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워싱턴 선언의 실효성과 타당성을 점검하다

지난달 27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북한에 대한 확장억제* 강화를 공약한 워싱턴 선언을 채택했다. 확장억제 강화의 구체적 내용을 별도의 문서에 담은 이번 워싱턴 선언은 크게 △핵협의그룹(NCG) 창설 △미국 전략자산의 빈번한 한반도 전개 △한국의 핵확산금지조약(NPT) 의무 이행 의지 재확인을 골자로 한다. 『대학신문』은 워싱턴 선언이 어떤 실질적인 안보 효과가 있으며, 이에 앞서 외교 전략상 타당한 선택이었는지를 짚어봤다. 

 

확장억제 강화 천명한 워싱턴 선언

워싱턴 선언은 미국이 북핵 위협에 대응해 한국에 제공하는 확장억제의 강화를 목표로 채택된 한미 정상 간 선언이다. 확장억제 강화의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NCG 창설이 있다. 이는 미국의 핵 자산으로 북한의 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고위급 상설 협의체로, 여기서는 한국과 미국이 핵무기 운용에 관한 심도 깊은 논의를 진행하게 된다. 또한 미국 국방부 패트릭 라이더 대변인은 오하이오급 전략핵잠수함(SSBN)이 전개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편, 한국의 NPT 의무 이행 의지 재확인 내용은 한국의 자체 핵무장이나 전술핵 재배치는 허용되지 않음을 못박은 것이다.

이처럼 워싱턴 선언은 북한의 핵위협으로부터 보다 확실한 안전 보장을 받고자 하는 한국의 입장과 핵의 비확산을 추진하는 미국의 입장이 맞물려 채택됐다. 세종연구소 정성장 통일전략연구실장은 “미국이 한국의 NPT 의무 이행 의지를 확인함과 더불어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협력 협정 준수를 재확인했다는 것은 핵연료 재처리가 불가함을 못 박음으로써 한국의 핵무장 가능성을 지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국빈 방문 직후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번 선언에 ‘한국형 확장억제’의 실행계획이 담겼다며 한미 간 일대일 관계로 만난다는 점을 들어 NATO의 아시아 핵 기획그룹(NPG)보다 더 실효적이라 자평했다. 하지만 이런 정부의 입장과는 별개로 워싱턴 선언의 실효성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워싱턴 선언, 이전과 얼마나 다를까

우선 워싱턴 선언으로 인해 실질적으로 확장억제가 가능할 것이라고 단정 짓기 어렵다. 정성장 실장은 “NCG는 말 그대로 협의체기 때문에 여전히 핵 버튼은 미국 대통령의 손에만 쥐어진 상태”라며 이번 선언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또한 그는 “북한이 지속적으로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을 고도화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미국이 본토 타격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북한의 핵무기로부터 남한을 보호하는 데 나설지는 담보할 수 없다”라고 우려를 표했다. 

나아가 전문가들은 NCG가 기존의 한·미 협의체와 유의미한 차이를 보일지도 불투명하다는 입장을 내보였다. 최우선 교수(국립외교원)는 “NCG의 설립을 통해 핵무기를 운용한다면 한·미 간 대화와 정보가 오갈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된다는 점에서 상당한 진전”이라면서도 “그러나 미국이 얼마나 깊은 정보를 공유할지는 지켜봐야 알 일”이라고 말했다. NCG가 한국과 미국 간 이미 마련돼 운영되고 있었던 한미안보협의회의(SCM), 한미 고위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한미 확장억제수단 운용연습(DSC TTX) 등의 여러 확장억제 관련 협의체와 사실상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동준 교수(정치외교학부)는 “협의체의 인적 구성 정도에만 차이가 있을 뿐 본질적인 내용이나 역할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SSBN의 한반도 수시 전개에 관해서도 대체로 구색 맞추기에 불과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조 교수는 “SSBN에 탑재되는 미사일의 사거리는 13,000km로 상당히 길다”라며 “따라서 지금처럼 태평양에 전개되나 한반도 인근 해역에 전개되나 큰 차이가 없다”라고 평했다. 

 

커지는 균형 외교 필요성

워싱턴 선언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애당초 워싱턴 선언이 충분한 검토를 거친 행보인지 돌아봐야 한다는 비판적 시각도 제기된다. 조동준 교수는 “북핵으로 인한 위협 탓에 한국이 자체적으로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자체 핵무장론이 탄생했고, 이를 향한 정치적 압박이 워싱턴 선언의 배경 중 하나”라고 운을 뗐다. 그는 이어 “북핵의 실제적 위험성에 대한 검증이 부재했기 때문에 이런 압박이 발생해 워싱턴 선언이 추진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 교수는 “워싱턴 선언의 실효성을 따지기에 앞서, 북핵이 정말 실제적으로 위협이 되는지를 가늠해 보면 그렇지 않다”라며 “핵무기의 막대한 위력이 오히려 북한으로 하여금 핵무기 사용을 주저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북한이 실제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에 대해 보다 이성적으로 평가해 보고, 이에 대한 대책을 찬찬히 수립해 나갔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요지다.

한반도에의 미국 영향력을 강조한 워싱턴 선언은 중국과 러시아의 강한 반발을 일으키기도 했다. 실제로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의 영문판인 「글로벌 타임스(Global Times)」는 워싱턴 선언에 대해 지난달 29일 미국 핵 자산의 배치로 한국이 또 다른 핵 위기를 촉발할 수 있는 전략적 보복에 직면할 것이라 비난했고, 러시아 외무부 역시 국제 질서 불안정을 초래한다며 한국 정부에 경고의 뜻을 내비쳤다. 조동준 교수는 “북핵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핵무장에 대한 맹신이 촉발한 워싱턴 선언이 결국 중국과 러시아에 우리를 압박할 빌미를 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우선 교수는 중국의 반응에 대해 “중국은 NCG가 장기적으로 일본과 호주도 참여하는 지역 기반 핵 협력으로 이어질까 우려하는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정재원 교수(국민대 러시아유라시아학과)는 러시아의 입장에 대해 “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서쪽으로는 NATO의 NPG를 마주하고 있던 러시아가 동쪽에서 추가로 NCG를 마주하게 되자 당혹스러움을 표출한 것”이라고 해설했다. 워싱턴 선언이 폭넓은 외교적 판단 아래 이뤄졌는지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필요하다. 

취재원들은 워싱턴 선언으로 중국과 러시아와 긴장 관계에 놓인 이 상황을 균형 잡힌 외교로 풀어가야 할 중요성이 커졌다고 공통적으로 강조했다. 정재원 교수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러시아에 유리하게 끝난다면 군사적, 경제적 압박이 있을 수 있다”라며 “지금과 같이 미국에 치우친 외교는 위험하다”라고 지적했다. 세종연구소 정재흥 중국연구센터장 역시 “중국과 러시아도 북한 문제를 함께 풀어갈 중요한 파트너”라며 “다극체제*를 형성하려 하는 중국과 러시아의 입장에 극단적으로 반하는 모습이 계속되면 이것이 위험 요인으로 작용해 제재의 위험성은 물론 한국에 대한 투자가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최우선 교수 역시 “지금은 워싱턴 선언을 채택한 우리의 의도가 중국과 러시아를 향해 있지 않음을 소명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라며 “북핵 문제 해결이나 경제적 실리를 위해 장기적으로는 유연한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라고 견해를 밝혔다.

 

*확장억제: 미국의 핵 능력으로 동맹국에게 가해지는 핵 위협을 대신 견제하고 보복하는 것.

*다극체제: 국제 정세에서 패권적인 힘을 가진 국가가 다수인 체제.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