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현실 속 희망을 말하는 『외침』

학부생 최다대출자 박세웅 씨(철학과·20)가 추천한 책*, 『외침』은 현대 중문학의 아버지 루쉰이 1918년부터 1922년까지 쓴 14편의 단편 소설을 묶은 책이다. 박세웅 씨는 『외침』이 어두운 사회상을 담으면서도 그것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한다는 점에 감명받아 이 책을 추천한다고 밝혔다. 『외침』이 쓰인 시기 중국은 신해혁명, 신문화운동을 거치며 이전의 봉건적 제도가 무너지고 새로운 현대의 질서가 들어서는 격변의 시기를 겪고 있었다. 루쉰은 『외침』에서 당시 전통적 질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혼란을 겪는 중국인과 중국 사회의 어두운 온상을 풍자한다. 루쉰이 그토록 외치고 싶었던 희망은 무엇이었을까?

 

 

외침

루쉰

215쪽

그린비

2017년 5월 20일

 

 

◇『외침』의 시작: 변화의 필요성=루쉰은 중국인을 처형하는 일본군과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는 중국인 군상의 어리석음에 충격받는다. 이후 루쉰은 그들의 정신을 개조할 필요성을 절감한 후 의학 공부 대신 문예의 길을 택한다. 하지만 몇 사람을 모아 출간하고자 했던 첫 잡지인 『신생』은 출판되지 못하고 그는 무력함을 느낀다. 고통의 시간 속에서 루쉰은 옛 친구 ‘진신’과 희망에 관한 대화를 나눈다. “소리를 질러 의식이 붙어있는 몇몇을 깨우더라도 이는 임종의 고통을 주는 것뿐이다”라는 루쉰의 말에 진신은 “그래도 기왕 몇몇이라도 깨어났다면 희망이 절대 없다고 할 수야 없겠지”라고 답한다. 그제야 루쉰은 “희망은 미래의 소관이며 절대 없다”라는 자신의 증명이 틀렸음을 깨닫고 첫 글을 쓰기 시작한다. 이런 배경에서 탄생한 이야기가 『외침』이다.

『외침』에 수록된 단편 「아Q정전」에는 혼란한 정세 속 노예근성과 자기합리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중국인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로부터의 탈피를 외치는 루쉰의 목소리가 녹아있다. 주인공 ‘아Q’는 우매할 뿐 아니라 비겁해, 강한 자에게는 모욕받아도 저항할 줄 모르는 인물이다. 건달과의 주먹다짐에서 얻어맞고 억울한 일을 경험해도 그는 “아들에게 두들겨 맞은 걸로 치지 뭐”, “마치 자기가 때리고 다른 자기가 맞은 듯했다”라는 어처구니없는 말로 스스로를 속이며 흡족해한다. 결국 루쉰은 이런 아Q를 통해 정신 승리를 멈추고 현실을 당당하게 마주해야 한다고 외친다.

 

◇부조리한 사회 관습: 변화의 필요성=루쉰은 잘못된 사회의 관습과 그것을 합리적 비판 없이 수용하는 세태를 지적하기도 한다. 단편 「약」은 잘못된 사회 관습이 빚은 비극과 좌절을 그려 진한 여운을 남긴다. 「약」에서 아들 ‘샤오솬’이 병에 걸리자, 어머니 ‘랴오솬’은 사람의 피를 먹인 찐빵을 먹으면 병이 낫는다는 민간요법을 믿고 사형수의 피를 묻힌 찐빵을 아들에게 먹인다. 그릇된 생각을 공유하던 주위 사람들은 병의 호전을 확신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은 죽는다. 어머니는 무덤 앞에서 “대체 어찌 된 일일꼬?”라며 절규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이때 루쉰이 드러내고자 한 것은, 아들을 죽인 것은 병이 아니라 사회의 전근대성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한편 루쉰은 이런 잘못된 관습이 벗어나기 힘든 굴레에서 비롯됐음을 간파한다. 단편 「광인일기」의 ‘나’는 주위 사람들이 식인을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해 항상 두려움에 떤다. 하지만 곧 자신 또한 그 속에서 뒤섞여 살아왔음을 깨닫는다. 이후 그는 “나도 모르는 사이 누이동생의 살점 몇 점을 먹지 않았노라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라며 자신도 사람을 먹었을지도 모른다는 고뇌에 빠진다. 결국 제대로 된 사람을 만나기 어렵다는 그의 깨달음을 마지막으로 「광인일기」의 이야기는 매듭지어진다. 루쉰은 일련의 단편을 매개로 비합리적인 사회 관습을 비판하고, 그것에 매몰된 사회와 개인은 이로부터 탈피하기 어렵다는 통찰을 보여준다. 이처럼 단순한 비판에 그치지 않았던 루쉰의 감각은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 

 

◇루쉰이 외치는 희망=그럼에도 루쉰은 “사회와 개인이 암울함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해서 희망을 개척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라며 변화의 가능성을 역설한다. 그는 『외침』의 전반에서 무너진 사람들과 병든 사회의 모습을 그리지만, 결국 소설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것은 개선의 가능성에 대한 희망이다. 이는 단편 「고향」의 담백한 문체 곳곳에 스며있다. 「고향」은 주인공인 ‘나’가 변해버린 옛 친구 ‘룬투’의 모습을 보며 희망에 대해 사색하는 내용을 담는다. 작품 말미에서 ‘나’는 “땅에는 본디 길이 없었고, 다니는 사람이 많아지면 곧 그것이 길이 되는 것”이라고 말하며 희망은 길과 같다고 비유한다. 즉 루쉰이 「고향」을 통해, 나아가 소설집 『외침』을 통해 전달하고자 한 희망은 본래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닌 믿음으로 그려 나가는 것이다.

나아가 루쉰은 민중의 힘이 이 희망으로의 개척을 이끌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점은 노파를 도와주는 인력거꾼을 보며 ‘나’가 고뇌에 빠지는 내용을 담은 단편 「작은 사건」에서 잘 드러난다. 이때 루쉰은 ‘나’와 인력거꾼의 입을 빌려 평범한 개인에게 내재한 배려와 양심이 암울한 개인과 사회에 대한 발전의 원동력이 됨을 설파한다. ‘나’는 인력거 채에 걸린 노파를 별 볼일이 아니라고 여겨 그냥 지나가려 하지만, 인력거꾼은 노파를 성심성의껏 도와준다. 이 작은 사건은 ‘나’가 용기와 희망을 품는 계기가 된다. 이처럼 『외침』에는 깊은 잠을 자는 사람들을 깨울 작은 희망이 담겨있다.

 

루쉰은 『외침』을 통해 무력감에 빠진 사람과 사회를 적나라하게 드러낼 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희망을 다뤘다. 동시에 이들을 구하기 위한 희망이 다른 아닌 민중들에게 있다는 자신의 깨달음을 작품을 통해 외치고자 했다. 『외침』이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이유는 이런 성찰과 희망의 문구가 현대에도 고스란히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루쉰이 작품을 통해 그토록 전하고자 했던 외침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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