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리히 하이네의 시에 로베르트 슈만이 멜로디를 붙인 유명한 독일 가곡 〈눈부시게 아름다운 오월에〉가 자꾸만 듣고 싶어지는 계절이 왔다. 지난 몇 년 동안 너무 많은 사람을 육체적·정신적으로 힘들게 했던 코로나19가 사실상 마무리되며 다시 캠퍼스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토록 염원해온 극복의 시간에 소중한 글쓰기의 기회를 제공해준 『대학신문』 측에 먼저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2072호에는 다양한 주제와 소재를 다룬 흥미로운 기사가 많이 실렸는데, 문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다른 무엇보다 ‘경계에서 바라본 삶과 사회’라는 제목의 기사에 호기심의 눈길이 향했다.

서울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기도 한 소설가 문지혁의 심도 있는 인터뷰가 담긴 ‘경계에서 바라본 삶과 사회’는 형식과 내용 면에서 매우 충실하게 작성된 기사다. 우선 형식적인 부분을 살펴보기로 하자. 첫인상을 말하자면, 지면 한 장을 꽉 채운 글과 사진은 전체적으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느낌이었다. 글자 크기와 굵기의 적절한 조정, 단락을 구분·요약하는 중제목 사용, 제목과 본문 사이에 알맞은 여백 설정 등을 통해 높은 수준의 가독성이 확보됐다. 특히 본문 중간중간 삽입돼 푸른색 배경의 글상자 안에 따로 들어가 있는, 작가의 서로 다른 작품들에서 발췌한 여러 인용문은 독자의 관심을 끌며 기사에 대한 이해도를 높였다. 더불어 텍스트의 가시성을 미적으로 고양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했다.

이른바 ‘정통’ 작가는 신춘문예나 문예지를 통해 등단한 후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는데, 문지혁 작가는 그러지 못했다. 애매함과 경계인. 미등단 작가 문지혁의 삶과 정체성을 오롯이 나타낼 뿐만 아니라, 그의 글쓰기를 추동하는 개성적 요소다. 이런 요소는 시련과 좌절을 겪는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할 여지가 분명히 있다. 하지만 문 작가는 그것을 생산적으로 재해석하고 자신의 소설 속에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그는 문학 창작 행위라는 ‘언어의 확장’에 기대 어떤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했다. 또한 문지혁의 작품에서는 사회적 재난, 애도 방법, 기억 등의 문제가 지속적으로 다뤄졌는데, 그에게는 재난과 관련된 모든 것을 오랫동안 기억하려 하는 글쓰기, 즉 “소설 자체가 애도의 한 형태다”.

문지혁 작가에 관한 기사를 읽다 보니 문득 『대학신문』에 대한 작은 바람이 떠올랐다. 세상이 점점 어두워지면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거칠어지고 냉소적이게 된다. 가장 어두운 곳에서 가장 밝은 빛을 발견하는 『대학신문』이 되기를 기원한다. 그렇다. “In sterquiliniis invenitur”(당신이 가장 보기 싫어하는 곳에 당신이 가장 원하는 것이 있다).

유종윤 선임연구원 

인문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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