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 박종일 교수(수리과학부) 기고

박종일 교수(수리과학부)
박종일 교수(수리과학부)

지난해 대한민국 수학계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다. 국제수학연맹(IMU)이 한국 수학의 국가 등급을 최고 등급인 5그룹으로 승격하는 경사가 있었으며, 온전히 국내에서 교육을 받고 성장한 서울대 동문 허준이 교수(미국 프린스턴대)가 필즈상을 수상하는 등,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열정적인 수학자들 덕분에 한국 수학계는 전 세계에서 위상을 드높이는 쾌거를 이뤄 냈다. 이는 비단 한국 수학계 뿐 아니라 과학기술계에 한 획을 긋는 엄청난 성취다. 

한편, 우리 산업구조가 4차 산업혁명과 첨단 과학기술을 중심으로 급격히 전환되면서 수학의 역할과 영향력은 획기적으로 증대되고 있다. 정부 및 민간에서 국가 및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수학의 활용 촉진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수학계의 적극적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학생을 위한 일자리를 창출하고 수학의 사회적 인식 제고를 통해 그 역할과 위상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분명히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성장 동력의 기회가 될 것이다. 선진국일수록 수학의 사회적 역할은 매우 강조돼 왔다. 최근 시대적 흐름에 따라 우수한 학생이 수학과로 진입하고 전례 없이 수학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 지역대학에서는 구조 개혁을 명분으로 일부 수학과가 축소 및 변경되고 폐과되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또한 대한민국의 냉혹한 현실이다. 이런 현실과 변화를 요구하는 현 사회에서, 한국 수학계의 경쟁력을 향상하는 데 더불어 연구지원 방향을 개선하고 확대하기 위한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수학과의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현실적으로 지역대학에서 많은 수학과가 축소되거나 사라지고 있다. 여기에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졸업해도 일자리나 취직 문이 좁다는 대중의 인식이 큰 것 같다. 하지만, 앞으로 다양한 산업 난제를 수학으로 해결하는 ‘산업 수학’이 활성화될 것이다. 실제로 빅데이터나 인공지능 등 4차 산업혁명의 핵심에서 가장 중요한 게 수학과 통계학이다. 해당 분야에서는 학부 수준의 수학을 제대로 공부해두면 마음껏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수학과가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인력을 키워낼 수 있는 중요한 ‘인큐베이터’(incubator)라는 뜻이다. 따라서 수학과를 더 활성화함으로써 ‘이론 수학’ 외에도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산업 수학 표준 교육과정, 즉 커리큘럼을 만들어서 학생들을 교육하고 우수한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 또한, 지역대학 수학과의 폐지 움직임은 지금 막 박사학위를 받고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하는 연구자들에게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수도권 주요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더라도, 이들이 대학에서 교육하고 연구를 계속할 자리가 없어지기 때문에 곧바로 대학 현장의 이공계 교육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게 되며, 이는 한국 수학의 경쟁력 약화로 직접 이어진다.

둘째, 학문후속세대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허준이 교수의 필즈상 수상을 계기로 ‘허준이 펠로십’과 같은 박사후연구원을 지원하는 중장기 프로그램이 생겨서 기쁘지만, 이는 극소수의 연구자에게만 혜택이 주어지는 프로그램이다. 허준이 펠로십을 시작으로, 학문후속세대인 박사후연구원을 안정적으로 지원하는 연구소 또는 제도를 만들 것을 제안한다. 매년 수학과나 통계학과 등 수학 관련 학과에서 배출하는 박사가 130~140명 정도다. 그중 수학과 출신 박사학위자가 100여명 이내인데, 이중 연구원 및 산업체에서 연구를 계속하거나 전공을 살려서 직업을 갖는 인원이 대충 60여명 정도다. 더 많은 박사학위 취득자들이 본인의 연구를 계속하고 싶어 하지만, 모두를 지원할 제도가 없어 시간제 강사나 학원 강사 등 다른 진로를 선택한다. 이렇게 박사학위까지 받은 우수한 연구인력을 방치하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굉장한 손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수학 및 관련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최소 50여명 이상의 연구자들에게 적어도 3년에서 5년까지는 안정적으로 연구할 수 있게 하는 독립적인 정부출연 성격의 ‘수학연구소’를 국가에서 설립하고 지원해야 한다. 그래야 제2, 제3의 허준이가 계속 나올 것이다. 

셋째, 중등 교육과정에서 수학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지난 40~50년 동안 중등 교육과정 개정 때마다 이루어졌던 수학 과목 학습 내용의 축소는 ‘학습 부담 경감’, ‘사교육 약화’라는 당초 목표했던 순기능은 전혀 달성하지 못한 채, 이공계열 학과로 진학하는 학생들의 학력 저하라는 부작용만 초래했다. 이제는 교육의 본질에 입각해 관련 제도를 개선해야 할 때다. 수학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인공지능, 빅데이터 분야 인재를 양성하자고 하면서도, 학생들이 중등과정에서 꼭 배워야 할 내용은 오히려 줄었다. 교육이란 새로운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이다. 과정이 즐겁지 않아서, 어려워서 피하려고 하면 안 된다. 심지어 최근에는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미적분Ⅱ, 기하 과목을 제외하려는 정책을 수립하고 있다는 소리가 들린다. 이는 결과적으로 단순한 ‘학력 저하’ 수준을 넘어 사고의 확장성 마비 및 대학 교육과정과의 연결고리 붕괴 등, 학생들의 미래에 회복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지금도 대학 이공계 과목의 가장 기본적인 언어인 미적분과 기하를 고등학교에서 제대로 학습하지 못한 채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은 기초 수준의 강의조차 수강할 능력을 갖추지 못해 대학에서의 학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사회과학 영역인 경영, 경제, 사회학, 심리학 등의 분야에서도 기본적인 통계학 지식을 학부 수준에서 다루기 때문에 그 근간이 되는 데이터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미적분과 기하적 소양은 더 우선적이고 중요해진다. 이처럼 대학의 거의 모든 전공에서 고등학교의 기초적 수리 영역에 대한 학습이 충분히 이뤄졌을 때, 다양한 수리 연계 전공의 이해도가 높아지며, 융합 전공의 증가로 대한민국의 다음 세대를 책임질 현 대학생들의 역량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21세기를 맞이하면서 시작된 제4차 산업혁명은 수학이 국부의 원천이 되는 시대, 즉 ‘수리자본주의 시대’의 도래다. 선진국의 사례를 살펴보면, 영국에서는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높은 분야로서 수학을 매우 중시하고 있고, 2018년에는 보고서 「수학의 시대(The Era of Mathematics)」를 발간함으로써 수학에 의한 영국 경제에의 공헌도는 총부가가치*의 16%, 고용의 10%인 것으로 계산했다. 그리고 그 외 선진국에서도 공헌도가 유사하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일본의 경우, 2019년에 일본 경제산업성·문부산업성이 공동으로 펴낸 「The Coming Era of Mathematical Capitalism – How the Power of Mathematics Changes Our Future(수리자본주의의 시대: 수학의 힘이 세상을 바꾼다)」 보고서에서 “We believe that we have identified the top three science priorities in order for Japan to lead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and to even go beyond its limits: 1. mathematics, 2. mathematics, and 3. mathematics”(일본이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고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3대의 과학적 우선순위는 첫째도 수학, 둘째도 수학, 그리고 셋째도 수학임을 확인했다)라고 표현하면서 수리자본주의 시대 속 수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즉, 수학의 경쟁력이야말로 21세기 대한민국의 미래를 선도하는 힘의 원천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총부가가치(Gross Value Added, GVA): 생산량을 측정하는 생산성 지표 중 하나. 국내총생산에서 세금과 보조금을 제외한 금액이며, 산업의 상품과 서비스 생산량을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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