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취재 | 중국과 타이완의 관계 속에서 진먼 알아가기

타이완과 중국의 관계는 복잡하고 특수하다. 일명 ‘정경분리’로 대표되는 양국의 관계. 정치적으로는 대립하더라도,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 가운데 중국 샤먼과는 8km 정도의 거리로 타이완보다 중국 대륙에 더 가까이 위치한 ‘타이완령 섬’ 진먼은 상당히 복잡한 지역성을 지닌다. 양안관계가 국제 무대에서 다시 화두로 떠오른 지금, 『대학신문』에서는 직접 타이완과 중국 그 어느 쪽도 그대로 닮지만은 않은 독특한 섬 진먼을 찾아가 양안 간의 관계성 속에서의 면면을 들여다봤다.

▲타이완(우)보다 중국(좌)에 가까운 진먼의 위치. 중국 대륙 아래 초록색 섬이 진먼이다.
▲타이완(우)보다 중국(좌)에 가까운 진먼의 위치. 중국 대륙 아래 초록색 섬이 진먼이다.

 

대립의 양안 역사, 전쟁터였던 진먼

양안관계는 중국 대륙에서 발생한 공산당과 국민당의 내전을 거쳐, 국민당이 타이완 영토로 망명한 후 시작된 두 나라의 갈등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지은주 연구교수(고려대 정치연구소)는 “본성인은 16세기에 대륙에서 넘어와 타이완에 거주하고 있던 사람들을, 외성인은 장제스의 국민당이 타이완으로 건너왔을 때 함께 온 사람들을 뜻한다”라며 “이렇듯 타이완 거주민들의 배경에서 발생한 차이가 각각 오늘날의 민주진보당(민진당)과 국민당의 정치적 성향 차이를 만들었다”라고 밝혔다. 중화민국 건립 후 미국의 차관을 중심으로 경제 개발을 할 당시 외성인이 주축이 돼, 남부 지역에 주로 거주했던 본성인은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 지은주 교수는 “본성인은 당시의 현실에 불만을 가지고 민진당을 결성했고, 지금까지 국민당과 민진당의 입장 차이가 이어진다”라고 설명했다. 타이완의 민진당은 중국과 독립하려는 경향이, 국민당은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지금은 민진당 정부의 차이잉원 총통이 집권하고 있다. 

양안의 고질적인 정치적 대립은 두 국가 간의 군사적 대립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가장 최근에는 차이잉원 총통의 방미로 중국이 포위 군사훈련을 실시한 일이 있었다. 지은주 교수는 “중국은 타이완 내에서 독립 의지가 강해지거나, 미국이 타이완을 지지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력하게 드러나는 경우 군사 위협의 강도를 높이는 경향이 있다”라고 분석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중국지역전략팀 허재철 부연구위원 또한 “중국이 타이완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군사 훈련은 무력 침공을 위한 실질적인 준비보다는 민진당 등 독립 세력과 미국을 향한 메시지다”라고 밝혔다.

유구히 이어져 왔던 양안 간 군사적 대치 분위기에 진먼도 갖은 몸살을 앓았다. 특히 진먼은 양안 간 군사적 대립이 가장 거세던 시절 대립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었다. 리우페이이 교수(타이완 진먼대 국제양안관계학과)는 “진먼은 지리적인 위치로 인해 과거에나, 지금이나 지정학적으로 상당히 중요할 수밖에 없다”라고 밝혔다. 1949년 10월 진먼을 두고 중국군과 타이완군이 벌인 구닝터우 전투 이후, 진먼과 샤먼 사이의 전투는 미·중 수교 전날까지 30년간 계속됐다. 1958년 8월 23일에 발발한 진먼 포격전이 대표적인 사례다. 1992년 진먼의 계엄령이 철폐되고 나서야 진먼에 주둔하던 타이완 군대가 철수한 바 있다.

 

중국과 경제적으로 밀접한 진먼의 지역 정체성

일각에서는 진먼이 여전히 양안 간 무력 충돌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분석된다는 견해도 있지만, 현재의 진먼과 중국의 경제적 밀접함을 고려하면 그렇게만 보기 어렵다. 장영희 연구교수(성균중국연구소)는 “저강도 전쟁으로 진먼을 탈환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으나, 잘못된 전망이다”라며 “진먼의 거주민들은 중국과의 교류와 협력을 중시하는데, 중국은 타이완 통일 이후의 심리적인 지지까지도 고려하고 있기에 진먼 여론을 생각하면 공격을 감행하기는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소삼통을 보면 진먼과 중국의 경제적 교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소삼통은 진먼과 중국 샤먼 사이를 오가는 여객선의 운항을 뜻한다. 양안 간 물류를 포함한 경제와 인적 교류를 뜻하는 통상(通商), 통항(通航), 통우(通郵)를 포괄해서 이르는 ‘3통(通)’은 1980년대부터 추진됐다. 대삼통은 점차 양국의 실리에 따라 교류의 장을 모두 개방한 것인데, 문흥호 교수(한양대 국제대학원)는 “경제 교류가 활발해짐에 따라 중국과 타이완 간에는 타국에 집을 구매하거나 결혼을 가는 사례도 다수 있다”라며 “타이완과 중국은 문화·경제적으로만 봤을 때는 사실상 하나의 사회나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이에 우쥔팡 교수(타이완해양대 해양문화학과)는 “대삼통과 함께 발전한 소삼통에 의해 중국과 진먼 사이의 교류도 더욱 활발해졌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진먼 현지의 선착장 안내원에 의하면 “코로나19 이전 기준으로, 하루 최대 9,000여 명의 이용객이, 평균적으로는 하루에 4,000~5,000명 정도의 이용객이 있었다”라고 한다. 

▲소삼통 선착장 내부의 통로.
▲소삼통 선착장 내부의 통로.

전문가들은 진먼의 지리적 위치상 중국과의 경제적 교류가 타이완 본토보다 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다는 맥락을 설명한다. 지은주 교수는 “진먼섬은 타이완 본토와 떨어져 있어 본토의 지원이 취약하며, 전기 및 수도 공급을 중국에서 받고 있다”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런 경제적 이유로 인해 진먼의 정체성이 유연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장보웨이 교수(타이완사범대 동아시아학부)는 “지난 30년 동안 진먼을 연구한 결과, 진먼 주민들이 자신의 신분을 실용적으로, 유연하게 이용한다는 것을 발견했다”라며 “이들은 샤먼과 거래하며 중국과 친숙한 관계를 유지하는 동시에, 타이완 중앙 정부와의 거래를 통해 타이완인으로서의 소속감을 유지한다”라고 밝혔다. 타이완과 중국 사이에서 필요에 따라 유연하게 나름의 경제적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는 것이다.

진먼은 중국 대륙에 속한 샤먼과도 하나의 생활권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진먼에서 샤먼 음식점을 운영하는 천딩 씨(46)는 “가업으로 이어오던 샤먼 요리를 진먼에 와서 판매하고 있다”라고 소개했다. 리우페이이 교수는 “진먼 사람들이 휴일에 샤먼을 방문하는 일이 빈번한 것은 물론, 샤먼에서 진먼으로의 여행은 보조금까지 지급돼 매우 활발하다”라고 설명했다. 샤먼이 아닌 다른 중국 본토 지역에서 이주해온 사람들도 있다. 스산대포진지에서 배우로 일하고 있는 차이옌메이 씨(35) 또한 “중국 장시성 출신이지만, 직업을 얻기 위해 진먼에 정착했다”라고 밝혔다. 쉬진위 교수(타이완국립대 지리학과)는 “타이완에만 의지하지 않고 양안 사이에서 진먼의 이익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확보하려는 진먼의 성향은, 어떻게 보면 이치에 맞는 것”이라고 분석하며 “진먼은 타이완에 속해 있으면서도, 지정학적으로는 중국 샤먼과 가까워 정치·경제·사회적 정체성이 양안 중 어디와도 완벽히 일치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진먼의 문화적 정체성은

실리에 따라 중국과 밀접한 경제적 교류를 유지함과 더불어, 진먼은 문화적으로도 독특한 정체성을 띠고 있다. 진먼이 양안과 맺어온 관계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정체성 형성의 배경을 알 수 있다. 진먼에서 나고 자란 우쥔팡 교수는 “과거 타이완이 거의 반 세기 가량 일제의 지배를 받는 동안, 진먼은 그 지배에서 벗어나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로 인해 진먼의 문화 자체가 타이완보다는 샤먼 중심의 중화 문화와 더 가깝게 성립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의 말대로 진먼 곳곳에는 중국 샤먼의 전통 민난 문화*와 풍습이 서려 있었다.

▲민난 문화의 영향이 드러나는 펑쓰예 조각상.
▲민난 문화의 영향이 드러나는 펑쓰예 조각상.

진먼의 정치적 성향 또한 한 쪽에 완전히 치우쳐 있다고 보기 어렵다. 리우페이이 교수는 “전통적으로 진먼은 민진당의 득표율이 매우 낮은 곳이었다”라고 운을 뗐다. 실제로 진먼은 국민당 지지율이 높았던 만큼 중국에 배타적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드물었고, 이에 ‘친중’ 지역으로 비춰지기도 했다. 그러나 리우페이이 교수는 “지난 지방 선거와 대통령 선거에서는 민진당의 득표율이 상승했다”라며 “이는 진먼의 정치적 성향이 세대의 변화에 따라 점진적으로 변화했다는 것을 말해준다”라고 설명했다. 진먼의 정치적 성향은 때에 따라 유동적이라는 것이다. 여러 측면에서 샤먼과 진먼이 가까운 모습을 보인다고 해서 진먼이 친중국 성향의 섬이라고 단정지어 보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 있다.

진먼과 진먼인은 양안 중 어느 한 곳에 속해 있지 않고 그 자체로 독자적인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다. 우쥔팡 교수는 “진먼 주민은 중국인도 타이완인도 아닌 진먼인을 자처한다”라고 강조했다. 리우페이이 교수 또한 “교수로서 본 진먼 현지의 학생들은 진먼이 타이완이 아니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밝혔다. 우쥔팡 교수는 “진먼인들이 이런 정체성을 갖는 것은 문화적 자의식이 강해서라기보다, 어느 한쪽을 택할 수 없는 입장에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양안이 오랜 세월 축적해온 복잡한 교류 양상이 반영된 결과 진먼의 이런 특이한 정체성이 만들어졌다는 의미다.

장보웨이 교수는 “진먼은 양안 간 역사적 분단의 시작점이자 현장 그 자체면서, 중국과 타이완의 특성이 복합적으로 공존하는 지역”이라고 짚었다. 이처럼 진먼은 양안관계가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을 잘 보여주는 공간이다. 시간이 흘러 진먼이 점하고 있는 독특한 정체성과 양안관계가 어떻게 맞물리며 전개될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민난 문화: 중국 푸젠성 중심의 전통 문화. ‘민’은 푸젠을 가리키며, 샤먼이 푸젠성에 속해 있다.

 

사진: 정연솔 기자 jsyno@snu.ac.kr

안선제 기자 sunje1021@snu.ac.kr

삽화: 박재아 기자 0204jae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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