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신문』 2070호를 펼쳐 취임 100일을 맞이한 총장과 신임 학장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서울대의 앞날에 대해 알아볼 수 있었고, 페이지를 넘기며 한국 사회의 미래에 대해서도 고민해보게 됐다. 특히 ‘단절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 해야 할까?’라는 제목의 칼럼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칼럼의 필자는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인 단절이 우리에게 많은 어려움을 가져왔으나, 비대면 위주의 새로운 방식이 가져다준 효율성을 언급하며 업무든 사적 만남이든 지금 더 편해진 면도 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그는 이와 같은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단절된 사회생활의 부작용에 관한 염려를 표하며 글을 마쳤다.

필자의 마음에 충분히 공감한다. 원래 내성적인 사람으로서 사람을 못 만나는 게 내게 그리 큰 어려움으로 다가오지는 않았지만, 교육자로서 학생들과 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못 하는 건 무척 힘들었다. 학생들이 카메라를 켜놓더라도 손톱만한 얼굴들을 보며 소통하기는 쉽지 않았고 때때로 내가 허공에다 말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 지난 학기부터 대면 강의를 재개하니 학생들과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이 이렇게 좋을 수가 있나 싶었다. 그러나 동시에 비대면 회의가 더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회 역시 멀리 가지 않아도 ‘참석’할 수 있었으며, 심지어 학기 중에 휴강하지 않고 해외 학회를 ‘다녀온’ 적도 있었다. 코로나19 이전의 대면 시대에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따라서 본인 역시 칼럼의 필자와 마찬가지로 옛날 방식으로 돌아가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니, 옳기는커녕 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다. 좋든 싫든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야 할 ‘뉴노멀’이다. 그러나 순순히 부정적인 측면까지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의 우리는 내일 어떤 세상에 살고 싶은지 고민하고 그것을 향해 노력해야 함이 마땅하다. 이와 관련해 의견 지면에 자살 문제에 대해 학부생이 기고한 글도 흥미로웠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은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1위인데, 그 이유는 사회적 지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필자는 ‘서로가 얽히고설켜 연결돼 있다는 감을 느끼며 온기 속에서 살아가도록 하는 사회적 지지’를 강조했다. 

이렇게 단절된 사회에서 이런 지지가 가능할까? 만나지 않더라도 얽히고설킨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물론 앞으로 온라인이나 가상 현실과 같은 곳에서 만나는 일이 잦아지겠지만 그렇더라도 위계질서, 갑을 관계 등으로 인해 사회생활이 힘든 건 마찬가지일 것이다. 대면이든 비대면이든 대인관계가 부담스러워서 불편한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서로 눈치를 보는 관계가 아닌 서로 배려하는 관계다.

나수호 교수

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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