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휘(심리학과 석사과정)
이은휘(심리학과 석사과정)

동물의 생존과 안녕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환경에 얼마나 잘 적응하느냐에 달려 있다. 적응이란 내가 현재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정확히 보는 것이고, 그 다음은 각 상황에 맞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는 것이며, 마지막은 이를 적절히 수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과잉 자극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는 적응의 첫 단추를 꿰는 것부터가 쉽지 않다. 내가 처한 상황을 알려면 정보를 수집해야 하는데, 당장 손만 뻗으면 집히는 곳에 정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쌓이다 못해 산사태가 일어나 내게로 쏟아지기까지 한다. 쉴 새 없이 외부 자극을 받아들여도 내가 본 것보다 못 본 게 더 많다. 이미 아는 것보다 앞으로 알아야 할 게 더 많다. 바로 이런 순간에 사람은 불안해진다. 불안한 사람은 생존을 위해 본능적으로 시야를 좁히고, 당장의 위기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눈앞의 것들만 쳐내듯이 처리하게 된다. 이렇게 근시안적인 태도로 선택한 행동이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부적응적인 결과를 낳기 십상이라는 사실은 의사결정에 관한 수많은 연구 결과들이 증명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진짜 적응적인 삶을 위해 인간은 무엇을 연습해야 할까? 앞서 적응을 ‘상황을 정확히 알고 그에 맞는 적절한 행동을 선택, 실행하는 것’으로 정리했는데, 이때 말하는 적절성의 기준은 결국 항상성 유지에 있다. 항상성이란 내부와 외부를 분리하는 경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경계의 내부를 조절하는 것을 의미한다. 물리적 측면에서 볼 때 인간을 비롯한 동물은 필연적으로 몸이라는 경계를 이미 지니고 있지만, 마음은 이런 경계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따라서 나의 마음 안팎을 구분 짓는 경계를 애써 인식하고, 정의해야 한다. 그러나 바깥에서 쏟아지는 소리에만 신경 쓰다 보면 안에서 울리는 진동은 놓치기 쉽다. 그렇게 안과 밖의 정보 사이에 불균형이 생기고, 내부와 외부 사이 경계가 모호해지면 항상성이 깨지게 된다. 내가 조절할 수 있는 영역이 어디까지인지도 명확히 알지 못한 채, 대처가 아닌 반응만을 할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게슈탈트 심리치료 이론에서는 이런 상태를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 ‘지금-여기’에 집중하는 것을 제안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몸과 마음의 요구, 환경적 맥락 등을 통합해 그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행동을 하려고 하는 동기인 ‘게슈탈트’를 형성한다. 건강한 사람은 매 순간 자신에게 중요한 게슈탈트를 선명하고 강하게 인식하며 이를 해소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자기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충분히 알아차리지 못하고 게슈탈트를 미해결 상태로 쌓아두게 된다. 적응적이고 만족스러운 행동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해소되지 못한 욕구를 회피하지 않고 바라봐야 한다. 이는 나에 대해 분석하거나 판단한다기보다 있는 그대로 지각하고 체험하는 것에 더 가깝다. 신체 감각, 감정, 생각, 언어와 행동 등 나와 환경 간 상호작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영역에서의 현상을 의식적으로 관찰함으로써, 그동안 모르고 지나쳤던 내부의 울림을 자각하고 이에 대한 분명한 통제력을 가질 수 있다.

최근의 뇌 과학 연구들에 따르면 실제로 인간이 내부 세계에 집중하고 자신을 관찰할 때 자기 통제와 적응적 행동에 관여하는 뇌 영역은 활성화되는 반면, 우울과 불안에 관련된 신경 네트워크는 덜 활성화된다고 한다. 따라서 우리는 매 순간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살피는 대신, 때로는 오히려 눈을 감고 나의 안쪽 면을 바라봐야 한다. 내 경험에 대해 평가적인 태도를 내려놓고 현재에 머물러야 한다. 현재 내 몸에 느껴지는 감각은 무엇인지, 내가 지금 무슨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들이 어떤 생각에서 비롯됐는지 분명히 알아차리는 데에서 적응의 첫 발자국이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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