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떠나가는 사람, 비어가는 지역

지방이 소멸하고 있다. 소멸 위기를 논할 때면 농산어촌 지역이 주로 해당 됐는데, 수도권 인구 집중이 갈수록 심화하면서 지방 중소도시 또한 소멸 위기에 놓였다. 한국의 지방 소멸은 지금 어디까지 왔을까. 그 현실을 포착하고자 지난달 8일 농산어촌 군 지역에 해당하는 충남 보령시 청소면을, 9일에는 광역시임에도 지방소멸우려지역으로 꼽히는 부산 동구의 범일동과 지속적인 인구 유출을 겪고 있는 영도구 봉래동을 방문했다.

 

시골 지역의 소멸: 충남 청소면

충남 보령시는 행정안전부 지정 인구감소지역 중 하나다. 특히 청소면은 관내에서 세 번째로 고령화지수가 높은 만큼 소멸 위기에 직면했다. 이곳에서는 지방 소멸의 현실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었다. 기자는 주민들을 만나 그들이 처한 지방 소멸의 현실에 귀 기울였다. 

▲담쟁이로 완전히 뒤덮인 폐가
▲담쟁이로 완전히 뒤덮인 폐가

우선 주민 대부분이 노년층이기에 아이들은커녕 40대 이하의 청년을 마주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곧게 뻗은 일차선 중심가에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과 용도 잃은 폐건물들이 버젓이 방치돼 있었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동안 담쟁이가 그 공간을 메웠다. 중심가를 수차례 왕복하면서도 만나기 어려웠던 주민들은 마을회관에 모여 있었다. 평촌경로당은 주말임에도 이야기꽃을 피우는 할머니들로 북적였다. 주민들은 “50대, 60대는 몇 명 없고 70대도 젊은 축에 속한다”라며 “자식들은 20대에 취업하면서 전부 타지로 나갔다”라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자녀가 장성해 타지로 이주하는 것을 지극히 당연한 수순으로 여겼다. 일자리의 부재 탓이다. 한 주민은 “일자리도 없는데 자식들 붙잡아 놓고 농사 짓게 하는 부모가 어디 있나”라고 강조했다.

▲청소면 평촌경로당 주민들
▲청소면 평촌경로당 주민들

청소역 인근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박요한 씨(30)도 “여기에 동년배라고는 네 명뿐”이라며 청소면이 직면한 인구 문제의 심각성을 전했다. 청소면에 가깝게 위치한 혜전대에서도 수도권에서 취업하려는 학생들의 열망을 확인할 수 있었다. 최예나 씨(혜전대 제과제빵과)는 “근처에 약국도 없어서 읍내로 나가야 한다”라며 “취업은 서울, 경기권을 희망한다”라고 말했다.

젊은층 인구 유출의 주요인으로는 사회기반시설이 부족하다는 점이 꼽힌다. 주민들은 “마을회관 운영비도 매달 나오고 빨래, 청소 등도 지원 받는다”라며 지자체의 노인 복지 정책에 대체로 만족감을 표했지만, 교통 및 의료 시설이 수도권에 비해 턱없이 부족해 불편을 겪고 있었다. 실제로 청소면 내 의료기관은 보건지소 하나가 전부였고, 시내로 이어지는 마을버스는 매일 1~2회만 운행된다.

더불어, 주민들이 시외로 이동할 때 선택 가능한 유일한 대중교통인 기차도 끊길 날이 머지않았다. 청소역 조창희 역장은 “열차는 매일 상행 4번, 하행 4번이 있고 2027년 말이면 열차 정류가 중단될 것”이라고 전했다. 한두 명 승하차하는 역을 계속 유지하면서 적자가 누적됐기에 사업상 손익계산에 따르면 진작 없어져야 했다는 설명이다. 인터뷰 와중에도 청소역에는 다섯 명 안팎의 탑승객들만이 내렸다. 조창희 역장은 “보령시와 홍성군을 잇는 장항선 개량 2단계 건설이 완공되면 청소역은 문화재로서만 남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항선에 남은 유일한 간이역이자 가장 오랜 역사인 청소역은 근대 간이역사의 건축 양식을 간직하고 있어 2006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됐지만, 현재는 이용객이 적어 매표소도 운영하지 않는다. 노년기 주민들의 삶과 직결되는 의료 및 교통 인프라 문제에 적신호가 켜졌다.

▲청소역에 정류한 열차를 맞이하는 조창희 역장
▲청소역에 정류한 열차를 맞이하는 조창희 역장
▲텅 빈 청소면의 시가지
▲텅 빈 청소면의 시가지

 

도시 속의 소외: 부산 범일동과 봉산마을

청소면과 같은 전형적인 농어촌 시골 마을뿐만 아니라 널리 알려진 도시에서도 지방 소멸이 일어나고 있다. 약 330만 명이 거주하는 부산광역시는 서울특별시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남부 지방의 거점 도시임에도 청년들이 서울로 몰려가며 일부 지역의 소멸이 진행되고 있다. 이는 해운대구 등 부산의 주요 랜드마크가 있어 많은 관광객이 찾는 지역보다 동·서구, 영도구 등에서 두드러진다.

1953년 개교한 동구 범일동 소재의 좌성초등학교(좌성초)는 2021년 3월 범일초등학교(범일초)로 통합돼 폐교했다. 취재차 들른 옛 좌성초 부지에서 기자들은 1980년대 좌성초에 재학했던 시민 A씨를 우연히 만나 인터뷰할 수 있었다. 가족과 모교를 찾은 그는 “서너 살 때부터 이곳에 살다가 20대 초반에 상경해 10년간 거주했다”라고 말했다. 좌성초 폐교와 관련해 “주변에 청년들이 거주해야 학교가 유지될 테니 언젠가 폐교할 것이라 짐작했다”라며 씁쓸한 표정으로 답했다. 뒤이어 그는 “취업 등의 측면에서 청년층이 살 유인이 없는 것이 학령인구 감소의 주원인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부산시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고 일자리를 찾아 상경한 A씨의 이야기는 지방의 소멸 과정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2018년 폐교 후 건물 출입이 금지된 좌천초
▲2018년 폐교 후 건물 출입이 금지된 좌천초

영도구는 올해 2월 기준 65세 이상의 고령인구 비율이 30.5%로 초고령사회 기준인 20%를 훌쩍 넘긴 지역이다. 이에 기자들은 영도구 내에서도 고령화와 인구 유출이 심각하다고 알려진 봉래동의 봉산마을을 취재해 실상을 알아봤다. 다채로운 색으로 단장한 봉산마을은 많은 관광객이 찾는 활기찬 관광 명소처럼 보이기도 했다. 

▲푸르게 물든 봉산마을 주택의 지붕들
▲푸르게 물든 봉산마을 주택의 지붕들

하지만 마을 내부로 들어가자 그곳에 드리운 문제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마을 내 공원에 머물던 시민 B씨(75)와 C씨(80)에게 인구 유출을 실감하는지 묻자 “동네에 빈집이 정말 많다”라며 “빈집 소유주들은 대부분 다른 지역에 거주한다”라고 답했다. 실제로 마을을 돌아다니며 ‘전세방’ 혹은 ‘달세방’이라고 적힌 종이가 붙여진 주택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주민 평균 연령대를 묻자 B씨는 “이 동네에는 젊은 사람도 어린이도 살지 않는다”라고 답했다.

▲다채로운 색들로 칠해진 봉산마을 주택들
▲다채로운 색들로 칠해진 봉산마을 주택들

봉산마을은 좁은 골목길이 즐비할뿐더러 고지대에 위치해 많은 사람들이 떠나가고 있다. 한편 남은 지역의 주민들은 불충분한 의료 시설 및 교통편을 감수해야 한다. 봉산마을 거주민 B씨는 “이곳에 산 지 40년이 넘었지만 한 번도 영도구 차원에서 길을 정비해준 적이 없다”라며 “나이가 많아 보도 정비의 필요성을 논리적으로 피력하는 일도 현실적으로 어렵다”라고 토로했다. 이처럼 물리적 생활 여건이 좋지 않은 지역에서는 거주민들이 점점 인프라를 찾아 수도권으로 이동하게 되고, 이는 지방소멸과 수도권 과밀화를 동시에 발생시키는 악순환을 낳는다.

 

사라지는 공간, 그럼에도 살아가는 사람들

한편 청년들이 떠나가는 공간 속에서도 생기를 품고 꿋꿋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부산 동구 좌천초 인근 좌천동 산복도로에는 98m 구간의 경사형 엘리베이터가 운행되고 있다. 그곳에서 기자는 자성대 노인복지관 노인사회활동지원사업의 공공시설지원활동팀으로 근무하는 우귀남 씨(76)를 만났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시설을 관리하는 일을 맡은 그는 “일이 없어 집에만 있던 내게 이 일은 참 즐겁다”라며 밝은 목소리로 답했다. 우 씨는 “씻고, 화장하고, 걷고, 여러 사람을 만나는 것이 좋다”라며 지금의 삶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한편 영도구 봉산마을을 대표하는 알록달록한 집들 역시 소멸에 직면한 마을이 품은 지속성의 의지를 보여준다. 봉산마을 주민 B씨와 C씨는 “많은 사람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에 마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예쁘게 페인트칠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비록 청년들에게 외면 받고 잊혀지고 있는 지역일지라도 여전히 사람들이 살아가 생명력을 품고 있는 공간임을 환기한다. 

▲봉산마을 공원에서 만난 마을 주민
▲봉산마을 공원에서 만난 마을 주민

 

“사람이 살아야 동네가 산다.” 기자가 취재하며 만난 사람들에게 들은 공통적인 말이다. 사람의 활력을 잃은 마을은 자연스레 소멸 수순을 밟게 된다. 사라져 가는 지역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바로 지금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모두가 공존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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