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교수 인터뷰 | 이봉진 교수

지난달 24일(월) 약학관4(141동)에서 이봉진 교수(제약학과)를 만났다. 그의 서가에 꽂혀 있는 단백질에 관한 일문 서적과 단백질 구조 분석법을 적은 영문 서적은 그의 연구 분야와 유학 경험을 한눈에 보여줬다.

 

Q. 단백질 구조를 연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A. 대부분의 약물 작용은 약이 체내 단백질에 결합하는 과정을 거쳐 나타난다. 자물쇠 구멍에 열쇠가 딱 맞아야 자물쇠가 열리듯, 약의 경우에도 생체 내 단백질 표면에 3차원 구조가 정확히 들어맞아야 올바른 약물 작용이 나타나는 것이다. 즉 체내의 질병 단백질이 가지고 있는 3차원 구조 및 포켓*의 구조를 알아야 해당 단백질에 알맞은 약을 만들 수 있다. 그래서 단백질 구조를 공부하고 싶었고 이에 일본 단백질 연구소로 유학을 가게 됐다.

 

Q. 연구실에 대한 대학원생들의 평가가 굉장히 좋다. 비결이 무엇인가?

A. 일본 유학 시절 만난 지도교수님께서 굉장히 훌륭한 분이셨다. 학생들을 야단치기보다는 항상 격려해주며 우리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지도하셨다. 이에 나도 지도교수님으로부터 배운 대로 학생의 아이디어를 최대한 존중하려 했고 필요한 재원, 재료비나 실험 기기, 공동 연구자 연결 등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학생 입장에서는 아무리 구현하고 싶은 본인만의 발상이 있더라도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게 되면 망설일 수밖에 없는데, 이와 같은 문제를 최대한 해소해주고 싶었다. 또한 연구의 큰 줄기는 가르쳐주되 세부적인 것은 학생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했다. 그래서인지 처음에는 석사만 하겠다고 들어왔다가 박사까지 진학하는 제자들의 비율이 다른 연구실에 비해 훨씬 높았다. 이는 학생들이 연구에 재미를 느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Q. 벤처기업 대표이사직과 교수직을 병행했는데, 벤처기업을 운영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A. 약학은 응용 학문이기에 연구 결과가 실용화돼 자신이 개발한 신약이 실제로 시장에 나왔을 때 큰 보람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실용화를 위해서는 많은 돈이 든다. 학교에서의 연구는 대부분 국가 지원으로 이뤄져 연구비 금액 자체가 적다. 따라서 실용화 단계에 도달하면 국가 연구비만으로는 감당이 힘들어진다. 반면 벤처기업은 지원이 아닌 투자를 받는 것이기 때문에 큰 연구비를 받을 수 있다. 이 연구비는 연구 실용화와 더불어 새로운 분야를 개척할 때도 아주 유용하게 쓸 수 있다. 이런 이유에서 벤처기업 운영을 시작하게 됐다.

 

Q. 한국 약학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어디라고 생각하나?

A. 내가 서울대 교수로 부임한 1991년에는 연구 환경이 굉장히 열악했다. 연구비도 부족하고 기계도 없으니 방학 때마다 직접 일본으로 가서 기계를 빌려 학생들 샘플을 실험해야 했다. 그런데 그 후로 경제가 발전하면서 지금은 일본 교수들 못지않은 연구 지원을 받고 있다. 과거에는 선진국에서 하는 연구를 비슷하게 해서 똑같은 논문을 내고 쫓아가는 추격 연구를 했으나 지금 상황에서 더 이상의 추격은 무의미하다. 이전에는 교수를 논문 수로 평가했지만 이제는 질적으로 훌륭한 연구를 통해 영향력 있는 논문을 써야 한다는 분위기로 완전히 바뀌고 있다. 이제는 한국 약학계도 인용이 많이 될 수 있는 창의적인 논문으로 세계 연구를 선도해야 할 것이다.

 

Q. 정년을 맞게 된 소감은?

A. 교수 정년식에 수차례 참석하면서 정년을 맞으신 여러 교수님을 만나 뵀다. 건강 문제로 가족들에게 부축을 받으며 정년을 맞으셨던 분도, 정년을 맞기도 전에 질병으로 돌아가신 분도 계셨다. 그래서 건강하게 정년을 맞이하게 됐다는 점 자체에 크게 감사하다. 화목한 가정에서 정년을 맞이하게 해준 아내에게도 고맙다. 한편 정년을 맞긴 했지만 계속해서 연구와 교육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기 때문에 교수로서의 정년이 실감 난다기보다는 앞으로의 연구에 대한 의욕이 생긴다.

 

Q. 은퇴 후 계획이 궁금하다.

A. 앞으로 5년은 더 일하고 싶다. 최근 다른 사립대 약대에 있는 제자가 찾아와 학장으로 와줬으면 한다는 총장의 뜻을 전했다. 그래서 다음달 1일부터 그곳에 학장으로 가기로 했다. 회사는 회사대로 운영하면서 연구도 계속할 생각이다. 지도교수가 완전히 은퇴하면 마지막에 남은 제자들이나 박사후연구원들은 당황하기 마련인데 내가 계속 연구도 하고 또 학장으로 가니 학생들이 심적으로 편안해한다. 아무래도 지도교수가 정년 후에도 학계에 남아 있으니 취직이나 연구에서 앞으로도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는 안도감이 크기 때문이다.

 

*포켓: 단백질 표면의 움푹 파인 영역. 단백질과 약물은 대개 포켓 주변에서 결합한다.

 

사진: 최수지 수습기자 

susie2003@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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