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금) 한국전력공사(한전) 정승일 사장이 한전 경영난에 책임을 통감하며 사옥 매각 등을 포함한 25조 원 규모의 재무 개선안을 발표하고 사임했다. 지난해 겨울 난방비 폭탄으로 악화된 여론을 의식한 정부와 여당이 전기요금 인상을 한전의 방만 경영 탓으로 돌려 한전을 압박한 결과다. 그러나 정치적 후폭풍을 의식하며 전기요금 인상을 미루다 한전과 국민의 부담을 도리어 가중한 정부와 여당의 책임을 결코 간과할 수 없다. 정부는 한전 탓하기를 멈추고 전기요금의 최종 결정자로서 책임감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정부가 한전의 요구를 무시하고 전기요금 인상을 연이어 보류하면서 한전의 적자는 계속해서 누적됐다. 한전이 조정안을 제출하더라도, 산업통상자원부와 기획재정부가 협의 후 최종 인가하는 방식으로 전기요금이 결정되기 때문에 정부와 여당이 표심을 위해 인상을 거듭 미룬 탓이다. 당초 3월 말에 확정돼야 했을 2분기 전기요금만 해도 국민 여론을 의식하다 지난 15일, 2분기의 절반이 지나서야 결정됐다. 결국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급상승한 국제 에너지 가격을 전기요금이 제때 따라가지 못하며 역마진이 지속된 결과, 한전은 올해 1분기에만 약 6.2조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한전의 적자는 단순히 한전의 경영난으로 끝나지 않고 경제위기로 이어질 수 있어 더욱 심각한 문제다. 한전이 거대한 적자를 감당하기 위해 발행한 대규모 채권은 다른 기업들의 자금 조달을 가로막는 등 금융시장에 혼란을 주고 있다. 게다가 연일 불어나는 채권의 이자는 결국 국민의 몫으로 돌아갈 공산이 크다.

이처럼 정부는 때늦은 전기요금 인상 결정으로 경제 악화에 대한 우려를 증가시켰을 뿐 아니라, 전기요금 인상 과정에서 국민 부담을 완화해 줄 대책을 제시하지도 못했다. 특히 국민 생활의 필수재인 가정용 전기요금과 기업 이윤을 위한 산업용 전기요금을 동일한 폭으로 인상하는 과정에서 면밀한 검토가 이뤄졌는지 의문스럽다. 2021년 기준 산업용 전기가 전체 전기 사용량의 55%를 차지하는 반면 주택용 전기는 15%만을 차지한다. 그런데 산업용 전기는 가정용 전기와 달리 누진제를 적용받지 않고 심야 시간대에는 별도의 경부하요금을 적용받는 등 여러 특혜를 누린다. 24시간 공장을 가동할 수 있는 대기업이 경부하요금의 가장 큰 수혜자임을 고려하면, 지불 능력이 있는 전기 다사용 기업과 일반 국민의 부담을 차등적으로 고려하지 않은 정부의 선택은 납득하기 어렵다.

정부는 전기요금 인상 과정에서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음을 반성하고, 전기요금 인상 여파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무엇보다 대규모로 발행된 한전채가 미칠 금융 혼란을 고려해 금융 지원 등 대비책을 마련하고, 에너지 복지의 사각지대가 없도록 꼼꼼한 정책 설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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