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미림극장 최현준 대표를 만나다

벚꽃이 휘날릴 때도, 땡볕이 내리쬘 때도, 낙엽이 땅을 덮을 때도, 눈이 내릴 때도. 인천의 구도심에는 그렇게 66년간 제자리를 지킨 극장이 있다. 인천 시민의 기억 속에 깊게 자리한 이 극장은 사뭇 인상적인 행보를 보여 왔다. 때로는 독립예술영화관으로서 다양한 독립영화와 고전 영화를 상영해 노인 관객들이 저렴한 가격에 문화생활을 즐기는 공간이자 그들의 일터가 됐다. 혹은 독립영화의 감독이 관객을 만나볼 수 있는 자리가 되기도, 작은 영화제를 통해 세대 간 통합이 이뤄지는 공간이 되기도 했다. 이처럼 2015년부터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인천 미림극장을 이끌어온 최현준 대표를 만나, 독특한 단관극장 미림극장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따듯한 공간, 미림극장의 대표가 되기까지

1957년부터 인천에서 같은 자리를 지켜온 미림극장은 80년대까지만 해도 인천 시민이라면 가보지 않은 사람이 없었을 정도로 시민의 즐거운 추억이 농축된 공간이다. 하지만 멀티플렉스의 성행과 구도심 상권 쇠퇴의 영향으로 10년간 폐업했다가, 2013년 시의 지원을 받아 ‘노인 친화 극장’이라는 모토 아래 사회적 기업으로 다시 개장했다. 최현준 대표가 극장의 대표가 된 것도 바로 재개장한지 2년도 안된 시기였다. 최현준 대표는 하루에 세 편씩 영화를 볼 정도로 영화를 사랑하는 학생이었다. 그러다 자연스레 영화제를 기획하는 일을 맡았고 구로문화재단의 창립 멤버로서 공연을 기획하기도 했으며, 또 그 과정에서 알게 된 관계자의 소개로 미림극장의 대표직까지 수락하게 됐다. 최 대표는 처음 극장의 대표로 일하게 된 날을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재개장 당시 약속됐던 지자체의 예산 지원 계획이 흐지부지돼, 출근 첫날부터 빚 독촉에 시달리는 어려운 상황을 맞닥뜨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현준 대표는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기업으로서 미림극장의 모토를 지켜나가고 있다. 미림극장은 저작권이 없는 영화는 성인 6000원, 배급사가 있는 영화는 8000원, 주 관람객인 노인에게는 각각 3000원, 6000원이라는 적은 티켓값을 받고 영화를 상영한다. 미림극장은 근본적으로 영리 추구가 최대의 목적인 멀티플렉스와 달리 공익을 추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기에 이런 경영 방식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또한 최현준 대표는 “1957년 당시 미림극장의 창업주는 시민의 즐거움으로 벌어들인 금전적 이익을 사회에 베풀 줄 아는 분이었다”라고 자부심을 드러내며, “극장의 이런 역사와 사회적 기업이라는 재개관 당시의 모토를 고려할 때, 미림극장의 목표는 돈 이상의 가치가 될 수밖에 없다”라고 강조했다. 최 대표는 “미림극장은 노인과 같은 취약 계층이 문화생활을 영유할 수 있는 공간이 되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영화관이 영화를 접하기 어려운 이들에게 제약이 되는 공간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영화예술의 다양성과 소극장의 역할

미림극장은 주로 고전영화와 독립영화를 상영하고, 이 영화들의 가치를 알리는 여러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최현준 대표는 고전영화와 독립영화에 집중하는 이유에 대해 “영화는 ‘간접 체험’의 방식으로 힘을 발휘할 수 있는데, 이는 다양한 종류의 영화가 만들어지고 또 선보일 때 선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답했다. 그는 “영화란 스크린이라는 창을 통해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벌어지는 현장을 잠시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창구”라며 “세월호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를 상영한다고 하면 반감을 보이던 노인 관객이 영화를 보고 나면 눈물 짓게 되는 것이 영화와 같은 문화 예술이 갖는 힘”이라 밝혔다. 이처럼 영화는 보이지 않는 힘을 발휘해 관객의 심금을 울리기도 하고, 스크린 밖의 넓은 세계를 볼 수 있도록 돕는 큰 창문이 되기도 한다. 최 대표는 이어 “이 힘은 곧 창의성의 원천이고, 또 다른 훌륭한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는 기반”이라며 “우리 삶의 풍요로움을 보장하는 것은 이런 보이지 않는 가치다”라고 말했다.

최 대표는 주류 영화만이 아닌 독립영화, 고전 영화 등 다양한 영화들에 대한 체험이 그런 기능을 할 수 있다고 보고, 그렇기에 소극장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최대한 많은 관객을 확보해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목적인 멀티플렉스의 스크린은 대형 배급사 유명 감독의 영화들이 독점하는 것이 요즘 세태”라고 밝히며 훌륭한 독립영화들이 스크린이 없어 상영되지 못하는 현실에 깊은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는 “그렇기 때문에 미림극장과 같은 소극장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최 대표는 “실제로 독립예술영화관의 스크린 수는 멀티플렉스와 비교하자면 전국적으로 10%도 못 미치는 수준이지만, 한해 제작되는 영화 전체의 90% 이상을 상영하고 있을 정도”라고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극장 한켠에 있는, 일본의 소극장에서 꾸며보낸 영화 소개 자료.
▲극장 한켠에 있는, 일본의 소극장에서 꾸며보낸 영화 소개 자료.

 

복합문화공간으로 변모하는 미림극장

최현준 대표는 극장 공간을 다채롭게 활용하고 여러 영화 행사를 진행하는 일에도 열정적이다. 최 대표는 “영화라는 창구로 언어와 세대를 넘어 공통된 울림을 느낄 수 있다”라고 강조한다. 실제로 그는 미림극장의 대표적 정기 행사로 ‘시네마 데카메론’을 소개했다. 시네마 데카메론은 한 달에 한 번, 정종화 영화 연구가와 함께 고전영화를 리뷰하고 영화 강의를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최현준 대표는 “고령의 영화 애호가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세월의 지혜를 느끼는 동시에 영화가 세대를 넘어 그 영화를 사랑하는 모두를 통합하기도 한다는 것을 실감한다”라고 말하며 시네마 데카메론과 참여자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런 자리는 모두 “영화가 서로를 잇는 매개가 될 수 있다”라고 믿는 최 대표의 철학에서 비롯됐다. 최 대표는 이런 철학 아래 ‘세대공감독립영화제’, 일본 소극장과의 교류 등을 추진했다. 그는 서포터즈로 선발된 29세 이하의 청년들이 반 년 간 직접 영화제를 기획해 개최한 첫 세대공감독립영화제는 500명 이상의 관객이 방문하는 성공을 거뒀다고 자랑스럽게 덧붙이기도 했다. 노년층에게 호응이 좋은 고전 영화와 청년층에게 주목받은 독립영화를 함께 소개하며 영화제는 세대를 넘어 모두가 어우러지는 장이 됐다. 또 우연한 계기로 연이 닿은 일본의 한 소극장과의 교류사업도 2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최 대표는 “일본의 소극장과 미림극장이 서로에게 소개하고 싶은 영화를 선정해 상영하고, 관객이 화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한 적도 있다”라고 말했다. 더불어 그는 “최근에 가장 주력하는 정기 행사는 ‘별별 시네마’로, 인천영상위원회와 협력해 한국 독립영화를 소개하는 정기 행사다”라고 밝혔다. 이 행사는 주류가 아닌 독립영화 감독과 배우가 관객을 만나는 소중한 자리다.

최 대표는 미림극장이 사람을 잇는 다양한 예술적, 문화적 체험의 공간이 될 수 있도록 꾸준히 새로운 시도를 해나가고 있다. 이를테면 관객과 배우가 함께하는 이머시브 연극*을 준비하며 미림극장의 무대, 여타 공간, 창고 등을 전부 활용해 극장 전체를 무대로 만든 적도 있다. 최 대표는 “보통은 ‘무대’가 연극의 무대로 활용되는데, 우리는 극장의 곳곳, 객석, 2층 등 모든 공간을 활용하는 독특한 방식을 사용했다”라고 소개했다. 한 번은 극장 전체가 거대한 전시장이 되기도 했다. 최 대표는 “미래의 극장을 주제로 한 전시를 열었을 때는 객석에 스크린을 설치하는 독특한 경험을 선사하기도 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단순히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을 넘어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극장을 만들어나가게 된 배경을 묻자 최 대표는 “재개장 직후에는 그것밖에 대안이 없었다”라고 털어놨다. 그는 “당시 인천 시장이 바뀌며 약속된 극장 지원이 사라진 후 직접 발로 뛰며 여러 차례 항의하기도 했으나 지자체는 묵묵부답이었다”라고 밝혔다. 결국 그는 대표로 취직하자마자 폐업 위기에 놓인 극장의 활로를 찾기 위해, 여러 공익 사업을 추진하고 이를 각종 문화 재단의 지원 사업에 공모해 지원금을 받았다. 이전에 구로문화재단과 영화제 기획팀에서 일했던 경험은 최 대표가 작은 영화제를 개최하거나 여러 교류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됐다.

그가 이렇듯 열정적이었던 것은 소극장, 단관극장으로서 미림극장이 존속해야 한다는 굳은 믿음 때문이다. 특히 미림극장이 가진 문화적, 역사적으로 독특한 가치는 여러 의미 있는 활동을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이 되기 때문에 소중하다. 최현준 대표는 “이런 극장을 지키기 위한 유일한 활로로 시작한 행사들은 문화 예술의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증진하는 긍정적인 선순환으로 이어졌다”라고 강조했다.

심각한 경영난, 건물주와의 갈등 등 여러 어려움으로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도 미림극장을 위해 노력하는 이유에 대해 최 대표는 “오늘 찾아온 관객이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극장을 만들고 싶다는 작은 목표에 집중하는 것뿐”이라고 담담하게 답했다. “내일도 극장은 변함없이 문을 열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중요하다”라는 최현준 대표의 굳은 믿음. 따듯한 극장 미림이 올해도, 내년에도 열정적인 활기를 갖고 여러 관객을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머시브 연극(Immersive Theater):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물고 관객이 극에 자유롭게 참여하기도 하는 연극.

 

 

사진: 정승혜 기자

luckyjsh1@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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