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민지 사진부장
구민지 사진부장

요새 소방관에 관련한 내용을 다루는 ‘1초’라는 웹툰을 재밌게 보고 있다. 미래를 보는 능력을 가진 주인공을 중심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소방관들의 이야기를 담은 내용이다. 끊임없이 현장에 출동하는 소방대원의 일상을 실감나게 보여주는 서사와 영웅처럼 재난에서 사람들을 구해내는 극적인 연출에 빠져 단숨에 정주행을 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보며 기억에 남은 부분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주인공이 비범한 작전을 펼친 것보다, 그로 인해 사람들의 이해를 받지 못하거나 누군가에게 사죄해야 하는 장면이었다. 한 소방관이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 구조 대상자를 들쳐메고 나왔는데 뼈를 부러뜨렸다며 소송을 당하고 상급자에게까지 사과해야 하는 상황도 마음에 걸렸다.

소방관이 구해야 할 목숨은 두 개라고 한다. 하나는 구조 대상자의 목숨이고, 다른 하나는 본인의 목숨이다. 소방관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중 하나는 재난 현장에서 대피해 빠져나오는 사람들을 거슬러 현장을 향해 다가가는 뒷모습이다. 자신의 사활을 걸고 재난 현장으로 들어가 사람들을 구해내야 하는 소방대원들은 긴급한 상황에서도 매순간 결단을 내려야 하는데, 자신의 목숨도 그 고려에 포함해야 하기에 매번 타인만을 위한 결론을 내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확실한 위험이 도사리는 현장에서 사람들을 구해오는 일을 직업으로 가지는 것 자체가 분명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의 가치를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리라. 하지만 그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소송을 당하는 등의 상황이 반복된다면 결국 정신적, 신체적 스트레스가 쌓이게 된다. 이는 현장에서 긴급한 판단을 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 리가 없다.

우리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어느새 우리는 여건이 돼도 다른 사람을 돕기를 꺼리게 됐다. 그런 사회적인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은 선의를 악용하는 일들에 대한 보도가 날로 쌓여가고, 괜한 오지랖으로 오해받는 것을 넘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는 인식이 만연해졌기 때문이다. 나 또한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는데 오히려 후회를 하게 된 경험이 있다. 여행을 할 때든 길거리 상인을 만날 때든 어떤 경우를 조심해야 하는가에 대한 글이 점점 늘어났고, 노약자가 도움을 청하는 척하며 인신매매 조직에 협조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여러 괴담을 듣고 난 후에는 ‘세상에 경계해야 할 것들이 참 많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고 남을 돕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슬픈 일이다.

일반인이 여러 위험으로부터 조심해야 하는 일과 사람을 구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진 이들의 이야기는 다른 차원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둘 모두 그런 비슷한 사건들이 실제 현장에서 반복될 때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부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같다.

도움을 청하는 낯선 사람이 어떤 위협을 뒤에 숨겼을지 모른다는 인식이 만연해지는 것은 곧 우리 안의 선의가 발휘되기 어려운 사회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단 나만의 선의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선의, 내가 속한 집단의 선의가 발휘될 수 있는 바람직한 사회가 되기 위해 우리 모두 노력해야 할 성싶다. 서로가 서로를 모른 척하고 혹여나 입을 피해만 생각하느라 선의를 참는 사회에서 살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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