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소수인종 우대정책의 과거와 현재

지난 6월 29일 미국 연방 대법원은 대학 입학에서 소수인종을 우대하는 소수인종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60년 가까이 지속된 미국 대학의 정책이 뒤집힌 이유는 무엇일까. 

 

꼬리에 꼬리를 문 ‘차별’ 논란

소수인종 우대정책은 소수인종에게 입학, 고용 등 다양한 사회 영역에서 이익을 부여하는 조치다. 미국에서 소수인종 우대정책은 차별과 편견의 대상이던 흑인에게 노예제도와 인종 차별의 역사를 배상하기 위해 수립됐다. 법무법인 이제 유정훈 변호사는 “1961년 케네디 대통령이 흑인들에게 실질적인 평등을 도모해야 한다는 행정명령을 내린 것이 그 시작”이라고 짚었다. 그 일환으로 미국 대학 역시 60년 가까이 입학 과정에서 흑인 및 히스패닉 지원자를 관행적으로 우대해 왔다.

그러나 소수인종 우대정책은 ‘차별 철폐를 위한 차별’이기에, 줄곧 법 앞의 평등과 법 앞의 평등한 보호를 규정한 수정헌법 제14조에 위배된다는 논란이 존재해 왔다. 공영호 교수(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는 “대학이 흑인 및 히스패닉 지원자를 우대해 입학 기회를 놓쳤다는 백인 지원자의 반발이 거셌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더해 최근에는 아시아인이 대학 입학에서 소수인종 우대정책으로 차별받고 있다는 비판까지 제기됐다. 유혜영 교수(미국 프린스턴대 정치학과)는 “미국 사회에서 아시아인의 비율은 전체 인구의 6% 정도인 데 반해, 올해 미국 하버드대에 입학한 아시안 신입생은 입학 정원의 30%에 육박한다”라며 “아시아인은 다른 소수인종과 달리 인구에 비해 대학에서 과대 대표돼, 소수자임에도 불구하고 정책의 수혜 대상이 아니었다”라고 밝혔다. 

결국 2014년 11월 17일 아시안 학생들로 구성된 원고 ‘공정한 입학을 위한 학생연합’(Students for Fair Admissions)은 하버드대가 소수인종 우대정책으로 아시안을 차별해 왔고, 입학 과정에서 인종이 고려돼서는 안 된다며 하버드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10년에 걸친 소송 끝에 지난 6월 연방 대법원은 소수인종 우대정책을 위헌 판결하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정일영 교수(울산대 사회과학부)는 “원고를 변호한 에드워드 블룸 변호사는 계속해서 소수인종 우대정책을 공격해 온 인물”이라며 “백인을 내세웠던 이전 소송에서 연달아 패소하자, 소수인종 간 대결 구도로 전략을 변경한 것이 승소의 주요 요인”이라고 소송의 배경을 분석했다. 

 

선례 뒤집은 연방 대법원

이번 판결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연방 대법원의 심사 기준과 이를 구체화한 두 가지 판례를 살펴야 한다. 공영호 교수는 “연방 대법원은 특정 정책이 수정헌법 제14조를 위반하는지 판단할 때 내용의 중요성에 따라 세 가지 다른 심사기준을 사용하는데, 소수인종 우대정책의 경우 이중 가장 까다로운 기준인 ‘엄격심사기준’을 적용한다”라고 설명했다. 엄격심사기준에 따르면 대학의 소수인종 우대정책은 정책을 사용할 만한 ‘강력한 이익’이 있고, 그런 강력한 이익을 만족시키기 위해 ‘엄정한 수단’을 사용해야 한다.

이를 적용한 첫 판례는 1978년 바키(Bakke) 판결이다. 이 판결에서 연방 대법원은 소수인종 우대정책을 통해 추구할 수 있는 강력한 이익이 과거 배상이 아닌 ‘인종 다양성’이라고 말했다. 과거 배상이라는 목적을 위해 시행되는 인종 할당제는 위헌이지만, 인종 다양성을 통해 전인적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교육적 목적을 위해 인종을 고려하는 소수인종 우대조치는 합헌이라는 것이다. 유정훈 변호사는 “소수인종 우대조치의 본래 목적인 과거 잘못에 대한 시정은 법적 논리로 방어하기 어렵기에 우회한 것”이라고 당시 판결을 분석했다. 그러나 바키 판결은 인종 고려가 허용되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아, 소수인종 우대정책이 어떻게 엄정한 수단이 될 수 있는지는 여전히 불분명했다. 

이에 연방 대법원은 2003년 그루터(Grutter) 판결에서 입학 담당자가 지원자의 다양한 측면을 평가하는 ‘종합적 심사’ 결정에서 인종을 가점 요소로 사용하는 것은 위헌이 아니라는 기준을 마련했다. 공영호 교수는 이 판결이 “헌법을 위반하지 않으면서도 대학이 소수인종 우대정책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승인했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판례”라고 밝혔다. 공 교수는 “즉 그동안 연방 대법원은 교육적 목적을 위한 인종 다양성이 강력한 이익으로 인정되며, 종합적인 심사에서 인종을 고려하는 방법이 인종 다양성을 달성하기 위한 엄정한 수단으로 인정된다고 판결해 왔다”라고 판례를 종합해 설명했다. 

그런데 이번 판결에서 연방 대법원은 그간의 판례를 모두 폐기하고, 입학 절차에서 인종을 고려 요소로만 사용해도 수정헌법 제14조에 위배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는 사실상 소수인종 우대정책을 폐지한다는 의미다. 다만 연방 대법원은 지원자의 문화적 배경을 고려하는 과정에서 간접적으로 인종을 고려할 여지는 남겨뒀다. 유혜영 교수는 “예컨대 서류에서 인종을 명백한 항목으로 작성해서는 안 되지만, 에세이를 통해 인종 차별을 극복한 경험을 말할 수는 있다”라고 예시를 들었다. 공영호 교수는 “지원자의 인종적 배경이 아니라 개인적 특징과 능력을 고려해 입학 여부를 결정하라는 뜻”이라고 분석했다. 

존 로버츠 연방 대법원장이 집필한 위헌 법정 의견에서 9명 중 6명의 연방 대법관은 인종 다양성의 추구를 위해 인종을 구분하는 것은 강력한 이익에 해당하지 않으며, 이익 달성을 위한 엄정한 수단에 해당하지도 않는다고 밝혔다. 이들은 특히 ‘다양성이라는 목적은 칭찬할 만하지만, 사법적으로 엄격하게 검토하기 어렵다’라는 점을 강조했다. 정일영 교수는 “이번 판결은 과거 배상과 미래 지향이라는 적극적 평등실현조치의 양 기둥을 전부 부정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소수 법정 의견을 작성한 소토마요르 연방 대법관은 판결문에서 ‘연방 대법원이 수십 년간의 선례를 무시했다’라며 이번 판결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역사적 책임을 언급하며, 소수인종 우대정책은 인종 다양성 추구라는 강력한 이익을 가졌을 뿐 아니라 이는 대학의 교육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엄정한 수단이라고 역설했다.

 

위헌 결정이 놀랍지 않은 이유는

인종 정책에 대한 강력한 파장을 불러일으킨 판결이지만, 사실상 연방 대법원의 이번 위헌 판결은 정해진 수순에 가까웠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2020년을 기점으로 미국 연방 대법관 구성이 이전보다 보수화됐기 때문이다. 공영호 교수는 “그동안 연방 대법원 구성은 보수와 진보 진영이 균형을 이뤄왔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강경 보수 성향의 연방 대법관 3명을 임명하며 균형이 깨졌다”라며 “이번 판결은 보수 성향이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게 된 연방 대법원의 정치적 상황과 관련이 깊다”라고 말했다. 정일영 교수는 “지난 합헌 판결과 이번 판결 사이 분기점이 될 만큼 극적인 사건은 없었다”라며 “연방 대법원의 판결은 해석 결과가 진영에 따라 첨예하게 대립한다는 점에서 헌법 해석의 객관성이 의심된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그동안 소수인종 우대정책이 합헌으로 유지된 것 역시 우연과 타협의 영향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관련 논문을 작성한 염철현 교수(고려사이버대 인재개발학부)는 “본래 다양성이라는 목적은 객관적 증거를 갖고 법리상 증명하기 어렵다”라고 짚었다. 실제로 소수인종 우대정책에 대한 판결은 1978년과 2003년에는 5:4로, 2016년에도 4:3으로 의견이 갈려 매번 한 명의 스윙보터*가 최종 결정을 내렸다. 윤성현 교수(한양대 정책학과)는 “이 문제는 종전에도 매우 치열한 시소게임을 벌여왔던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판결은 소수인종 우대정책을 넘어 미국 사회 내 인종에 관한 정책을 재검토하는 계기로 작용하는 중이다. 특히 최근 ‘백인을 위한 소수인종 우대정책’이라 불리는 기여입학제(ALDC)*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미국 교육부는 하버드대의 기여입학제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윤성현 교수는 “이번 소송으로 인해 소수인종이 불리해졌다고만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라며 “재판 과정에서 그간 문제 되지 않았던 아시안 차별을 공론화하고 숨어있던 백인 기득권을 철폐하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된다면 이번 소송은 인종 정의에 기여할 수도 있다”라고 평했다.

*스윙보터: 어느 쪽에 투표할지 결정하지 않은 투표자. 

*기여입학제(ALDC): 체육 특기자, 동문 자녀, 학장 특별 추천, 교수‧직원 자녀를 우대하는 입학 제도.

 

소수인종 우대정책의 폐지는 미국 사회에서 큰 파장을 낳았다. 앞으로 미국 사회가 소수인종 우대정책의 빈자리를 보완하기 위해 어떻게 대응해 나갈지 귀추를 주목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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