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후(사회학과·23)
심지후(사회학과·23)

얼마 전 많은 이들이 사랑했던 연예인이 세상을 떠났다. 강남에서는 10대 학생이 SNS로 생중계하면서 고층 빌딩에서 투신했다. 노원구의 한 아파트에서는 우울증을 앓던 부부가 숨진 채 발견됐고, 사인은 자살로 추정됐다. 이렇듯 수많은 이들이 자살로 우리 곁을 떠나고 있고 이는 수치상으로도 드러난다. 한국은 18년째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다. 우리는 왜 수많은 사람들을 꾸준히 떠나보내야 하는가? 흔히 자살은 누구에게도 말하기 힘든 내밀한 행위라고 생각하지만 자살이 지속적으로 반복된다면 이는 사회적 타살일지도 모른다.

자살률이 높다는 것은 자연히 불행에 대한 논의로 이어진다. 올해 유엔이 발표한 「2023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행복지수는 137개국 중 57위다. 여기서 137개국 중 57위위라는 결과도 함의가 있지만, 한국의 행복에 대해 더 자세히 알기 위해서는 행복을 측정한 지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은 1인당 GDP, 기대수명 지표에서는 상대적으로 점수가 높았지만 사회적 지지 부문에서는 상대적으로 점수가 낮았다.

세계행복보고서를 몇 년 전 기록부터 모아 살펴보면 1인당 GDP와 기대수명은 몇 년째 높은 점수를 차지해 앞으로도 우리나라의 행복을 책임져 줄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소득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소득이 증가해도 행복에는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이스털린의 역설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소득은 ‘일정 수준’에 진입했다. 이스털린의 역설은 x축이 소득, y축이 행복도인 그래프로 표현되는데 그래프의 경사가 소득이 낮을 때는 가파르나 소득이 높아질수록 점점 완만해져 일정 수준을 넘으면 행복도는 유의미하게 증가하지 않는다. 즉 1인당 GDP가 지금보다 증가해도 행복의 증가는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기대수명의 증가는 도리어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 중 하나로 여겨지는 고령화로 이어져 행복도에 역의 상관관계로 작용할 수도 있다. 즉 두 지표가 앞으로는 한국의 행복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점수가 낮았던 지표인 사회적 지지는 어떤가? 우리나라는 사회적 지지가 턱없이 부족하다. 10대 소녀가 투신을 생중계할 때도 당시 라이브 방송에 있던 사람들 그 누구도 소녀를 말리지 않았다. 흔히 한국은 ‘정’의 사회라고 하지만 과연 현대 한국 사회가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가?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사회통합의 결여로 사회의 돌봄을 받지 못하고 외로움과 고독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날 유일한 탈출구로서 자살을 선택한다고 말했는데, 이는 서로 간의 사회적 지지가 부족한 우리나라의 현상을 뒷받침해 준다.

현재 우리에게는 사회적 지지가 필요하다. 일차적으로는 모두가 최소한의 필요를 충족하며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사회적 지지가 있다. 이는 우리의 동지들이 하한선 밑에서 살아가도록 둘 수 없다는 연대에서 출발한다. 가능하다면 서로가 얽히고설켜 연결돼 있다는 감을 느끼며 온기 속에서 살아가도록 하는 사회적 지지까지 나아간다면 좋을 것이다.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한 연대와 애정이야말로 인간 사회를 실존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를 스쳐 지나가는, 사소하고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인연일지라도 넉넉한 사랑을 보내자. 개개인의 은은한 온기가 모여 우리 사회를 따스하게 적시는 햇볕이 만들어지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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