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온 기자(사회문화부)
오정온 기자(사회문화부)

 

역사는 지지부진하다. 현실에는 비범한 능력으로 한순간에 모든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영웅도, 모든 현상을 설명해주는 동력도 없다. 그렇다고 파편화된 사건을 시공간 속에 아무렇게나 방치할 수는 없는 법이다. 고로 역사를 쓰는 사람의 목적에 따라 영웅이며 동력 따위는 곧잘 창조된다. 물론 이렇게 쓰인 역사는 훗날 과거를 목적론적으로 윤색했다는 비판에 직면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일들이 목적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마음이 편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현실은 지지부진하다. 인생의 어느 순간은 인스타그램 피드처럼 오래도록 기억에 남지만, 대부분의 순간은 빛나지 않는 일상이다. 매일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가 중언부언하는 인생의 서사를 마주할 때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고통을 덜어주고자 우리 사회는 개인의 파편화된 일상을 역사로 만들 방법을 제시해준다. 대학 진학, 취업, 결혼, 육아, 은퇴로 이어지는 단선적 서사를 통해 개인은 비로소 인생의 어느 지점에 서 있다는 안도감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전통적 서사의 핵심은 개인이 결혼과 출산을 거쳐 정상 가족을 구성하는 데 있다. 푸코 말마따나 근대 이후 인구는 국가가 관리해야 하는 중요한 자원이 됐기 때문이다. 

서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연속성의 감각은 공동체를 유지하는 구조이자 개인의 삶을 지탱하는 믿음직스러운 버팀목이었다. 정상성의 기준에 모종의 권력이 스며들었음을 알면서도 눈 딱 감고 속아줄 만큼. 그런데 최근 소위 ‘정상 가족’에 편입하지 않겠다는, 그리하여 공적 서사에 삶을 억지로 맞춰 조립하지 않겠다는 시대적 요구가 힘을 얻고 있다. 국가가 제시하는 단선적 서사가 청년 세대에게는 예전만큼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청년 세대가 단순히 ‘살기 팍팍해서’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이들은 사회가 제시하는 서사와 동떨어진 여러 대안적 삶의 모델에 익숙하다. 정상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등장한 새로운 가족 실천은 정상 가족을 통해서만 시민의 삶을 상상해온 우리의 인식을 보기 좋게 흔들어줬다. 나아가 경쟁과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로 특징지어지는 환경 속에서, 밀레니얼 세대가 체험하는 삶이란 서사가 있는 역사라기보다는 당장 소비할 사건의 집합에 가깝다. 나와 공동체의 미래를 예측할 수 없고, 예측하기를 원하지 않을 때 고정된 서사가 전과 같은 효용을 가져다줄 리 없다. 바야흐로 일률적인 역사 만들기가 빛바랜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그럼에도 공적 서사를 따라 정상 가족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은 사회 구조로서 개인에게 강력하게 작동한다. 사회적 의무가 가족의 의무로 치환되고, 사회적 기반이 정상 가족을 기준으로 작동하는 사회다. 지지받지 못하는 서사를 제시하려는 시도가 쉬울 리 없다. 따라서 ‘다르게 살겠다’는 청년 세대의 결심은 여전히 고통스럽고, 역사 쓰기의 주체를 사회에서 나로 옮기고자 시도하는 순간부터 그들은 불안을 마주해야 할 것이다. 가정의 달을 맞아, 가족 정책이 이처럼 ‘역사 쓰기’와 ‘역사 쓰이기’ 사이를 끝없이 헤매고 있는 청년을 발견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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