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서진 선임연구원(농업생명과학연구원)
조서진 선임연구원(농업생명과학연구원)

거친 엔진의 무거운 소리 사이로 들리는 얇고 낯선 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정류장을 떠나는 버스에는 ‘전기차 버스’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도로에 흔한 전기차 버스와 택시를 보면서 ‘탄소 중립’(넷제로)은 이미 우리 일상에 익숙한 단어가 됐다고 생각했다. 탄소 중립은 기후 변화의 주범으로 알려진 온실가스의 순 배출량, 즉 배출량과 흡수량의 차이를 2050년까지 중립 상태로 만들자는 정책목표에서 나온 용어다. 탄소 중립을 목표로 하는 정책들은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생산과 소비 방식을 온실가스 배출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재설계하고자 한다. 전기차 버스는 이런 정책적 수요로 도로에 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기후 변화 관련 대응에서 탄소 중립은 반쪽짜리 이야기다. 

그렇다면 나머지 반쪽은 무엇일까? 바로 기후 변화의 영향에 적응하는 것이다. 이상하지 않은 날씨가 이상한 것처럼 느껴지는 일상, 이상기후가 더 이상 미사여구가 아닌 ‘기후 뉴노멀’ 시대다. 과학자들은 지구 평균온도가 산업혁명 전 시대에 비해 1.2도 올랐다고 보고 있다. 우리는 이미 기후 변화의 영향을 매일 겪어내고 있다. 파리기후협약에서 약속된 대로 2050년 탄소 중립에 도달한다 해도 평균 기온 상승과 기후 변동성 확대로 인한 피해와 일상의 변화는 현세대가 살아있는 한 계속될 것이다. 그러므로 적응은 기후 변화 대책의 남은 반쪽이며, 우리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변화하는 기후에 적응하는 것은 시민 개개인의 삶과 매우 밀접하다. 기후 변화 적응 정책은 더 넓은 범위에서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지향한다. 기후 변화로 비롯된 영향의 형태와 강도가 각자에게 다르므로, 정책 또한 세부 분야 혹은 지역적으로 계획되고 실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는 기후 변화로 인한 피해를 줄이고 이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을 우리의 일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인류가 자연환경에 유리하도록 삶의 방식을 변화해 온 역사를 생각하면 기후 변화 적응도 문제없지 않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하지만 기후 변화가 우리 삶을 영위하는 기반을 무너뜨릴 만큼 파괴적일 수도 있다는 예측은 차치하더라도, 이 문제가 ‘인류 역사상 가장 도전적인 과제’라는 명성을 얻은 이유는 따로 있다. 기후 위기는 인간의 경제 활동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지금까지와 같은 가치판단으로는 기후 위기를 해결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기후 변화 적응은 우리 사회 시스템과 경제 성장을 구축해 온 가치판단 기준의 강도 높은 변화를 요구한다. 빠르고 효율적인 성장을 기치로 발전한 사회 시스템과 그에 따른 행동 양식, 의사결정 기준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즉, 적응을 돕는 정책의 도입과 시행은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가치들에 우리가 얼마나 의미를 부여하는가를 끊임없이 확인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뙤약볕에 근무하는 근로자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얼마만큼의 시간을 더 기다릴 수 있을까?’, ‘멸종위기 야생동물 서식지를 보호하기 위해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하는 조치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해수면 상승에 의한 침수를 예방하기 위해 재산적 가치에 불리하게 변경되는 도시계획을 용인할 수 있을까?’, ‘기후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사업들은 얼마나 우선될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은 기후 변화 적응에서 시민 개개인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선제적 적응을 위한 시간이 매우 부족하다. 역사적으로 인간이 이처럼 빠른 기후 변화에 집단으로 적응한 사례는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기후 변화와 그 영향에 대해 과학적으로 예측할 수 있다. 그리고 적응을 위해 필요한 에너지 자원의 재분배와 행동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사회 경제 시스템도 갖추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택하고 행동해야 한다. 주도적으로 적응할 것인가? 아니면 변화하는 기후에 적응 당할 것인가?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