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무형문화재를 지키려는 우리 모두의 한걸음이 필요한 때

공동체가 힘을 모아 정신적 가치를 보존하고자 한 수많은 노력의 결과물, 무형문화재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무형문화재 보유자는 나이가 들어가는데, 설상가상으로 무형문화재에 대한 관심도 빠른 속도로 식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위태로운 무형문화재의 현주소

무형문화재는 전통적 가치를 인정받아 보존해야 할 것으로 지정된 형태가 없는 문화재를 뜻한다. 국가무형문화재는 총 7가지 범위로 구분돼 있으며 각각 △전통 공연·예술 △전통기술 △전통 생활관습 △의례·의식 △전통 놀이·무예 △전통지식 △구전 전통 및 표현으로 나뉜다. 예를 들어 우리에게 익숙한 강강술래나 종묘제례악은 전통 공연·예술에 포함되고, 나무로 짠 가구 위에 따로 조개껍질을 갈아 만든 문양을 오려서 옻칠로 붙이는 기술인 나전장은 전통기술 항목에 해당한다. 지난해에는 한복 생활과 윷놀이가 각각 새롭게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전통 생활관습, 전통 놀이·무예 항목에 포함되기도 했다. 이처럼 무형문화재는 그 외연을 넓혀 한국의 미를 지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특정한 기술을 터득해야 하는 무형문화재의 경우, 안정적인 전승을 위해 보유자‒전승교육사‒이수자‒전수자로 이어지는 일정한 체계를 갖추고 있다. 보유자는 무형문화재 기술을 인정받은 권위자를 의미하며 전승교육사는 보유자의 교육을 보조한다. 만약 누군가 6개월 이상 전승 교육을 받아 자신의 재능을 인정받으면 전수자가 되고, 3년 이상 교육을 받아 상당한 경지에 올랐음이 인정되면 이수자가 된다. 

문제는 보유자가 고령화되고 전승교육사, 이수자, 전수자의 수는 급격히 줄어들면서 현재 많은 무형문화재의 계승이 끊기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2022년 기준 국가가 지정한 무형문화재 122종목 중 18종목은 보유자가 부재하며 69개 종목은 보유자가 단 1명이다. 게다가 무형문화재 보유자의 평균 연령도 2018년 72.7세에서 2022년 74.3세로 상승했다. 정연상 교수(안동대 건축공학과)는 “사회적 관심이 부족한 무형문화재일 경우, 기존 보유자가 사망하거나 자격을 박탈당하면 전승할 사람이 없어 새로운 보유자를 지정하지 못하고 있다”라며 우려를 표했다. 일례로 바디*를 만드는 기술자인 바디장의 경우 2006년 보유자가 별세하고 유일한 바디장 이수자는 다른 길을 걸으면서 전승의 맥이 끊겼다. 그러자 지난 6월 문화재청은 바디장을 다급하게 국가긴급보호무형문화재 종목으로 지정했다.

*바디: 베틀에 들어가는 부속기구.

 

희미해지는 무형문화재의 빛

무형문화재 전승자가 사라지는 이유는 현대에 들어 상대적으로 무형문화재의 실용성이나 경제적인 가치가 떨어지면서 사람들의 관심도가 줄었기 때문이다. 주영하 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는 “같은 무형문화재라도 경제적 가치에 따라 전승의 정도가 다르다”라며 “예를 들어 잘 팔리는 옥 공예는 전승이 잘 되지만, 비싸고 무거워 잘 팔리지 않는 옛날 기와는 전승이 쉽지 않다”라고 전했다. 함한희 명예교수(전북대 고고문화인류학과)는 “무명 짜기나 담뱃대를 만드는 백동연죽장 같은 경우 요즘은 거의 사용하지 않으니 배우려는 이가 적다”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사라질 위기에 놓인 몇몇 무형문화재의 경우, 일반인에게 그것을 알릴 수 있는 매개자도 줄어드는 악순환을 겪고 있다. 매개자란 과거의 가치를 현대인에게 전달하는 사람을 의미하는데, 공연을 통해 문화재의 가치를 알리는 공연 기획자 등이 이에 해당한다. 오창현 교수(목포대 고고문화인류학과)는 “무형문화재에 대한 깊은 이해력을 갖춘 매개자가 거의 없어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전승이 어려워졌다”라며 “관련 지식이 많고 대중성에 대한 이해도도 높은 기획자가 공연 등을 기획하고 알리는 것이 시급하다”라고 오늘날 매개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편 교육의 부재는 사람들이 무형문화재를 접할 기회마저 앗아갔다. 송기태 교수(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는 “미래에 무형문화재 전승을 받을 젊은 세대를 육성해야 하지만 현재로서는 무형문화재를 다루는 교육 커리큘럼이 너무나 미비하다”라고 비판했다. 고등교육기관에서 무형문화재 관련 학과가 부재한 현실에 대한 문제 제기도 있었다. 함한희 명예교수는 “서양 악기의 경우 피아노과 등 관련 학과가 많지만, 무형문화재 관련 학과는 판소리나 가야금을 제외하고는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라며 교육 과정에서 무형문화재가 설 자리를 잃어가는 현실을 지적했다.

 

무형문화재가 헤쳐 나갈 길

앞선 고질적 문제를 곧바로 해결하기는 어렵더라도, 무형문화재의 쇠퇴를 그저 바라만 볼 수는 없다. 함한희 명예교수는 “무형문화재는 한국 문화의 뿌리이자 정체성이다”라며, 이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끊겨가는 무형문화재 보존에 대한 희망은 끈을 놓지 않기 위해서는 저조한 관심을 높일 계기가 필요하다. 우선 폐쇄적으로 전승되거나 접근성이 낮은 무형문화재를 일반인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김혜정 교수(경인교대 유아교육과)는 “보유자 중 외부 사람을 받지 않고 가계 위주로 전승이 이뤄지는 경우도 많다”라며 “기관 등을 운영해서 일반인도 무형문화재를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정연상 교수는 “최근 한옥 카페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한옥의 전승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라고 사례를 들기도 했다. 비록 한옥이 무형문화재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사례를 모범 삼아 무형문화재를 알리려는 노력이 실질적으로 모두에게 와닿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무형문화재를 홍보하기 위해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하는 등 현대사회에 맞춘 유연성을 보여줘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정연상 교수는 “과거에는 박물관에 전시하는 정도에 그쳤다면, 지금은 더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야 한다”라며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무형문화재까지 포괄하는 탄탄한 교육 시스템이 필요하다. 정연상 교수는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실습 위주의 무형문화재 교육이 이뤄졌으면 한다”라고 바람을 드러냈다. 더불어 그는 “수강생이 적더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교양 수업을 이어가야 한다”라며 꾸준함이 무형문화재를 살릴 수 있는 길이라고 제언했다. 송기태 교수는 과감한 교육 정책의 변화를 주문했다. 송 교수는 “지역의 무형문화재를 배워야 하는 것으로 지정해야 한다”라며 “무형문화재에 관한 배움이 당연한 것으로 인식이 바뀐다면 그것이야말로 큰 성과일 것”이라고 말했다.

 

아무리 무형문화재가 대중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그것의 근본적인 가치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 김혜정 교수는 “한국의 무형문화재는 해외 어떤 나라도 보유하지 않은 독창적인 미적 감각과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라며 자부심을 가져달라는 당부의 말을 전했다. 어쩌면 무형문화재를 다시 우리의 품으로 찾아오는 일은 사라져가는 한국의 미와 공동체적 가치를 되찾는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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