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 동향 | 대학가 무지개행진과 변화의 움직임

지난 12일(금), 신촌 스타광장에서 ‘서울퀴어퍼레이드 서울광장 사용 불허 규탄 대학가 무지개행진’(행진)이 개최됐다. 연세대, 한양대, 이화여대 등 10개 대학 소속 20개 단위에서 공동 주최했으며, 22개 단위가 연대의사를 표명한 대학가 전반의 움직임이었다. 이들은 무엇을 위해 걷고 소리쳤을까? 이들의 발소리와 목소리를 따라가 봤다.

 

잃어버린 축제를 찾아서

이번 행진은 지난 3일 서울시 열린광장운영 시민위원회(시민위원회)가 오는 7월 1일로 예정된 서울퀴어문화축제(서울퀴퍼)의 서울광장 사용을 불허한 것에 대한 대항이었다. 반면 시민위원회는 CTS 문화재단이 같은 날 개최하는 청소년·청년회복콘서트의 서울광장 사용은 허가했다. 행진 참여자들은 시민위원회의 결정이 성소수자에 대한 명백한 차별이라고 성토했다. 행진을 주도한 서울대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학소위) 학소위 권소원 위원장은 “코로나19 시기를 제외하면, 서울퀴퍼는 7년간 서울광장에서 열려 왔다”라며 “이를 불허하는 것은 서울퀴퍼를 기다려온 수많은 학생과 시민을 배제하는 결정”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권 위원장은 CTS가 과거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표현으로 물의를 빚은 기독교 방송사라는 점을 들어 “혐오를 기조로 하는 단체의 행사에 광장 사용 권한을 준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행진 주최 측은 “두 단체가 같은 날 서울광장 사용 신고를 할 경우 조정 절차를 밟아야 함에도 이 같은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라고 발언했다. 

행진 참여자들은 발언이 끝날 때마다 “우리가 여기에 있다, 무지개는 이어진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기자회견장의 분위기를 뜨겁게 달궜다. 참여자들의 발언 후에는 서울퀴퍼의 의미를 되새기며 차별적 행정을 규탄하는 기자회견문 낭독이 있었다. 이후 각 단위 대표자들이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여섯 색의 천을 엮어 무지개 천을 만드는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스타광장부터 연세대교차로를 왕복하는 행진의 시작을 알렸다. 이날 행진에 참여한 이화여대 대학생 A씨는 “시민위원회의 결정에 화가 나 참여하게 됐다”라며 “같은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느껴 든든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 피켓을 들고 행진하는 참여자들.
▲ 피켓을 들고 행진하는 참여자들.

 

모두가 연대하는 축제

서울광장을 막은 시민위원회의 결정에 맞서 한낮의 도로를 행진한 무지개행진은 서울퀴퍼가 성소수자에게 갖는 의미를 보여줬다. 한양대 한양성적소수자인권위원회 김유선 위원장 또한 “서울퀴퍼는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외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드러낼 수 있는 기회”라고 설명했다. 한국외대 성소수자 동아리 외행성은 “서울퀴퍼는 퀴어가 퀴어로서 온전히 존재하고 소속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강조했다. 

나아가 여러 소수자 집단 간의 연대가 이뤄진다는 점에서도 서울퀴퍼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지난해 처음 서울퀴퍼에 참여한 김경민 씨(사회학과·20)는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동물권 운동가, 비건, 장애인권 운동가 등도 서울퀴퍼에 참여한 것이 신선했다”라며 “사회에 존재하는 수많은 소수자가 함께 모여 놀면서 연대하는 축제였다”라고 회상했다. 권소원 위원장 역시 “서울퀴퍼는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각기 다른 정체성을 모두 존중하기 위해 노력하는 행사다”라고 전했다. 이런 서울퀴퍼의 의미를 되새긴 무지개행진에는 각기 다른 대학의 성소수자 동아리는 물론, 각 대학의 교지편집위원회와 생활도서관을 비롯해 장애인권, 노동권 등 다양한 소수자를 대변하는 단체가 두루 참여하고 연대의 뜻을 표했다.

 

이제는 대학에서 함께 해야 할 때

한편, 이번 행진에서는 성소수자를 대학 내에서 제도적으로 포섭하기 위한 적극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한양대 에리카캠퍼스 성소수자 동아리 하이퀴어 에리카는 “대학 내 성소수자 동아리에 대한 정동아리 인준 거부나 성소수자 색출 사건 등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행정이 끊이지 않고 있다”라고 전했다. 외행성 또한 “서울퀴퍼와 같은 단순한 가시화만으로는 생활 속에서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한계가 있다”라며 “인권헌장, 성 중립 화장실, 중앙 동아리 등록 절차 개선 등 차별을 방지할 수 있는 제도가 시급하다”라는 점을 피력했다.

관련해 대학가에서 변화의 움직임이 조금씩 포착되고 있다. 성공회대는 지난 3월 국내 대학 중 최초로 모두의 화장실을 설치했다. 소수자 연구자이자 학생복지처장으로서 모두의 화장실 추진 사업에 참여한 성공회대 박경태 교수(사회융합자율학부)는 “모두의 화장실은 성소수자 구성원들에게 자신이 소외당하지 않는 대학의 일원임을 느끼게 하는 상징적인 역할을 한다”라고 평했다. 그는 모두의 화장실 설치에 대해 반발이 있었다면서도 “전체 찬반 토론회가 터닝포인트였다”라며 구성원 간 충분한 숙의와 설득 과정이 중요하다고 짚었다.

▲ 성공회대 모두의 화장실.
▲ 성공회대 모두의 화장실.

카이스트는 지난해 10월 ‘다양성과 포용성을 위한 KAIST 선언문’을 채택하기도 했다. 선언문은 다양성과 포용성 증진, 차별금지와 평등의 추구를 골자로 한다. 특히 성적 지향을 이유로 차별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시해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배제를 명문화했다. 카이스트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 박혜수 위원장은 “익명 커뮤니티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언이 무분별하게 표출되는 것에 문제의식을 느꼈다”라고 추진 배경을 밝혔다. 그는 “교수진으로 구성된 포용성위원회가 적극적으로 공감대 형성 작업을 한 것이 선언문 채택에 주효했다”라고 말했다. 또한 박 위원장은 “변화를 요구하는 일종의 근거로 제시할 수 있다”라며 선언문에 의미를 부여했다. 

한편, 서울대도 이런 논의를 확산시키고자 지난해 12월 9일 총장 명의의 인권 담화문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2019년 11월, 인권헌장 초안이 처음 제시된 이후 인권 헌장 채택은 여전히 교착 상태에 빠져 있는 실정이다. 제3조 제1항에 담긴 성적 지향 및 성별 정체성에 대한 차별을 금지한다는 내용이 일부 구성원의 반대에 가로막혔기 때문이다. 권소원 위원장은 “성소수자 의제가 수면 위로 올라와 논의되고 있는 점은 분명 긍정적이지만 여전히 설득과 협의의 과정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 3월과 4월 서울대에 모두의 화장실이 설치된다는 보도가 있었으나 『대학신문』 취재 결과 설치 계획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법학전문대학원에서 트랜스젠더 여성의 입학에 맞춰 모두의 화장실 설치를 논의하기도 했으나 이 또한 현재는 중단된 상태다.

 

권소원 위원장은 이번 행진을 계기로 성소수자의 권리 보장을 위한 연대 활동의 영역을 넓혀가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한편 박경태 교수는 “대학에서는 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학술적 연구와 이를 사회적 연대의 실천으로 연결짓는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자기다움의 연대라는 서울퀴퍼의 의미를 다지고 이를 위해 대학 사회의 노력이 성소수자의 실질적 권리 보장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사진: 유예은 기자

eliza721@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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