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내문화│예술사회학을 지나야 예술철학이 나온다-작가 편

언뜻 보면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 ‘예술’과 ‘사회학’이 만났다. 〈예술사회학을 지나야 예술철학이 나온다-작가 편〉 전시가 지난 6월부터 다음 달 10일까지 미술관(151동)에서 진행된다. 이번 전시는 예술이 사회와 상호작용하며 생성하는 의미에 대한 14명의 작가의 고민을 담고 있다. △회화 △조각 △설치 △유튜브 영상까지, 다채로운 형식과 재료로 표현된 예술과 사회의 대화를 들어보자.

 

◇예술로 표현된 예술의 이면=예술사회학은 관념적이고 추상적으로 느껴지는 예술을 현실의 세계로 끄집어낸다. 사실 관람객이 깨닫지 못했을 뿐, 예술은 감상의 대상이면서도 동시에 생산과 분배, 소비의 과정에서 복잡한 사회적 맥락과 상호작용하는 존재다. 김태서 학예사는 “예술사회학은 예술계를 구성하는 것을 사회학적 분석방식으로 바라보는 것이자, 예술을 통해 사회를 바라보는 것이다”라며 “이런 예술사회학적 사고를 통해 예술로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인식, 즉 예술철학을 발견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이번 전시의 작품들은 예술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과 예술을 통한 사회적 변화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기회를 제공한다”라고 소개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곧바로 낯선 풍경이 펼쳐진다. 주재환 작가의 〈나타샤〉는 관람객들에게 익숙한 캔버스의 앞면이 아닌 나무살이 드러난 캔버스의 뒷면을 보여준다. 캔버스 한구석에는 ‘벽이시여! 그동안 한 번도 그림 정면 보지 못하고 뒷면만 보았습니다. 처음으로 정면을 보여드리니 한 말씀 듣고 싶습니다.’라는 글귀가 적힌 메모가 붙어있다. 작가는 그동안 벽에는 뒷면만을, 관람객에게는 앞면만을 보여주던 캔버스를 뒤집어 관람객들이 지금껏 감춰졌던 예술의 뒷면을 떠올리게 한다. 이렇게 〈나타샤〉는 관람객을 예술사회학의 세계로 초대한다. 

주재환 작가의 〈나타샤〉
주재환 작가의 〈나타샤〉

 

◇예술과 현실의 연결고리, 돈=예술작품을 사고파는 행위는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예술의 존재 방식 중 하나다. 특히 예술작품을 구매한다는 것은 그 미학적 가치를 소유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작가의 노동력을 구매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최성균 작가는 거울과 카탈로그로 이뤄진 설치미술 〈거울집〉을 통해 노동과 예술이 맺는 오묘한 관계를 들춰낸다. 다양한 모양의 거울이 벽을 채우고 한쪽 구석에는 거울을 실제로 구매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카탈로그가 걸려있다. 거울의 크기가 클수록 작가의 노동력이 덜 투입됐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통념과는 반대로 거울의 크기와 가격은 반비례한다. 〈거울집〉은 관람객에게 미학적 가치가 반드시 상업적 가치와 일치하지 않는 예술계의 아이러니를 화두로 던진다.
이처럼 예술작품이 상업성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면, 작가는 예술이 추구해야 가치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다. 김영규 작가는 이런 고민을 그 나름의 방식으로 익살스럽게 드러냈다. 그가 직접 쓴 132쪽 분량의 전시용 도서 〈연봉 1억 미술 작가 되는 법〉과 영상 작품 시리즈인 《미술왕 인강시리즈》는 연봉 1억을 버는 미술 작가가 되기 위한 지침을 전달하고 있다. 마치 실제 고액의 연봉을 버는 ‘일타 미술가’의 강연 같지만, 사실 이는 빈곤한 생활을 전전하다가 끝내 상업성을 좇게 되는 예술가의 현실을 풍자하기 위한 연출이다. 이 작품을 본 청년 작가들이 김영규 작가에게 ‘연봉 1억 미술 작가가 되는 법’에 대한 강연을 요청했다는 비화까지, 작품과 그 뒤의 현실이 일견 블랙코미디 같기도 하다.

김영규 작가의 〈연봉 1억 미술 작가 되는 법〉 표지의 확대 전시본
김영규 작가의 〈연봉 1억 미술 작가 되는 법〉 표지의 확대 전시본

 

◇예술 안에 들어있는 또 다른 사회=전시에서는 사회 속에 예술이 존재하는 방식을 담아낸 작품 외에도, 예술가의 세계라는 또 다른 사회를 조명하는 시도들도 볼 수 있다. 정해민 작가의 〈그림의 집〉은 입시부터 대학까지, 미술 교육 과정에 감춰진 경쟁과 갈등의 모습을 비춘다. 그가 묘사한 그림의 집은 공허하고 불안정한 위층과, 표정이 지워진 사람과 오브제로 빼곡한 아래층이 대조되는 모습이다. 공간의 대비, 표정을 알 수 없는 개인의 모습을 통해 관람객은 미술 교육에 감춰져 있는 치열한 경쟁의 구도와 공허함을 동시에 목도하게 된다. 

정해민 작가의 〈그림의 집〉
정해민 작가의 〈그림의 집〉


그런가 하면, 미술관 한쪽의 TV 속 영상은 음침한 색채와 끈적하고 불쾌한 소리로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함양아 작가의 〈형용사적 삶-아웃 오브 프레임〉은 영상 작품으로, 영상 속 네다섯 명의 젊은 작가들은 초콜릿으로 빚어진 큐레이터의 두상을 함께 쓰다듬으며 핥는다. 그들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큐레이터의 주목을 받아 그들의 작품을 알리고, 권세를 얻기 위함이다. 노골적이고 적나라한 영상은 때때로 거부감마저 불러일으키지만, 예술계 내에서 벌어지는 권력 암투는 우리 사회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작가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된 예술계의 위계 구조를 과감하게 드러내 관람객이 예술 속 사회의 모습, 그리고 우리 사회의 구조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이외에도 많은 작품이 특이한 형식으로 관람객의 눈을 사로잡으면서 예술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통찰을 끌어낸다. 무너지고 있는 젠가로 표현된 김민제 작가의 〈Jenga: Leaving for staying〉은 인력 유출로 무너져 가는 지방 예술계의 현실을 역동적으로 표현한다. 그런가 하면 42개로 나눠진 회화의 조각 중 일부가 빠진 상태로 전시된 허보리 작가의 〈42개의 봄 조각〉은 예술작품의 일부만 매매하는 NFT 시스템을 은유하며 물성에 대한 고민을 그려낸다. 버려진 예술품이 다시 소장가를 만나는 과정을 그린 뀨르와 타르 작가의 〈금의환향〉, 작업실이 이동하는 과정에서 창작활동과 관련해 느낀 고민을 담은 정정엽 작가의 〈나의 작업실 변천사 (1985~2017)〉 등도 각자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김태서 학예사는 “이번 전시를 통해 관람객이 예술과 사회의 거리가 멀지 않다는 점을 느꼈으면 한다”라는 바람을 밝혔다. 잠시 미술관에 들러 미처 알지 못했던 예술 세계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세계 사이의 수다를 지켜보는 것은 어떨까.

사진 : 최수지  수습기자

susie2003@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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