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보훈 다시 보기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일은 누구든 쉬이 결정할 수 없는 숭고한 결심이다. 따라서 국가는 여러 지원과 사회적 정책으로 국가를 위해 희생한 유공자에게 보답한다. 그러나 물리적 지원을 넘어 국민적 존경의 영역까지 아우르는 성격 덕에, 보훈이 누구에게 어느 정도로 이뤄져야 할지를 둘러싸고 여전히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호국보훈의 달인 6월을 앞두고 보훈 제도의 구조와 지향을 짚어봤다.

 

누가 보훈의 자격을 지니는가

오늘날 국가는 국가의 평화를 지키고자 최선을 다해 싸운 이들의 ‘공훈에 보답’하기 위해 보훈 제도를 확립했다. ‘국가보훈기본법’에 따르면 국가보훈은 국가를 위해 희생하거나 공헌한 사람의 숭고한 정신을 선양하고 그와 그 가족의 영예로운 삶과 복지향상을 도모하며 나아가 국민의 나라사랑정신 함양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고태우 교수(국사학과)는 “근대 국민국가가 자국의 평화를 위해 전쟁에 나가 싸운 군인과 유족의 법적 보상권리를 인정하고, ‘국민’과 ‘민족’ 개념을 통해 구성원에게 공동체성을 부여하는 과정에서 근대적 보훈 제도가 자리 잡았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보훈 제도는 과연 나라가 인정해 주는 공훈이란 무엇이며 보훈의 대상으로 거론되는 이들이 국민적 존경을 받을 자격이 있냐는 가치판단과 직결되며 오래도록 이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는 개개인이 공훈을 해석하는 틀 역시 다르게 했다. 고태우 교수는 “‘국가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정체성을 만드는 과정을 누가 주도했으며 그 속에서 누가 희생됐는지를 확인하고 판단하는 과정이 바로 역사를 이해하고 인식하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때 필요한 역사관의 차이에서 보훈과 관련된 견해 차이가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런 견해차를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가 1894년 일어난 동학농민운동 참여자의 훈장 수여 여부에 관한 논의다. 2004년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동학농민명예회복법)이 제정되며 동학농민군에 대한 명예 회복이 이뤄졌으나, 현재까지 공식적인 서훈은 이뤄지지 않았다. 한편 동학농민군에 서훈할 것인지를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고 있다. 유바다 교수(고려대 한국사학과)는 “동학농민명예회복법에서 동학농민혁명의 참여자는 ‘일제의 침략으로부터 국권을 수호하기 위해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자’인데, 이는 ‘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에서 독립유공자를 ‘일제의 국권 침탈을 반대하거나 일제에 항거한 자’라고 규정한 것과 정의가 같다는 점에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가 독립유공자에 해당한다는 주장이 성립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동시에 유 교수는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의 유공자 서훈이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라며 “오랫동안 1895년 을미의병을 독립운동사의 출발로 파악해 왔기에 그들에 대한 서훈이 갑작스럽게 느껴질 수 있을뿐더러, 동학농민혁명은 반외세뿐 아니라 반봉건적이라는 점에서 다른 독립운동과는 성격이 다소 구별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지금도 계속되는 한국의 분단 상황은 보훈을 둘러싼 논쟁을 극대화한다. 성시경 교수(단국대 공공정책학과)는 “국내 근현대사를 바라보는 인식 자체에 차이가 있어 어디까지 국가유공자로 선정해야 하는가를 두고 의견 차이가 발생하고 있다”라며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가 대표적 사례”라고 밝혔다. 실제로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의 서훈을 둘러싼 이념 갈등은 21세기까지 이어졌다. 고태우 교수는 “현재 독립유공자서훈 공적심사 일반기준에 따르면 사망 시까지 행적에 문제가 없어야 하며, 광복 이후 사회주의 국가건설을 목적으로 사회주의 활동에 주력하거나 적극 동조한 자로 규정되는 공산주의자를 제외한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를 포상대상자로 규정하고 있다”라며 “2000년대에도 이어진 한국 사회의 ‘레드 콤플렉스’ 때문에 사회주의계 독립운동가 서훈은 사회적 논란이 됐다”라고 밝혔다.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에 대한 서훈 수여 여부에 대해서는 지금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한국보훈학회 이강수 부회장은 “보훈 정책은 국가가 이어가고자 하는 가치를 위해 헌신한 사람을 보훈대상자로 해 공훈을 기리고 본받게 하는 것”이라며 “따라서 사회주의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6.25 전쟁을 일으킨 사람을 보훈대상자로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반면 민족문제연구소 박용규 연구위원은 “2005년 여운형 선생의 서훈 당시 논란이나 2019년 약산 김원봉에게 서훈할 것인지를 두고도 큰 논란이 발생했던 것을 고려하면, 우리나라는 모두가 알 정도의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에 대한 서훈에도 소극적이다”라며 “사회주의계열 운동가에 대한 서훈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도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보훈의 대상을 둘러싸고 명확한 답을 내리기 어려운 여러 논쟁이 이어지면서, 과거의 사안은 오늘날에도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우리 삶이 변화할 때, 보훈도 변화한다

특히 한국의 보훈 제도는 급격한 사회 변동을 거치며 짧은 시간 동안 대상과 지원 형태 등에서 큰 변화를 겪었다. 이강수 부회장은 “각 보훈 집단이 보훈대상자로 선정되는 시기와 과정을 보면 집권 정치세력 등이 보훈 대상 선정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추론할 수 있다”라며 “군사정부는 그들의 정통성을 뒷받침할 수 있는 집단을 보훈 대상으로 선정했고, 민주화의 염원을 안고 등장한 정부도 지지 세력에 도움을 주기 위해 보훈 정책을 활용했다”라고 설명했다. 고태우 교수 역시 “박정희 정권기 4차례의 대규모 서훈이 있었는데, 그 시기는 5.16쿠데타 집권 직후, 대통령 취임 직전, 3선개헌 논의 당시, 유신체제의 위기 시점 등이었다”라고 언급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보훈의 이런 역사적 변화를 사회 발전 과정에 따른 자연스러운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본다. 국가보훈처 보상정책국 오진영 국장은 “권위주의 정부 시기와 민주주의 정부 시기의 보훈 정책에는 차이가 발견될 수 있다”라며 “이를 단순히 진보 대 보수의 측면으로만 이해하기보다는 민주화 이후 다양한 사회적 욕구들이 수용되는 과정에 발맞춰 보훈의 대상이 늘어난 것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라고 답했다. 고태우 교수 역시 “보훈 관련 법령이 불명확했던 과거에는 정치세력의 지향에 따라 보훈 정책이 결정되기도 했으나, 2000년대에 들어서는 보훈 관련 법과 심사기준이 마련돼 있기에 정권에 따라 크게 바뀌지는 않았다”라고 말했다. 더불어 그는 “실제로 1990년대 이후 여성운동이 확대되며 여성 민족해방운동 연구가 활발해지고 여성 운동가에 대한 서훈도 늘어났다”라고 덧붙였다. 물론 국가권력이 의도적으로 보훈을 활용한 부분도 있지만, 전반적인 사회 변동이나 대중의 인식과 정서 변화 역시 보훈 제도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 변동에 따라 보훈 제도가 계속 변화하게 되면 보훈의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는 만큼, 보훈 제도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필수적이다. 실제로 보훈은 우리의 국가 인식과도 밀접히 맞닿아 있어 보훈을 이데올로기적 틀에 가두는 일각의 행태는 보훈의 가치를 훼손할 위험성을 높인다. 이강수 부회장은 “보훈은 국민을 통합하는 중요한 기제이므로 정치적으로 이용하거나 훼손해서는 안 된다”라며 “독립, 호국, 민주의 가치가 서로 충돌되지 않고 융합될 수 있도록 ‘국가보훈기본법’이 추구하는 가치와 그에 따른 보상과 지원 기준을 재정립함으로써 국가유공자가 상호 반목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라고 이야기했다.

 

공훈을 제대로 알고 이에 보답하는 법

따라서 보훈이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실제 제도가 대상자들에게 적용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현재 국가보훈처는 독립유공자, 국가유공자, 고엽제 후유(의)증 피해자 등을 보훈 대상으로 포함하고 있으며, 보훈 대상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해당 유형에 해당하는 사람이 반드시 신청해야 하는 신청주의를 기본으로 한다. 오진영 국장은 “신청 후에는 보훈처가 보훈심사위원회라는 전문 기관을 중심으로 신청 내용과 구비 서류를 검토하고 타당성이 인정되면 보훈 대상으로 지정한다”라며 “보훈심사위원회는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및 ‘보훈보상대상자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대상자 본인과 그 유족의 요건 및 상이 등급 판정 관련 사항을 심의하는 국가보훈처 소속의 합의체 의결기관”이라고 설명했다. 더불어 국가보훈처에서는 보훈심사위원회 외에도 독립유공자 훈·포장 대상자를 결정하기 위해 독립유공자서훈 공적심사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반면 독립유공자서훈 공적심사위원회의 재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박용규 연구위원은 공적심사위원을 공모제로 선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규정에는 공적심사위원을 보훈처장이 임명한다고만 명시돼 있어 독립운동에 대해 잘 모르는 심사위원이 활동하기도 했다”라며 “관련 전문 지식에 대한 필기 및 구술시험 단계를 거쳐야 한다”라고 밝혔다. 이어 박 연구위원은 “현재는 독립유공자 서훈 심사 결과에서 불가 판정을 받아도 심사위원 보호 등의 관행에 따라 그 이유를 공개하지 않는다”라며 “서훈 심사 결과가 공개된다면 심사위원 역시 관련 역사에 대해 더 열심히 공부하고 결과에 대한 책임 의식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보훈 제도와 복지 제도 간의 구별을 확실히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오진영 국장은 “지금은 보훈 제도와 일반 복지제도의 구별이 불분명하고, 보훈과 복지가 제대로 구분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 혼란이 발생한다”라며 “따라서 보훈 제도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기초연금제도 등의 일반 복지제도를 분리함으로써 보훈 지원의 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올바르게 자리 잡은 보훈은 우리나라의 정체성과 안보를 유지하는 이념적 기반이 됨으로써 국가의 존속을 돕는다. 오진영 국장은 “보훈은 국가 발전의 밑거름이 된 이들의 공적을 널리 알림으로써 국가 통합을 위한 순기능으로 작용한다”라고 말했다. 또한 이강수 부회장은 “보훈은 정치적 상황을 해결하는 도구라기보다 국가의 존속을 위한 행위”라며 “국가의 존속을 위해서는 전쟁이 발생했을 때 국민이 군인으로서 참여해 주고 국민의 호응이 있어야 하는데, 이때 보훈은 중요한 명분이 된다”라고 밝혔다. 성시경 교수 역시 “보훈 할 대상을 확실히 규정하고 보상의 수준을 높임으로써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자신도 언젠가 공동체를 위해 희생을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 진정한 보훈”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사람들이 공동체를 위해 희생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면 갈등 요인이 감소하고 경제적 성장의 토대가 마련될 가능성이 커진다”라며 보훈의 진정한 의미 실현은 사회경제적 발전과도 이어진다고 밝혔다. 

 

국가보훈처는 다음달에 국가보훈부로 승격된다. 이강수 부회장은 “국가보훈처가 다음 달부터 부가 된다는 것은 위상이 높아진다기보다 국민 소통 및 통합에서 중추적 역할을 부여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라며 “따라서 앞으로 국가보훈부는 국민의 의사를 존중해 보다 합목적적이고 가치중립적으로 운용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어떤 제도가 적용되는 범위를 정하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고, 특히 그것이 정신적인 혜택과 결부된다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럴수록 누구보다 우리가 먼저 보훈이란 무엇인지, 어디까지의 공훈을 존경할 것인지 고민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나라의 기반이 되는, 보훈의 진정한 의미 실현을 위해.

 

삽화: 박재아 기자

0204jae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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