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세계유산으로 등재 권고를 받은 가야 고분군의 의미

삼국의 틈바구니에서 소외당하던 가야가 드디어 빛을 보기 시작했다. 지난 11일(목) 문화재청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의 심사·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가 ‘가야 고분군’에 대해 등재 권고 판단을 내렸다고 밝혔다. 가야 고분군은 1~6세기 중엽에 걸쳐 한반도 남부에 존재했던 가야 지배층의 대표적인 무덤 7곳을 하나로 묶은 연속 유산이다. 그동안 한국 고대사에서 가야는 주변국인 삼국에 비해 그 진가를 인정받지 못했지만, 이제는 가야 고분군을 통해 가야의 진면모들을 볼 수 있게 됐다. 『대학신문』은 가야 연구자들을 만나며 가야 고분군의 가치와 고분군을 통해 알 수 있는 흥미로운 가야사를 파헤쳐 봤다.

 

어떻게 세계유산 등재 권고를 받았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등재 절차와 기준이 있다. 가야의 고분군은 그 기준을 만족시키며 등재 절차를 밟고 있다. 평가에서 등재 권고를 받기 위해서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 △완전성 △진정성 △보존관리 체계라는 네 가지 기준이 전부 충족돼야 한다. 문화재청 보도자료에 따르면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는 “가야 고분군은 주변국과 공존하면서 자율적이고 수평적인 체계를 유지해 온 가야를 잘 보여주며, 동아시아 고대 문명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라고 평가해 등재 권고 판단을 내렸다. 가야 고분군 세계유산등재추진단 하승철 조사연구실장은 “가야 고분군은 연맹이라는 독특한 정치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주변의 중앙 집권적 고대 국가와 병존했던 가야의 문명을 실증하는 증거다”라며, “그 덕에 네 기준 중 가장 핵심적인 평가 기준인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당당히 인정 받았다”라고 말했다.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인 강동진 교수(경성대 도시공학과)는 “등재 권고는 심사위원들의 이견 없이 통과한 것으로, 이변이 없는 한 오는 9월에 열릴 제45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가야 고분군이 세계유산으로 확정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가야사가 조명받지 못했던 상황에서 가야 고분군이 세계유산 등재 권고를 받은 것이 가야사를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풍토를 조성할 것으로 기대된다. 남재우 교수(창원대 사학과)는 “가야 연구는 주로 가야 주변 지역에서 이뤄진다”라며 “지방대학의 쇠퇴와 인문학에 대한 관심의 감소로 가야 연구자 또한 줄어들고 있었는데, 고분군의 등재를 통해 가야사를 복원하고 관련 연구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기대를 표했다.

또한 가야 고분군이 세계유산 등재가 된다면, 4세기 후반 왜(倭)가 일본부를 설치해 가야를 통치했다는 논지의 ‘임나일본부설’이 분명한 역사 왜곡임을 세계적으로 알릴 수 있다. 이동희 교수(인제대 인문문화학부)는 “임나일본부설은 일제의 한국 침략과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구실일 뿐, 한일 사학계에서는 오래전에 허구로 증명됐다”라고 말했다. 하승철 실장은 “가야 고분군이 한국의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면, 가야가 왜의 통치를 받지 않았으며 한국 고대사에 속한다는 사실을 명명백백하게 전 세계에 알리는 것이므로 왜곡된 가야사에 마침표를 찍는 일”이라며 기쁨을 표했다.

 

가야 고분군으로 들여다보는 가야사

가야 고분군은 가야가 여러 국가의 집합으로 이뤄져 약 600년간 동아시아의 강대국 사이에서 존속했다는 물적 증거다. 이를 추정할 수 있는 것은 고분군이 가야인에게 단순한 무덤이 아니라, 정치 체제를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동희 교수는 “가야 각국의 지배층은 정치권력을 보여주기 위해 고분군을 높은 구릉지나 산지에 전략적으로 조성했다”라며 “지배 권력의 정당성과 공동체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특별한 장치”라고 설명했다. 하승철 실장은 “가야 고분군의 묘제가 각 국가별로 지역성을 띠면서도, 출토된 위세품과 교역품을 통해 각국이 모두 대등했으며 자율적인 교섭 관계를 맺었음을 보여준다”라고 덧붙였다. 즉, 가야는 연맹 체제에 속한 다른 나라를 복속하거나 통합하지 않고 연맹 구조로 공존하면서 자율적이고 수평적인 형태로 발전해 온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가야 고분군에서 출토되는 다양한 유물들을 통해 가야가 바다와 대륙을 넘어 국제적인 교류를 활발히 전개했음을 알 수 있다. 이동희 교수는 “금관가야의 대성동 고분군에서 출토되는 가야 토기는 일본 열도로 전파돼 일본의 스에키 토기*를 탄생시키기도 했고, 대가야의 지산동 고분군에서 출토된 철제품과 금 장신구가 백제와 신라, 일본에서도 발견되고 있다”라고 전했다. 또한 아라가야의 대표 고분군인 말이산 고분군에서 출토된 토기는 집, 수레바퀴, 사슴, 배 등 가지각색의 모양인데, 남재우 교수는 “배 모양이나 수레바퀴 모양 토기는 가야가 강가나 바다에서 국가를 형성하면서 주변국들과의 교역을 통해 성장하고 배를 통해 무역했음을 알려주는 또 다른 증거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옥전 고분군에서 출토된 서역의 유리잔은 가야가 동아시아를 넘어 서역과도 교류가 있었음을 드러낸다. 취재원들은 공통적으로 신라를 통해 유입된 로만글라스에 주목했는데, 이동희 교수는 “서역에서 제작된 것이 북방의 초원로를 거치면서 한반도 남쪽의 가야에까지 다다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가영 용운연구교수(연세대 국학연구원)는 “가야는 서로 다른 문화가 공존했던 열린 공간”이라고 표현하며 “고분군의 유물들은 가야의 활발한 교역 활동과 교섭 관계를 보여준다”라고 밝혔다.

 

가야와 가야 고분군, 제대로 알고 재밌게 알기

가야의 고분군이 가진 매력과 현대인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국립해양박물관 백승옥 전문위원은 “가야는 ‘따로 또 같이’의 문화를 가진 나라”라며 각국의 개성과 더불어 가야 연맹 전체의 통일성을 함께 보여주는 가야 고분군의 매력을 소개했다. 또한 신가영 연구교수는 “가야 고분군은 여러 가야의 문화가 어울려 공존했던 가야 사회를 보여준다”라며 “이는 오늘날 다문화 사회를 마주한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라고 말했다.

세계유산 등재 권고 판정을 계기로 가야 고분군이 주목을 받게 된 만큼, 앞으로는 가야 고분군을 비롯한 가야 유적지를 널리 알리고, 가야사에 관한 사회적 인지도를 높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가야에 관한 문헌자료가 극히 적기 때문에, 고분군과 같은 유적이나 그곳에서 출토되는 유물을 이용한 고고학적 연구는 가야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오랫동안 한국 고대사를 연구해 온 정덕기 강사(기초교육원)는 “가야는 고고학 자료가 문헌자료의 빈틈을 채워주고 있어 계속해서 가야 고분군과 같은 유적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또한 철저하게 검증된 역사적 사실을 대중에게 적극적으로 알리는 노력도 중요하다. 강동진 교수는 “가야사를 정확히 알지 못해 가야와 일본의 사이를 오해하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사실을 알려야 한다”라며 “가야의 역사를 깊이 있고 흥미롭게 이해하도록 돕는 박물관과 공공기관의 역할이 중요하고, 역사 교육에서도 삼국뿐만 아니라 가야의 가치도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라고 말했다. 

강력한 삼국에 가려 그 진가를 미처 뽐내고 있지 못했던 가야.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눈앞에 둔 가야 고분군을 통해 가야의 흥미로운 역사와 감동적인 경관을 더 많은 이들이 맛보고 즐기기를 바란다.

*스에키 토기: 가야토기 제작 기술 등이 일본에 전해져 만들어진 회청색의 단단한 토기.

 

 

삽화: 박재아 기자

0204jae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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