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영 강사(음악대학 피아노과)
김인영 강사(음악대학 피아노과)

오월의 연둣빛 새순들이 신록으로 빛나는 가정의 달이 찾아왔다. 우리 삶의 원동력이 돼 주는 가족은 옛 예술가들에게도 영감의 샘물이자 자양분이었다. 이번 기고에서는 낭만 시대의 거장 슈만 부부의 사랑 이야기를 소개한다.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던 로베르트 슈만은 음악에 대한 열망을 외면하지 못하고, 당시 뛰어난 음악 교사였던 프리드리히 비크의 문하로 들어가 피아노를 배우게 되는데, 이는 곧 슈만에게 새로운 음악 인생과 더불어 사랑의 출발점이 된다. 

슈만은 비크 선생의 딸, 천재 소녀 피아니스트 클라라 조제핀 비크 슈만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비크 선생은 열 살이나 많은 빈털터리 무명 작곡가 슈만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미성년자인 클라라와 연애를 한다는 명목으로 슈만을 고소하기까지 한다. 사랑에 불타오른 슈만은 혼인 허가 소송으로 예비 장인어른에게 맞서며 투쟁했고 결국 승소한다. 

결혼식 전야인 1840년 9월 11일 밤, 슈만은 하얀색 순결을 상징하며 결혼하는 신부의 머리에 똬리처럼 올려지는 꽃인 미르테의 이름을 딴 가곡집, <미르테의 꽃>, 작품 25를 클라라에게 헌정하며 사랑의 언약을 맺는다. 슈만 부부의 사랑의 결실은 곧 창작의 결실로도 이어져, 결혼한 그 한 해에만 140여 곡의 예술 가곡을 작곡하며 1840년을 ‘가곡의 해’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이 시기에 작곡된 연가곡 <여인의 사랑과 생애>, 작품 42의 내용처럼, 부부는 사랑에 빠진 순간부터 약혼과 결혼, 그리고 임신과 아기의 탄생까지의 행복을 오롯이 느껴가고 있었다.

그러나 행복했던 슈만 부부의 삶에 비극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다. 1854년,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이던 슈만은 뒤셀도르프의 라인강에 투신해 자살 소동을 일으킨다. 다행히 구조돼 목숨은 건졌지만, 결국 괴상한 광기들로 정신병원에 수용돼 감금 생활을 하게 되고, 클라라의 삶은 슬픔으로 가득 차게 된다.

 

세상이 텅 비어버렸군요.

나는 사랑하며 살아왔지만

지금은 살아있다 할 수 없어요.

- 로베르트 슈만, <여인의 사랑과 생애>, 작품 42-8 中 ‘그대는 제게 처음으로 고통을 주시는군요.’ -

 

클라라는 당시 여섯 아이의 어머니이자 임산부로서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에 슬픔에만 잠겨 있을 수 없었다. 슬픔 속에서 계속된 연주를 다니며 클라라는 ‘슈만의 곡을 연주하며 그의 숨결을 느꼈고,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온몸이 그의 음악 속에 녹아내리는 듯(클라라의 음악 일기 中)’ 조금씩 위로 받았다.

아름답고도 슬픈 부부의 결혼생활은, 1856년 슈만이 눈을 감으며 막을 내린다. 클라라는 이후 남은 40여 년 동안 남편이 남긴 예술 유산을 알리는 데 여생을 바친다. 죽어서도 남편 옆에 묻히길 소원해 지금도 슈만 곁에 잠들어 있는 클라라 슈만이, 우리에게 ‘슈만’이라는 이름을 남긴 진정한 슈만이 아닐까. 

끝으로 아내 클라라가 독주자로 초연하고 평단의 뜨거운 찬사를 받아낸 로베르트 슈만의 걸작, <피아노 협주곡 가단조>, 작품 54를 추천한다. 사랑하는 아내 클라라와 그녀의 이탈리아식 별명인 ‘키아라’에서 따온 음(Clara의 C-A-A와 Chiara의 C-B-A-A, H는 독일어 음이름에서 B에 해당)을 주제로, 사랑하는 사람을 음악에 새겨 넣고 싶은 그의 열망을 확인할 수 있다. 수수께끼 같은 슈만의 음악 암호를 읽어내며 그들의 낭만적 서사를 들어보자. 당신이 새기고 싶은 가족의 모습은 어떠한 모습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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