미프진 같은 먹는 낙태약은 아직 허용되지 않는다. 불법을 감수하며 해외직구로 겨우 구한 그마저도 진짜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궁금했다. 실망감의 연장선은 호기심이었는지, 절규와 환호로 얼룩진 미국을 취재하러 다녀왔다. 낙태를 경험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을 연구한 연구자도 만났다. 낙태권 보장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이를 지켜보는 산부인과 의사의 생각도 들었다. 그들에게서 배운 낙태는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원하지 않는 임신을 유지하지 않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 사이에서 저울질 되던 낙태가 여성의 건강이라는 차원에서 논의됐다. 이를 모두가 입 밖으로 외치고 있었다.

돌아와 마주한 우리나라는 달랐다. 낙태는 가려지고, 숨겨져 있었다. 낙태를 검색하면 마주하는 인터넷 화면은 자신과 같은 심정의 여성들이 올린 질문글과 복사-붙여넣기한 듯한 병원 홍보글로 수두룩하다. 보건복지부의 위탁을 받아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운영하는 ‘러브플랜’이라는 사이트에서 낙태와 관련된 건강정보를 제공하지만 낙태를 검색했을 때 곧바로 찾을 수는 없다. 어쩌면 익명 커뮤니티를 떠도는 알 수 없는 이의 각종 후기가 낙태를 당장 필요로 하는 여성에게 더 유익할 지도 모르겠다. 낙태의 실체는 보이지 않고 당일 수술을 제공한다는 신원 미상의 병원 연락처와 특별히 미국산 미프진을 판매한다고 광고해대는 불법 사이트만 기승을 부린다.

나라가 기껏 한다는 논의는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 사이에 갇혀 있었다. 제3차 양성평등기본계획에서는 낙태에 대한 의료 접근권을 보장하는 방안으로 ‘임신중절의약품의 불법유통 단속 강화’를 내놨다. ‘러브플랜’에서는 낙태한 여성이 겪을 정신적 후유증으로 ‘후회’를 제시한다. 

2019년에 내가 본 희망은 이분법에 가려져 금세 먼지가 쌓였다. 이제는 가려진 것을 밖으로 꺼내고 싶다. 낙태가 건강권 영역에서 논의되려면 그 전에 낙태를 그 자체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원하지 않는 임신을 종결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낙태에 대해, 우리가 조금 더 솔직해질 수 있기를 바란다. 당연히 입 밖으로 꺼낼 수 있는 이야기를 더 이상 숨기지 않아도 되는 평안한 하루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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