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리 기자(취재부)
김미리 기자(취재부)

 

오랜만에 기사를 배정받지 않아 한가롭던 차에 부장의 취재 명령이 떨어졌다. 기성 언론에서 서울대에 ‘모두의 화장실’이 설치된다는 기사를 냈으니 관련해 알아보라고. 그런데 모두의 화장실이 정확히 뭐더라? 대충 기사 몇 개를 읽어보고 본부에 전화를 걸었다. 뜻밖에도 본부 관계자는 “전혀 논의한 바 없으며 기성 언론이 오보를 냈다”라며 선을 그었다. 덕분에 내 소재는 반려됐고 일주일의 휴가를 보장 받았다. 

이후 어딘지 모를 찝찝함에 모두의 화장실에 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모두의 화장실은 단순 남녀공용 화장실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성별 △나이 △장애 유무 등에 따른 차별 없이 모든 사람이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화장실이라고 한다. 이는 기존의 화장실과 달리 트랜스젠더와 논바이너리 등 성별 이분법에 포착되지 않는 소수자들도 포용하는 공간이다. 뿐만 아니라 성별이 다른 보호자를 동반한 유아, 성별이 다른 활동 지원자를 동반한 장애인 등도 모두의 화장실에서 보다 자유롭게 화장실 이용이 가능하다.

국내의 다른 대학에서는 모두의 화장실 추진에 대해 이미 활발한 논의가 오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해 최초로 모두의 화장실을 설치한 성공회대에서는 대학 본부가 주최한 ‘모두의 화장실 대토론회’가 열리는 등 여러 숙의 절차를 거쳐 모두의 화장실을 설치했다. KAIST 포용성위원회에서는 학생들의 요청 사항을 다각도로 논의해 모두의 화장실을 만들었고, 올해 초 모든 학과장과 총장이 모인 회의에서 이를 대표적 사업으로 보고해 호응을 끌어냈다고 한다. 반면 서울대 학생들은 오보를 통해 처음 모두의 화장실을 접하게 됐다. 학내 온라인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에서만 관련 내용이 짧게 불타고 꺼졌을 뿐이다.

모두의 화장실이 충분히 실용적이지 못하다는 의견도 있다. 나 역시 모두의 화장실이 설치된다 해도 99%의 경우 내게 더 익숙한 여자 화장실을 이용할 것 같다. 굳이 모두의 화장실이 아니더라도 내가 쓸 화장실은 도처에 널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소수자를 비롯해 ‘익숙한’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이는 모두의 화장실 설치가 단순 실용성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갈 권리의 차원에서 논의돼야 할 이유다. 한편 모두의 화장실이 불법 촬영을 증가시킨다는 우려도 있지만, 나는 성범죄로부터 안전한 화장실을 만드는 것과 모두의 화장실을 만드는 것이 서로 배타적인 영역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모두의 화장실의 기본 구조는 성별 구분 표지 없이 그 내부에 변기와 세면대가 갖춰진 것으로 일반 가정이나 기내 화장실과 유사하다. 이렇게 보면 모두의 화장실이 더 ‘일반적’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장시간 교내에 머무는 구성원이 많고 일부에게는 서울대가 매일을 살아가는 주거 공간인 만큼 이제는 모두의 화장실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이뤄졌으면 한다. 혹자의 말마따나, 가장 불편한 사람이 편안해지면 모두가 편안해지는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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