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시나리오 바탕으로 인권 문제 논의... 일부 학생들 비판의 목소리

지난달 25일(수) 인권센터 옴부즈퍼슨실 소속 주니어 옴부즈퍼슨 제3기가 진행한 ‘학내 고충민원 처리절차 간담회’에서 설왕설래가 오갔다. 옴부즈퍼슨은 전·현직 교직원이 학내 고충민원에 대한 사실조사 및 처리를 수행하는 인권센터의 기구로, 산하에 대학원생으로 구성된 주니어 옴부즈퍼슨을 두고 있다.

이번 간담회는 학내 기관 및 인권동아리를 합해 총 15개 단체가 참여했으며, 실제 서울대에서 일어난 사건을 기반으로 재구성한 15개의 가상 고충민원 시나리오를 토대로 진행됐다. 주니어 옴부즈퍼슨이 △대학원에서의 갑질 △조교의 비윤리적 행위 △교내 장애인 이동권 △외국인 학생 지원 문제 등에 관한 시나리오를 먼저 발제하면, 학내 인권 동아리 및 기관이 관련된 의견 및 개선방안을 나누는 방식이었다. 인권센터 박홍규 전문위원은 “이번 간담회는 학생들의 불편사항을 알아보고 이와 관련해 학내 인권 단체 및 동아리에서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공유하고자 마련한 자리”라고 간담회 취지를 설명했다.

 

▲주니어 옴부즈퍼슨 중 한 명이 학내 고충민원 시나리오를 발표하고 있다.
▲주니어 옴부즈퍼슨 중 한 명이 학내 고충민원 시나리오를 발표하고 있다.


◇간담회에서 어떤 인권 현안들 나왔나=간담회에서는 교내 장애 인권 개선 문제가 가장 활발히 논의됐다. 주니어 옴부즈퍼슨 김윤하 씨(아동가정학전공 박사과정)는 장애인 학생이 교내에서 겪는 불편이 담긴 시나리오를 발표했다. 시나리오에서는 교내 이동권 문제와 장애인 화장실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문제 등이 제기됐다. 그러자 장애인권동아리 위디(With:D) 소속의 구자경 씨(경영학과·19)는 “학생회관은 휠체어를 탄 상태에서는 아예 진입이 불가하고 호출벨도 작동하지 않는다”라며 “기숙사 글로벌생활관 외부의 시각장애인 유도 블록도 관리가 돼 있지 않아 사고가 나기 쉽다”라고 덧붙였다. 서울대 장애인권 자치언론 디스에이블(THISABLE)의 이우진 편집장(자유전공학부·19)은 “장애학생 이동지원차량이 미비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으나 차량 관리는 장애학생지원센터가, 차량 대수는 시설관리과가 담당하는 식으로 권한이 분할돼 있어 해결이 어려웠다”라며 하나로 통합된 장애인 인권 관련 전담 기관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조교가 학부생의 개인정보를 유출해 사생활 침해 문제가 발생하는 시나리오도 제기됐다. 동아리연합회 김정우 비상대책위원장(정치외교학부·20)은 “동아리연합회도 개인정보를 다루는 기관 중 하나지만 개인정보 관리가 법률에 맞는 엄격한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대학생활문화원 관계자는 “대학생활문화원은 민감한 개인정보를 다루는 기관”이라면서도 “오프라인 자료의 경우 최근에야 교내 기록보관실을 알게 돼 이곳에 위탁해 관리하고 있고, 온라인 자료의 경우 독자적인 시스템을 마련해 관리하고 있지만 서버 관리 및 담당자 배정 등의 비용이 부담스러운 상황”이라며 개인정보 관리에 관한 본부 차원의 가이드라인 마련과 예산 지원을 촉구했다.

 

◇일부 학생들은 ‘쓴소리’=일각에서는 이번 간담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서울대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학소위) 권소원 위원장(경제학부·19)은 “이 행사가 인권에 관한 교내 구조적 문제의 해결을 학생 단위에 떠넘기는 것 같아 당황스럽다”라며 간담회의 방향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학소위 위원장으로서 본부와 수차례의 면담을 했지만 학생 사회의 요구가 좌절되는 경우가 많았다”라며 “인권 문제의 해결 방안을 묻는다면 본부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제언밖에 남길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이에 이준정 인권센터장(고고미술사학과)은 “학생들에게 문제를 해결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현장에서 부딪히는 인권 문제가 무엇인지 물어보는 것이 간담회의 취지”라고 해명했다.

간담회에 제시된 시나리오가 선입견을 조장한다는 문제도 제기됐다. 대학원총학생회 문지호 인권위원회위원장(영어영문학과 석사과정)은 “시나리오 자체가 특정한 가해나 피해의 형태를 고착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일부 시나리오 내용에 관한 우려를 표했다. 이어 그는 “성적 가해가 이익과 교환되는 것처럼 전개되는 시나리오가 있었지만 실제 피해 사례는 그렇지 않다”라며 “조울증을 자극적으로 묘사하는 시나리오 역시 편견을 강화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한편 간담회에서는 학내 인권 문제를 처리하는 단일한 창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빗소리 of SNU’ 최성환 대표(인류학과‧21)는 “학생들은 교내 기관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므로 자신의 문제가 정확히 어떤 학내 기관의 관할인지를 알기 어렵다”라며 “일종의 컨트롤타워를 만들어 학생들이 훨씬 쉽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또한 학생들은 간담회 이후에도 교내 인권 문제와 관련한 지속적인 논의의 장이 필요하다고 강력히 요구했다. 이날 참석한 한 학생은 “인권센터 측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과 추가적인 학생 참여의 장을 마련해줬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권소원 위원장은 “학생 단위와 본부가 참여하는 면담을 정례적으로 가졌으면 한다”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이에 이준정 인권센터장은 “추가적인 간담회 진행을 위해서는 본부와 협의가 필요하다”라며 “오늘 나온 의견들을 토대로 구체적인 해결책을 고민해보겠다”라고 답했다.

 

 

사진: 최수지 수습기자
susie2003@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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