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봉근 BK 교수(기계공학부)
정봉근 BK 교수(기계공학부)

대학 생태계는 사회 구조의 변화와 맞물려 함께 변화해야 한다. 그중 가장 최근에 이슈가 되고 있는 인구 구조의 변화는 우리가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일상생활을 가져다 줄 듯 하다. 이런 급변하는 사회적 변화에 잘 적응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인간이 사용할 미래 제품에 대한 기술 개발의 중요성 역시 강조되고 있다. 그 동향은 ‘인간중심 기술’로 귀결됐다. 최근 대기업 및 대학 연구소 등에서 가장 눈에 띄는 단어 중 하나가 바로 ‘인간중심’(Human-Centered)이다.

이번 학기 기계공학부 대학원에 신규 교과목 하나를 개설했다. 줄여서 ‘SNU AT’(Assistive Technology)라고도 불리는 ‘인간중심 재활 및 보조기기 설계’(Human centered rehabilitation and assistive device design)다. 강좌를 통해 장애인이 일상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문제점과 어려움을 기술로 해결해 가기 위한 인간 중심 제품 디자인 및 설계 과정을 경험할 수 있다. 비슷한 프로젝트는 이미 2012년부터 서울대 QoLT(삶의 질 기술 개발) 과제의 일환으로 진행된 적이 있었으나 정규 교과목으로 개설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학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기 위해서 신규 교과목을 기반으로 해결해 나가는 과제는 국내 거주 장애인들이 보건복지부 산하 국립재활원의 열린보조기기 열린플랫폼을 통해 청원한 기술개발 요청 중 해결되지 않은 고난도 과제들이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대학과 공공기관이 협력해 개설한 대국민 장애인 기술 개발 프로젝트다. 실제 장애인 당사자가 필요로 하지만 관련 제품 및 기술이 없어 사용하지 못하는 제품을 사용자 인터뷰, 시제품 제작 등을 통해 해결하며 최종 결과물은 국립재활원 보조기기 열린플랫폼에 공유된다. 

미국 MIT에서도 지역 거주 장애인들이 필요로 하는 보조기기 제품을 개발하고 이에 사용된 원천기술을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에 전파하는 적정기술로 활용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와 같은 프로젝트 기반, 서비스 러닝 기반의 설계 교과목은 기술개발에 있어 실 사용자의 관점에서 얼마나 다양한 문제들이 있는지 직접 실제 환경에서 경험하고 디자인하는 리빙 랩(Living Lab)을 그 방법으로 사용한다는 데에서 그 의의가 있다. 강의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를 통해 이런 수요 기반의 기술개발 결과물을 좀 더 보편적인 제품으로 스케일 업(Scale up)시키기 위한 합리적인 방법 및 과정을 도출해 낼 수 있도록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인간중심제품설계 과정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 지식이 필요한데, 특히나 장애인 및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제품 설계에서는 의학, 공학, 인문․사회 등 다학제적 융합적 사고방식을 경험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래서 이번 신규 교과목에서도 다양한 전공의 구성원들이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이 교과목의 성공과 실패는 단 하나의 핵심 가치에서 비롯된다. 바로 진정성이다. 사회적 약자나 차별 상황에 놓여 있는 장애인 문제를 자신의 문제처럼 받아들이고 이를 해결해 가려는 진정성이 있는 학생들은 최선의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반면 마주하게 된 난제를 해결하려는 진정성이 부족할 경우에는 실패를 경험할 수 있다. 

대학이 인간을 이롭게 하는 다양한 원천기술을 개발하고 혁신하고자 할 때, 대학의 중요한 사회적 책무 중 하나인 진정성을 구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가 진정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교육기관으로서 변화하는 사회구조와 산업구조를 견인하기 위한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고 기술개발을 통해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지니고 있는지 질문을 던져볼 때다. 그때 진정성이 대학의 사회 공헌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룰 수 있는 토대가 되지 않을까? 이제 막 그 불씨를 지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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