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이들에게 | 졸업생에 전하는 응원과 격려

이시은(사회학과·21)
이시은(사회학과·21)

처음 서울대에 들어왔던 순간을 기억하시나요? 저는 일명 ‘코로나 학번’이라 불리는 21학번으로 들어왔던 터라, 강의실에는 발 한 번 들여 보지 못했던 첫해를 지나 이제 기숙사에서 사회대까지 가는 지름길은 눈 감고도 갈 수 있을 법한 3학년이 됐습니다. 성실한 학생이라면 내년 안에 4년의 학사 과정을 거치고 졸업해야 하는 나이가 됐지만, 당장 4학년 1학기에 스페인으로 훌쩍 떠날 생각이나 하는 제게는 아직 졸업이 멀게만 느껴집니다.

여러분은 언제 어른이 됐다고 생각하시나요? 카페 가면 아메리카노를 시킬 때? 월세를 낼 때? 바야흐로 2009년, 한국을 휩쓸었던 〈지붕 뚫고 하이킥〉이라는 시트콤에 황정음 씨가 정준혁 씨에게 ‘띠드버거’를 사달라며 조르는 장면이 큰 화제였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캐릭터 설정상 황정음 씨는 23살, 대학교 4학년이었습니다. 당시 8살이던 제 눈에는 다 큰 어른이 혀 짧은 소리를 내는 게 웃기고 이상하기만 했는데, 22살이 돼서 그 장면을 다시 보니 드라마 세상이 아니더라도 23살은 치즈버거 사달라고 애교를 부릴 만한 나이인 것 같습니다. 처음 들어올 때는 일명 ‘칼졸’을 할 줄 알았는데, 복수전공이나 교환학생 등을 생각하다 보니 길게는 10여 년까지 다닐 수도 있는 학교를 그렇게 빨리 떠나기까지는 어마어마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래도 졸업하고 나면 진정한 어른이 되는 걸까요?

이제 학과 행사나 교양 수업을 듣다 보면 제가 고학번이 됐다는 사실이 실감 납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배운 것이 많이 없고, 방황하고, 미래가 막연합니다. 그러니 저는 어릴 적 상상하던 어른이 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이대로 나이만 먹는다고 어른이 되는 걸까요?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저보다 어린 나이에 먼저 사회로 진출해서 일하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 보다 다양한 경험을 보유한 어른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도 아주 일상적인 행위들이 모이고 그게 익숙해지다 보면 완벽하진 않더라도 어른이 돼가고 있다는 기분이 듭니다. 삶이란 결국 각자의 이야기에 따라 모두 상대적인 어른이 되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면 좋은 직장으로 나가서 독립하고, 돈을 모으면서 스스로를 건사하다가 결혼하면서 가정을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는 정형화된 레일이 당연하다는 듯 펼쳐집니다. 오랜 기간 동안 학교라는 공간에 머물러 있던 이들은 사회에 나가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환경에 방임되면서 불안감과 무력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새로움은 불안하면서도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해 주기도 합니다. 생소함을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즐기다 보면 나아갈 힘을 얻어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어른이 되고 싶으신가요? 주변의 눈치를 안 볼 수는 없겠지만, 저는 누군가가 제시하는 모범 답안에서 엇나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상대적 어른으로 성장하면 좋겠습니다. (그 과정에서 고양이도 책임질 수 있을 만한 사람이 되면 더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대체로 안온하지만 가끔은 방황하는 날도 있고, 놀랄 만큼 도파민이 도는 일이 생기기도 하는, 어른이 돼가는 과정을 즐겁게 써나가시기 바랍니다. 졸업을 축하드리고, 다음 단계로 웃으면서 넘어갑시다. 긴 시간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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